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세월호는 언론에서 사라지나

[언론 다시보기] 변상욱 CBS 콘텐츠본부장


   
 
  ▲ 변상욱 CBS 콘텐츠본부장  
 
월드컵 축구가 끝났다. 방송과 신문들이 온갖 역동적인 화면과 시커멓고 커다란 활자로 고조시켰던 축구 사랑도 애국심도 잦아들고 있다. 세계의 언론은 시청자·독자를 어설픈 축구팬으로 바꾸어 놓음으로써 축구와 관련된 거대한 국제 비즈니스를 가능케 하고 FIFA가 아무런 국가나 국제규약의 견제 없이 기득권을 키워갈 수 있도록 거든다. 또한 국내적으로는 각 나라의 정치권력이 축구를 통해 국민의 가상적 통합을 이룰 수 있도록 지원한다. 축구 특히 월드컵 축구는 정치적 목적에 따른 ‘가상의 통합과 가상의 공동체’와 밀접하다.

우리의 경험 속에서 축구를 통한 가상의 통합과 공동체를 찾는다면 누구나 2002년 붉은 응원단을 떠올릴 것이다. 그 엄청난 국가적 응집과 하나 됨은 어디로 가버렸을까? 그 때 언론과 전문가들은 이 엄청난 국민적 하나됨을 국가발전의 에너지로 승화시켜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하지만 우리는 국가발전은커녕 축구발전도 이뤄내지 못했다. 이번 월드컵에서는 일시적인 응집과 단결의 그림자도 보기 힘들었다. 자국팀이 한두 경기에서 승리를 거둬야 응집이 시작되는 모양이다.

응집과 통합은 희열만으로 가능한 것은 아니다. 슬픔과 고통으로도 가능하다. 그 실례가 ‘세월호 공동체’이다. 끔찍한 참사를 통해 우리는 우리 국가와 사회의 문제가 무엇이고, 우리 각자의 책임과 과제가 무엇인지를 뼈저리게 느꼈다. 그리고 울면서 ‘하나’가 되어갔다. 관료들을 지휘하는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관료 마피아의 척결을 선언할 만큼 ‘세월호 공동체’의 응집과 분출은 대단한 힘을 가졌었다. 모두가 제대로 된 나라를 간절히 소망하고 그 책임이 자신에게 있으며 이번에도 못하면 우리는 아무 것도 아니라는 공동의 인식 속에 ‘가만 있지 않으련다’는 범국민적 구호까지 등장했다. 세월호 공동체는 국민을 관중으로서, 팬으로서, 붉은 악마 응원단으로서 뭉치게 하는 ‘월드컵 공동체’와는 의미와 가치가 다르다. 국가의 비전과 미래를 위한 대단히 소중한 경험이자 하나 됨의 기회이다.

그러나 언론에서 세월호는 사라지고 변질되었다. 물론 아직도 카메라는 팽목항을 비추고 유병언씨를 쫓는 추적보도도 계속되고 있다. 그러나 그것은 진정한 세월호 보도가 아니다. 우리 언론의 세월호 보도는 처음부터 방향성을 상실했다. 처음에는 오보 소동으로 사회를 혼란케 했고, 이어서는 범사회적 무기력의 발원지가 되었다. 어느 시점 이후로 언론의 세월호 보도는 사고 원인의 사회구조와 우리가 무엇을 할 것인가에 집중되었어야 한다. 그러나 우리 언론은 참사의 현장 바다를 하염없이 비추고 몇 명의 잠수부에만 기대를 걸게 하다가 아무 것도 할 수 없고 아무 것도 해내지 못했다는 무력감과 좌절감만을 느끼게 했다.

또 여러 채널을 가득 채운 세월호 보도는 재난을 소비시켰을 뿐이다. 반복되는 재난 보도에서 시청자들은 안타까워도 하지만 화면에 펼쳐지는 재난으로부터 자신은 멀리 떨어져 안전하다는 안도감과 만족감도 누리게 된다. 당사자와 가족들에게는 공포와 고통이지만 뉴스의 소비자에게는 흥미와 함께 안도감을 누리는 습관성의약품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유병언 잡나 못잡나로 하염없이 반복되는 방송 프로그램들도 그런 예이다.

무력감으로 나른해지고 한편으로는 안도감을 즐기는 ‘중독의 공동체’를 만들 건지 응집된 힘을 국가개조에 쏟아 넣을 ‘세월호 공동체’를 이룰 건지…. 그 키를 정부와 언론이 쥐고 있다. 이 지점에서 정부는 정무적으로 판단할 것이다. 정치권력의 지휘 하에 있으니까. 그렇다면 언론은 어떤 판단으로 이 문제를 처리할까? 이것은 언론이 어떤 힘에 의해 지배되고 있느냐와 관련이 있다.

우리 언론이 저널리스트의 건강한 상식과 이성, 국민과 사회를 향한 책임의식의 지휘를 받을까? 아니면 시청률과 수익에 휘둘릴까? 그것도 아니면 역시 정치권력에 눈치껏 보조를 맞출까? 수백 명의 희생과 온 국민의 눈물을 대가로 얻어낸 국가개조의 응집된 에너지는 자칫 2014년 10대 뉴스의 머리기사로 끝나고 말 수도 있다. 그리된다면 그 책임의 머리이자 몸통은 우리들 언론이다. 더 늦기 전에 세월호 참사를 통한 교훈과 반성들을 다시 정리하고 과제를 점검해 국가와 권력의 개조에 나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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