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란치스코 교황이 남긴 것

[언론다시보기] 김준현 변호사·민변 언론위원장

   
 
  ▲ 김준현 변호사  
 
교황은 이 땅을 떠나 바티칸으로 돌아갔지만 아직도 여운이 가시지 않는다. 그 분이 남긴 발자취가 새록새록 눈에 밟힌다. 가난한 자의 성인으로 추앙받는 ‘아시시의 성 프란치스코’를 본받고자 이를 세례명으로 한 것처럼 그는 이 땅에서 가난한 자, 힘없는 자, 약하고 소외된 자들을 한껏 품었다. 세월호 유가족, 용산참사 희생자, 쌍용자동차 해고자, 위안부 할머니, 밀양과 강정의 주민, 새터민들까지. 갈등의 한복판에서 신음하고 고통받고 있지만 언론과 국민들의 관심에서 멀어져 있는 사람들을 가장 먼저 만나고 껴안았다.

‘규제없는 자본주의는 새로운 독재’라고 언급했던 평소 소신대로 빈부 격차와 경제적 불평등을 치유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신자유주의를 꼬집고 자본주의의 병리를 치유하고 변화시키기 위해 연대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물질주의의 유혹과 무한경쟁의 사조에 맞서 싸우라” “경제 불평등과 이기주의 물질주의를 배척하라”고 강조했다.

방한 기간 내내 온 국민은 교황의 일거수일투족에 열광했다. 우리가 일찍이 겪어보지 못했던 지도자의 모습을 보아서이다. 교황은 가장 소외된 이웃을 어루만지며 말이 아닌 행동으로 화합과 치유에 나섰다. 따뜻하고 온화한 몸짓, 파격적이며 형식에 구애됨 없는 소통 방식은 우리 모두의 가슴에 깊은 울림을 줬다. 소형차를 타는 모습에서, 길가의 환영인파와 만나 일일이 눈인사를 나누고 강복을 하는 모습에서, 낮은 자세로 임하는 태도에서, 이상적 지도자의 모습을 본 것이다. 카톨릭신자 여부를 떠나 시민들은 항상 마음속에만 그렸던 지도자 모습이 실제 현실에서 나타났다는 점 때문에 환호했다. 그의 행동과 발언에 위안을 얻고 마음의 평화를 찾았다. 인간의 존엄성을 회복해 공정하고 지혜롭게 함께 살아가는 법에 대해 다시금 생각하게 했다.

올 초 이 지면에서 교황 방한에 대한 기대를 담은 글을 쓴 적이 있다. 교황이 정치지도자들을 만나 대화와 소통의 중요성에 대해 조언해주기를 바라는 소박한 소망을 적었다. 실제 교황은 “정치적 분열, 경제적 불평등 문제를 해결하려면 열린 마음으로 소통과 대화, 협력하는 것이 대단히 중요하다” “대화가 독백이 되지 않으려면 생각과 마음을 열어야 한다”고 조언했다.

또 공직자들에게 “가난한 사람들과 취약 계층 그리고 자기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사람들을 각별히 배려하고 그들의 절박한 요구를 해결해 줘야 할 뿐만 아니라 그들이 인간적·문화적으로 향상될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한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우리에게 깊은 감명을 준 교황은 이제 떠났다. 80만명이 운집한 가운데 시복식이 열렸던 광화문광장에는 다시 세월호 유가족들의 단식농성천막이 자리를 잡았다. 국회는 세월호특별법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여야가 서로 상대방 탓만 하고 있다. 교황이 닦아줬던 세월호 유가족의 눈물은 다시 흐르고 있다.

교황의 위로와 격려는 우리에게 위안을 줬지만 그것만으로는 우리 사회의 갈등이 치유되고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는다. 그 어떤 신도 기도하는 사람의 소망대로 모든 것을 이뤄주지는 않는다. 다만 기도를 들어주고 그 소망을 우리 자신이 현실로 만들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 줄 뿐이다.

그가 방한 중 젊은이들에게 던진 메시지는 ‘깨어나라’였다. “도움을 바라는 모든 이들의 간청을 밀어내지 말라”고 설교했다. “가난한 이들, 외로운 이들, 아픈 이들, 소외된 이들을 찾아 섬기라”고도 강조했다. 비단 청년만 향하는 조언은 아닐 것이다. 우리 모두가 마음속 깊이 받아들여야 하는 실천의 메시지다. 일찍이 베르톨트 브레히트는 이렇게 노래하지 않았던가. ‘기대하지 마시오 당신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의 대답을’
맨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