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선거 이후의 지역언론
[언론 다시보기] 변상욱 CBS 콘텐츠본부장
변상욱 CBS 콘텐츠본부장 jak@journalist.or.kr | 입력
2014.06.04 15:1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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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변상욱 CBS 콘텐츠본부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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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 선거도 있고 선거 개표방송도 있는데 정작 우리는 ‘지방정치’의 실체가 무엇인지 제대로 모른다. 지방정치는 ‘이번 선거에 누가 출마하려 한다’는 이야기로 시작해 ‘누가 출마했다’로 이어진 뒤 ‘누가 앞선다’로 넘어가 ‘누가 당선됐다’에서 끝난다. 지역주민의 일상과 너무 멀리 떨어져 있다. 물론 이것은 수도권을 포함하는 이야기이다.
지방정치를 구성하는 한 축은 지역 언론이다. 지방정치의 더딘 발전은 지역의 이슈와 전개과정을 세세히 읽어 전하고, 지역 여론을 지방정치와 정책에 연결시켜야 할 지역 언론에 책임이 있다. 지방정치의 구현에서 지역 언론이 제 역할을 하자면 지금의 지방행정부에 쏠려 있는 취재보도에서 지방의회로 비중을 옮겨야 한다. 지방의회는 주민대표기관으로 주민의사를 지역 정책에 반영하여 집행부 감시, 자치입법, 정책 수립, 예산통제, 지역현안 해결 등을 추진할 가장 중요한 존재이다. 그러나 기자들은 홍보예산이 모여 있는 지방행정부에만 몰린다.
지방자치단체장과 지방의회의 관계도 더 파고들어야 한다. 지자체장의 권한이 비정상적으로 비대해지는 데에는 언론이 지자체장만을 집중 보도함으로써 프리미엄이 생긴 탓도 있다. 지자체장이 전횡을 일삼고 지방의회가 지자체장과 ‘우리가 남이가’ 식으로 담합하면 지역 행정은 기득권 세력 위주로 돌아가고 예산은 허비된다. 서로가 서로를 견제하고 긴장이 풀어지지 않도록 언론이 유도해야 한다.
지방정치를 살리려면 구습과 적폐를 없애야 하는데 이것 역시 언론의 몫이다. 특정 지역정당이 독점하고, 패거리 정치가 횡행하고, 의원의 전문성과 도덕성도 부족하다. 토호와 토건 세력들이 지방정치와 행정에 개입해 부적절한 정책을 유도해 내고, 의회운영도 비민주적이어서 시민의 요구와 지역 여론이 반영되기도 힘들다. 이대로 두고는 지방정치가 건강해질 수 없다.
지역주민이 지방정치에 관심을 덜 갖는다면 갖게끔 만들어야 한다. 어쩌면 관심이 적다는 것은 편견일 수 있다. 지역 언론이 지방정치와 정책에 새로운 방식의 기획과 아이디어들을 내놓고 심층적인 보도를 꾸준히 한다면 지금의 수준이 아닐 것이다. 시청자와 독자는 언론이 자신들의 삶과 직결된 문제들을 알기 쉽고 깊이 있게 파헤쳐 주길 바란다. 발로 뛰어 발굴한 내 고장의 뉴스를 보기 원한다. 그러나 지역소식을 전하는 로컬뉴스에는 봐도 그만 안 봐도 그만인 뻔한 뉴스들이 훨씬 더 많다. 지역 정세와 지역주민의 삶이 어떤지에 대해 안목을 넓혀주는 기사는 드물다. 그러다 지역 건설·토건업자 등 토호들의 개발이익이 걸린 이슈에는 과도하게 지역 언론의 보도가 쏠리기도 한다.
시청자·독자는 지역의 주요 이슈에 대해 지방행정부와 지방의회의 충돌, 지방정부와 중앙행정부의 갈등, 지역 여러 세력들의 힘겨루기를 세세하게 그려내는 지방 정치 기사, 추적 탐사보도를 필요로 한다. 지역에서 실권을 쥔 몇몇에 대한 홍보성 보도가 아닌 다양한 정치·이해집단의 충돌을 보도할 때 더 반응한다. 자치단체장의 동정만 언급한 기사보다는 자치단체장을 인터뷰해 내보내는 것이 반응이 좋고, 거기에 자치단체장과 대립각을 세운 다른 정치인을 함께 붙여 내보내면 더 듣고 읽을 만하다. 다시 각 정당·시민단체들의 반론과 전문가 견해까지 보탠다면 기사는 풍성해진다.
또 미래의 새로운 리더가 될 만한 지역인물의 발굴은 뒷전이다. 지방정치 이슈를 더 발굴하고 더 흥미롭고 다채롭게 기획하고, 균형도 잡고 생생히 보도하자. 지방정치는 지방선거용이 아니다.
현실은 어디까지를 지역 언론이라고 불러야 할지 혼란스럽다. 언론이라고, 언론인이라고 부르기 난감한 숱한 상황들이 벌어지고 있음은 우리 모두가 잘 알고 있다. 이번 지방선거에서도 출마자와 취재자의 야합이 적발됐다. 어디 가서 하소연하기도 부끄러운 일들이다. 물론 국민의 공영방송부터 흔들리는 마당에 지역언론을 지목해 탓할 수도 없는 일이다. 그러나 지역언론의 난맥상이 이대로 계속된다면 머지 않은 장래에 지역의 중심언론은 케이블TV의 SO가 되고, 지역신문과 방송은 퇴조에 퇴조를 거듭할 것이다. 이를 되돌릴 방안 중 하나가 지방정치 보도를 중심으로 한 지역언론의 새판 짜기이다. 지방선거 이후 지역언론의 분발을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