재난 현장의 저널리즘과 저널리스트
[언론 다시보기] 변상욱 CBS 콘텐츠본부장
변상욱 CBS 콘텐츠본부장 jak@journalist.or.kr | 입력
2014.04.23 15:32:27
|
|
|
|
|
▲ 변상욱 CBS 콘텐츠본부장 |
|
|
재난 현장을 취재해 보도하는 일은 기자에게 결코 흥미롭지도, 익사이팅하지도 않다. 어두운 밤 차가운 물속에서 떠오른 시신을 조명 아래서 마주하고, 시신의 신원 확인을 위해 안치소를 돌고 유류품을 뒤지고, 극도로 예민해 있는 피해자 가족들 사이에서 몇 날 며칠 웅크린 채 지내본 사람은 이 말에 공감할 것이다.
그러나 어깨에 지워진 짐이 무겁고 피하고 싶은 그 자리가 기자의 자리이다. 재난 현장에서 기자는 더 냉정하고 더 민첩해야 한다. 어떤 재난이든 기자가 그 현장에 전문가일 리는 없다. 그럼에도 재난 현장에서 기자는 더욱 철저하게 전문적이어야 한다. 사상자의 신원과 숫자, 재난의 원인, 피해의 확산, 구조 대책과 일정…. 그 모두가 커다란 반향을 불러일으키고 자칫 혼란을 가져올 것이기 때문에 그렇다.
그러므로 모든 정보와 소문에 대해 책임기관과 전문가의 검증·확인을 거쳐 보도해야 하고, 기사 작성 시에는 가능한 군더더기를 걷어내 사실적이고 객관적인 기사로 만들어야 한다. 신속해야 하지만 모든 것을 더욱 조심히 다루어야 한다.
세월호 사건과 관련해 해상재난 보도의 유의할 점들을 살펴보자.
1. 사건 초기에 실종·사상자의 수를 추측하는 것은 위험하다. 넋이 나간 재난 현장이다. 전해 듣고 얻어들은 숫자를 보도하지 말고 이 숫자가 틀릴 수 있는 여건과 예외적인 상황을 살펴야 한다. 최저와 최대를 상정해 범위로 보도하는 것도 방법이다. 세월호에 표를 끊지 않고 공짜로 타거나 무단승선한 사람들의 여부나 가능성을 해운사나 해경에 물어 단서로 달았다면 탑승객 수를 놓고 뒤늦은 혼란은 피해갔을 것이다. 실종·사상자를 도무지 계산해 낼 수 없다면 그것이 곧 기자가 바라본 사건현장이다. 도대체 알 수 없다고 기사를 쓰고 당국과 해운사가 파악할 내용을 지적하면 된다. 그것이 당국을 도와주는 일이다.
2. 분노한 상태이거나 신경이 날카로워진 사람들, 당황한 사람들의 심경을 이해는 하되 그의 진술대로 사상자 수나 내부 상황, 단서나 원인에 대한 해석을 즉시 옮겨 적는 일은 피해야 한다. 민간 잠수부의 수색을 저지했다는 논란의 경우 일체 허용하지 않으려 한 것인지 유기적인 협조체계를 위해 대기토록 한 것인지 양측의 입장을 살펴 판단한 뒤 기사화해야 한다. 생존자가 수신호를 보냈다거나 문자를 보냈다거나 하는 현장에서의 주장들도 마찬가지이다. 방송인터뷰에서 부르짖은 내용이 사실과 부합할 확률도 그리 높지는 않다. 목격했다고 해도 자신이 직접 본 것이 아니라 하면 철저히 확인해야 한다. 때로는 직접 목격한 사실이라고 주장해도 부정확한 경우가 허다하다.
3. 항공기나 선박 재난 사고의 경우 가장 어려운 것이 사고 원인을 밝히는 일이다. 원인을 밝히는 데는 긴 시간이 필요하고 책임 소재를 밝히는 건 더 복잡할 수 있음을 염두에 둬야 한다. 특히 단독 사고가 아니라 배와 배가 충돌했다면 사건의 규명은 훨씬 더 복잡해진다. 세월호의 경우 사건 1보부터 ‘쿵 하며 부딪히는 소리’를 근거로 해 암초 충돌 사고라고 전했지만 이제는 급속항해 중의 과도한 방향전환으로 이야기하고 있다.
4. 재난 초기부터 일정 시점까지 기사의 초점은 인간적인 요소들이어야 한다. 사상자, 실종자, 유가족, 피해 가족 등이 우선이고 물질적·금전적 피해는 그 다음에 두어야 한다. 생존자 구조가 안타까이 진행되는 중에 보험금 보도는 몹시 황당했다. 그 표를 보고 위안이라도 삼으라는 것인가?
5. ‘현장에 더 가까이 다가가야 한다’는 것은 변하지 않는 원칙이다. 세월호 사건에서도 ‘전원 구조’라는 황당한 오보는 사건 현장에서의 취재에 전혀 의존하지 않고 기관들의 오해와 오판을 그대로 옮겨 전하면서 발생한 오보이다. 해상 재난의 상황 정보는 반드시 해경(대책본부)과 해당 해운사에 내용을 확인하고, 이를 기반으로 하되 목격자나 전문가를 찾아 검증하는 것이 적절하다.
P/S. 취재 임무에서 벗어났다면 귀사하는 중에 또는 집으로 돌아가 울기를 권한다. 재난 현장에서 숱한 죽음과 비극적 사연을 목격하면서도 냉정을 유지하려면 감정을 억제하고 충격으로부터 거리를 둘 심리적 방어막이 형성된다.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그러나 임무가 끝났다면 심리적 방어막을 걷어내고 보다 인간적인 모습으로 잠시 돌아가 삶과 세상을 들여다보길 권한다. 도전과 경험이 기자를 키우지만 기자로서 커 나간다는 것은 그 이상의 것임을 이야기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