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레기 논란'이 주는 경고
[언론 다시보기] 김진혁 한국예술종합학교 방송영상과 교수
김진혁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 jak@journalist.or.kr | 입력
2014.05.28 15:0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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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진혁 교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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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레기. 민망한 말이지만 기자와 쓰레기를 합친 은어다. 예전에도 가끔 인터넷 댓글에서 보곤 했었는데 세월호 참사를 겪으면서 좀 더 보편(?)화된 언어가 되었다. 그래서인지 많은 기자들조차 스스로를 기레기로 지칭하며 세월호 참사 관련 올바른 보도를 하지 못한 것에 대해 자책을 하는 목소리도 들려온다.
하지만 ‘기레기’로 불리는 핵심 이유인 ‘보도자료 받아쓰기’에 대해 어떻게 ‘개선’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별다른 말이 들리지 않는다. 모두가 알다시피 현장과 괴리된 보도의 원흉(?)은 단순히 기자 개인의 양심 문제가 아니라 보도자료에 의존하는 취재 관행 때문이다. 단원고 학생 전원 구조라는 초대형 오보 역시 정부 발표를 그대로 받아쓴 것에서 기인한다.
내 자신이 PD 출신이기 때문에 솔직히 기자들이 매일 작성해야 하는 기사량과 그에 주어지는 취재 여건이 어떤지 정확히는 모른다. 그리고 아마 모르긴 해도 보도자료에 의존하지 않고서는 대부분의 언론사가 매일 채워야 하는 기사량을 채우기 어려울 지도 모른다. 또한 보도자료와 함께 고질적인 병폐로 일컬어지는 출입처 제도도 현실적으로 필요한 부분이 있을 수도 있다. 나아가 과도한 특종 경쟁 역시 언론의 속성상 완전히 자유로울 수 없는 것이기도 하다.
그러나 동시에 그러한 관행들을 그대로 내버려둘 수 없음은 분명하다. 기존 관행을 그대로 내버려 둔 채 보도자료에 대한 사실 확인을 좀 더 강화하거나, 출입처와의 관계를 좀 더 냉정하게 하거나, 재난보도준칙을 만들어서 특수한 상황에만 적용하는 식이어서는 곤란하다. 그런 방식은 그저 ‘좀 더 열심히 잘 하자’는 수준으로 문제의 근본 원인인 구조적인 부분을 전혀 변화시킬 수가 없기 때문이다.
어쩌면 많은 기자들이 기억하기 싫겠지만 최근 기자들의 반성문을 보며 참여정부 당시 기자실 폐쇄 논란이 생각났다. PD였던 나는 사실 당시 기자실 폐쇄에 별 관심이 없었는데 대부분의 기자들이 해당 언론사의 정치적 성향과 상관없이 한 목소리로 강력하게 항의를 하던 모습은 인상적이었다. 참여정부가 기자실을 폐쇄하려 했던 궁극적 이유가 무엇인지, 또 그게 옳은 것인지에 대해서 다시 논하고자 함은 아니다. 다만 그 때 기자실 폐쇄에 맞섰던 결기를 현재의 잘못된 취재관행 개선에 발휘할 수 없을까 하는 바람 때문이다.
오래전 방송사 사장 및 이사 임명 시스템을 가지고 수없이 많은 토론회를 했던 적이 있었다. 대통령이 임명하는 방송사 사장과 정치권이 지분을 나눠 갖는 식으로 임명되는 이사진이 방송 자율성을 근본적으로 해친다는 게 대부분 토론회의 주요 결론이었다. 하지만 그게 다였다. 구체적인 이유는 알 수 없지만, 또 현실적인 어려움이 분명히 존재했겠지만 그 ‘잘못된 관행’은 개선되지 못했고 바로 그 잘못된 관행 속에서 너무나 정치 편향적인 사장과 이사들이 임명되어 왔다.
최근 사퇴 논란에 휩싸인 KBS의 길환영 사장 역시 바로 그 ‘관행’으로 탄생한 인물이다. 단순히 길환영 사장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잘못된 관행의 결과물인 셈이다. 만약 그 오래전에 이러한 관행이 개선되었다면 아마 현재 KBS는, MBC는 적어도 지금처럼 국민들로부터 손가락질을 받지는 않았을 것이다. 아니 방송사로부터 쫓겨난 수많은 해직 언론인들 역시 해당 방송사에 남아 ‘역시 KBS와 MBC가 최고야!’라는 말을 듣게 만들어 줬을 것이다.
이제는 꽤 유명해진 ‘하인리히 법칙’이라는 것이 있다. 산업재해 전문가였던 하인리히는 산업재해로 중상자가 1명 나오면 그 전에 같은 원인으로 발생한 경상자가 29명, 같은 원인으로 부상을 당할 뻔한 잠재적 부상자가 300명 있었다는 통계적 사실을 발견했는데, 이를 요약해 1:29:300법칙이라고도 부른다. 즉 큰 재해와 작은 재해 그리고 사소한 사고의 발생 비율이 1:29:300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이 법칙의 본질은 단순한 ‘비율’이 아니다. 정말 큰 일이 발생하기 전에 수많은 징후들이 있으며 바로 그 징후들을 간과할 경우 언젠가 돌이킬 수 없는 사고가 발생한다는 게 하인리히 법칙의 핵심이다. 이렇게 말하면 이번 ‘기레기 논란’이 ‘큰 재해’고 그 이전에 수많은 경미한 징후들이 있었는데 간과했다고 해석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기레기 논란’ 정도(?)를 큰 사건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기성 언론사 입장에서 정말 큰 재해는 언론사가 신뢰를 잃어 문을 닫게 되는 것이 아닐까? 대안 매체들에 의해 존재감을 상실하고 밀려나는 게 아닐까? 그렇게 보면 세월호 참사 관련 ‘기레기 논란’은 ‘경상’인 ‘29’에 속하며, 이 경상들이 차곡차곡 쌓여가고 있다고 해석할 수 있다. 그런 면에서 기레기 논란에 대처하는 태도가 단순한 ‘반성’에 그쳐서는 안되고 반드시 ‘개선’에 이르러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의 의미가 단지 ‘도덕적’ 관점만은 아님을 눈치 챌 수 있을 것이다. 어쩌면 이번 세월호 참사 관련 기레기 논란이 29번째 ‘작은 재해’였을 지도 모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