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평론가의 베스트셀러 1위에 대하여

[스페셜리스트│문학·출판] 어수웅 조선일보 기자 · 문화부


   
 
  ▲ 어수웅 조선일보 기자  
 
올해 상반기 출판계 화제 중 하나는 ‘문학평론가의 베스트셀러 1위’였다. 정여울의 여행에세이 ‘내가 사랑한 유럽 TOP 10’이 단순히 여행이나 문학 분야를 넘어 종합 베스트셀러 1위와 2위를 줄기차게 오르내렸던 것이다. 순문학을 하던 작가, 그것도 문학평론가로서 베스트셀러 작가가 됐다는 것은 극히 예외적인 일. 반응은 엇갈렸다. 갈수록 위축되고 있는 문학이 거둔 쾌거라는 호의적 평가와 항공사의 CF에 기댄 상업적 기획에 불과하다는 비판이다. 양쪽 모두 부분의 진실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기자의 입장은 긍정적인 편이다.

물론 대한항공의 TV광고에 의존한 출판이라든지, 문학·에세이 분야가 아니라 실용서로 이 책을 분류한 출판사의 의도는 속이 뻔히 들여다보이는 것이었다.(현재 인터넷 서점에서는 특정 책을 실용서로 분류할 경우 대폭 할인 판매가 가능하다. 따라서 출판사 입장에서는 베스트셀러 진입을 위한 전략 중 하나다.) 그러나 문화 생태계에는 예술과 엔터테인먼트의 균형이 필요하고, 또 문학의 확장이라는 차원에서도 평가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실제로 평론가는 이런 비판적 시선을 버거워했다. 그의 당부는 베스트셀러 순위만 보고 얘기할 게 아니라, 우선 제대로 읽어보고 나서 비판해달라는 것이었다. 그는 “이 책이 문학적인 글쓰기의 일환이었기 때문에 참여한 것이지 문학과 상관없는 일이라면 아예 시작도 안했을 것”이라고 했다.

이 분야를 담당하면서 숱하게 쏟아지는 여행서를 매주 만난다. 하지만 그 중에서 베스트셀러가 되는 책은 정말 희귀한 일이다. 언뜻 시인 이병률의 여행산문집 ‘끌림’이나 ‘바람이 분다 당신이 좋다’ 등이 예외적 사례로 떠오르지만, 그나마도 종합 베스트셀러 1위를 차지한 적은 없었다.

전문가들은 인문과 여행의 만남을 가장 큰 이유로 든다. 그 중에서도 가르치려는 인문학이 아니라, 독자와 대화하듯이 유쾌한 수다를 떠는 편안한 인문 여행서가 인기의 비결이다. 실용과 감성의 단순 이분법이 아니라, 이를 넘어서는 정여울의 소박한 인문학적 문체가 독자들과 공감을 이뤄냈다는 것이다.

최근 사적·공적인 자리에서 그를 자주 만날 기회가 있었는데, 이렇게 물어봤다. 독자 각각은 자신만의 이유가 있겠지만, 필자 입장에서는 독자들이 이 책의 어떤 부분에 공감했다고 생각하느냐고. 그는 “안 그래도 어디론가 훌쩍 떠나고 싶은 여러분들의 마음에 제대로 불을 지른 것 같다”며 웃었다. 사실 불씨는 이미 오래 전부터 타오르고 있었는데, 그가 본의 아니게 기름을 부은 것 같다는 것이다. 

사실 ‘소비사회’라는 표현이 닳아 보일만큼 울트라 소비사회가 된 한국사회에서 여행만큼 내구성이 깊은 상품이 또 있을까. 상품의 소비에 대한 만족도는 시간이 갈수록 내리막길이지만, 여행은 오히려 시간이 지날수록 새로운 추억으로 덮어쓰기 되어 인생의 등불이 되어준다는 게 이 평론가의 생각이다.

정여울과의 대화에서 또 하나 인상적인 대목이 있었다. 이 베스트셀러의 의미를 물었을 때 그가 수줍게 고백한 사적 의미는 ‘엄마의 축하’였다. 왜 그녀가 문학을 공부하는지, ‘실용성이 극도로 떨어지는 글’을 왜 끝도 없이 쓰는지 가장 이해하지 못하던 ‘엄마’가 드디어 이 평론가의 글을 이해해주었다는 점이 가장 기뻤다는 것이다.

주지하다시피 문학의 효용은 실용적 가치와는 거리가 멀다. 꿈과 상상력은 숫자로 계량화할 수 없는 법. 하지만 시간과의 싸움에서 끝까지 승리하는 것은 결국 실용 상품이 아니라 문학을 필두로 한 예술이 아닐까. 그는 “내가 가장 사랑하는 여행이라는 주제로 내가 가장 쉼 없이 자발적으로 지속해왔던 글쓰기를 통해 독자들의 사랑을 받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 일인지를 이번 책은 깨닫게 해 주었다”고 했다. 정여울이 시도한 문학적 확장을 응원한다.
맨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