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반성에서 저항은 시작된다
[언론다시보기] 김서중 성공회대학교 신문방송학과 교수
김서중 성공회대학교 교수 jak@journalist.or.kr | 입력
2014.05.21 15:0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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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서중 성공회대학교 교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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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성세대의 어처구니없는 욕심으로 많은 생명이 덧없이 사라진 세월호 참사는 시대의 비극이다. 그리고 이를 제대로 보도하지 못하는 언론답지 못한 언론의 민낯을 보는 것도 비극이다. 그 중에서도 한국의 대표 공영방송들이 보여 준 보도 행태는 그야말로 참혹하다. 참사 초기 보험금을 논하는 뛰어난(?) 계산 능력, 현장 취재 정보를 무시하고 정부 보도자료를 베끼는 적응 능력, 오보 양산 능력, 보호견으로서 대통령 비판을 방어하고 찬양하는 능력, 항의하는 유족을 모욕하는 대담함, 그리고 이러고도 후안무치하게 자화자찬하는 뻔뻔함. 이들은 공영방송 추락의 끝을 보여줬다.
비록 이명박 정부 이후 독립성을 상실하고 편파·왜곡보도로 비판 받았지만 수백 명의 목숨이 걸려 있는 대참사와 관련해서까지 이런 보도를 하는 것은 참으로 이해 난망했다. 그러나 KBS 김시곤 전 보도국장의 보직 해임과 이에 항의하는 김 전 국장의 폭탄 발언에서 그 실체가 드러났다. 역시 청와대와 교감하는 사장의 개입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이명박 정부 당시 KBS가 정부의 홍보 역할을 담당해야 한다는 박재완 국정기획수석의 발언이 무엇을 의미했는지 여실히 증명된 것이다.
사장을 비롯한 청와대 관계자에게 엄하게 책임을 물어야 하는 것은 물론이다. 궁극적으로는 대통령이 책임을 져야 한다. 그러나 이런 행태가 다시 반복되지 않기 위해서는 언론 스스로 더 근본적인 물음을 던져야 하지 않을까? 언론을 장악하려는 권력, 권력과 영합하여 자신의 영달을 꿈꾸는 해바라기 언론인들이 옳다는 것은 아니지만 이런 존재들은 항시 있어 왔다. 이들이 창궐하지 않았던 시절은 그런 존재들이 없기 때문이 아니라 그런 존재들을 인정하지 않는 다수의 언론인들과 언론의 분위기가 존재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은?
지난 8일 청와대 출입기자단은 한겨레, 경향신문, 한국일보 그리고 오마이뉴스의 청와대 출입기자들에게 최대 63일의 청와대 출입정지 징계를 내렸다. 오프더레코드를 어겼다는 이유다. 재심 요청에 따라 그 기간을 줄였지만 본질은 변하지 않았다. 민경욱 청와대 대변인이 컵라면 사건이라는 물의를 일으킨 서남수 교육부 장관을 ‘계란 넣어 라면을 끓여 먹은 것도 아닌데’라며 옹호하는 발언을 한 후 오프더레코드를 요청했고 기자단이 이를 수용했음에도 일부 매체가 약속을 깼다는 이유다. 청와대 기자단은 이런 오프더레코드 요청도 받아들이나 보다. 더 중요한 취재의 단서를 얻기 위해 받아들이는 오프더레코드의 개념을 아나? 민 대변인의 오프더레코드 요청을 받아들여 무엇을 더 취재했을까? 그리고 약속을 깼다고 징계하는 그들의 권한은 정당한지에 스스로 의문을 가져보기나 했을까?
거슬러 올라가 보면 이명박 정부 이후 청와대의 오프더레코드, 엠바고 요청이 급격히 늘었다고 한다. 이번 사건의 행태를 보면 그 동안 도대체 어떤 내용의 오프더레코드와 엠바고 요청이 있었을지 그 내용이 궁금해진다. 요청이 급증한 이명박 정부 원년은 사실, 기자실 통폐합을 통해 기자실 공간에 대한 기득권을 없애자는 참여정부의 취재지원선진화 방안에 대해 대부분의 기자들이 표현의 자유를 주장하며 들고 일어난 바로 이듬해다. 취재지원선진화 방안의 옳고 그름을 따지고자 함이 아니라 언론의 자유를 위해 나섰던 그들이 몇 개월 만에 오프더레코드와 엠바고 요청을 그렇게 많이 수용하는 것은 무엇 때문이었을까?
2010년 9월 G20 서울정상회의 폐막식에서 오바마 대통령이 특별히 한국기자들에게 질문 기회를 주었으나 정적만이 흐르고 결국 중국 기자가 질문권을 채가는 동영상이 세간의 화제가 됐다. 질문 못(안)하는 기자. 기본의 문제다. 영어 울렁증이 아니냐는 동정론도 있지만 약정 질문에만 익숙하거나 도전적인 질문에 익숙하지 못한 우리 기자들의 현실이 문제다. 박근혜 대통령 취임 이후 기자회견이 줄어들었다. 그런데 그나마 줄어든 기자회견에서라도 기자들의 질의 응답시간을 가진 것이 얼마나 되나. 이번 세월호 담화문을 발표하면서도 일방적으로 읽고 말았다. 말도 안 되는 오프더레코드 요청을 인정하지 않았다고 오히려 동료 기자들을 징계한 청와대 기자단은 기자회견 이후 국민들의 알권리를 위해 질의 응답시간을 가져야 한다고 얼마나 주장했을까? 만약 그동안 수도 없이 질의응답 시간을 갖자고 요구했는데 청와대가 응답하지 않은 것이라면 그 사실을 대중에게 알려야 하지 않았을까?
지난 5월 16일 동아, 조선에서 해직된 선배 언론인, 80년 해직된 선배 언론인, 87년 민주화 이후 언론 민주화를 위해 애썼던 선배 언론인 등이 후배들에게 그들의 어려움을 이해하면서 그래도 저항에 나설 것을 부탁하는 애끓는 호소문을 발표했다. 그들이 언론 탄압의 박해를 견뎌 오며 지금까지 소신을 지킬 수 있었던 것은 언론 자유가 언론인들의 자유가 아니라 국민의 자유를 지키기 위함이라는 사명감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그 호소문이 발표됐음을 아는 현직 언론인들이 얼마나 될까? 선배 언론인들은 눈물로 호소하면서 “우리가 현업에 있던 때 언론사의 사유화와 권력에 대한 예속화를 막기 위한 법적·제도적 장치를 확고하게 마련하지 못했기 때문에 오늘날 후배 언론인들이 저런 굴욕과 모욕을 감수할 수밖에 없는 것이라고 믿는다”고 했다. 정말 그럴까. 이제 후배 언론인들이 응답할 차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