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쇼 보도와 민주주의 위기

[언론 다시보기] 변상욱 CBS 콘텐츠본부장

지난 3일 지상파 방송 3사가 대통령이 주재한 규제개혁 장관회의를 1시간씩 생방송으로 중계했다. 지난 3월20일 열린 제1차 회의에 이어 두 번째 생중계다. 중계 방송된 회의 내용은 별게 없었다. 대통령의 장관 야단치기, 참여 패널의 하소연에 대한 적당한 리액션과 웃음…. 잘 준비된, 별 무리 없는, 그리고 특별할 것도 없는 회의였다. 내용은 그랬지만 외양은 다르다. 국정홍보방송 KTV도 이 회의를 생중계 했으니 4개의 TV채널에서 동시에 생중계한 엄청난 회의였다. 


후일담을 듣자하니 KBS는 회의 전날 밤 늦게야 중계방송을 확정했다고 한다. SBS는 현장을 잠깐 연결해 박 대통령의 모두발언만 방송하려다 시간을 늘려 1시간 가량 방송했다고 한다. 뒤늦게 편성되었는데도 그 짧은 시간에 중계방송 준비를 끝낸 집중력과 팀워크가 대단하다 싶었는데 그것도 아닌가보다. KTV 화면을 받아썼다고 한다. 중계 의무도 없고, 중계 준비할 시간도 부족하고, 광고가 몰려들 내용도 아닌데 3사 모두 같은 결정을 내리면서 동시에 국정홍보채널이 되어 버렸다. 그러나 국정홍보채널에도 격이 있음을 알아야 한다. 


1. 압력에 의해 국정홍보를 떠맡은 채널

2. 충성경쟁에 의해 자진해 끌어안은 채널

3. 방송의 설립 목적이 국정홍보인 채널. 


각 방송사가 어디에 해당하는지는 각자의 판단에 맡기고 중요한 몇 가지를 따져 보자.
1. 방송사는 1차 회의도 중계했고 2차 회의도 했으니 3차 회의도 중계해야 한다.

2. 방송사 내부에서는 정부의 규제완화 일변도의 정책이 과연 타당하냐는 비판적 보도를 내놓기가 지극히 어려워진다.

3. 정부의 규제완화 드라이브에 이런 저런 부작용이 우려된다는 보도조차도 쉽지 않을 것이다.

4. 규제완화 이외의 주요 이슈는 사회적 의제 대상에서 수면 아래로 가라앉는다. 


세월호 특별법, 군부대의 사망사고, 황당한 민생법안 처리가 국민의 초미의 관심사여야 하나 결정적으로 다뤄질 그 순간에 시야에서 밀려나 버렸다. 이리되면 문제는 대통령도 아니고 방송사도 아니고 우리의 민주주의다. 우리 사회에서 지상파 방송 3사를 일거에 움직여 대통령 주재회의를 정략적으로 전파할 수 있다면 그 권력은 위험하다. 또한 그런 언론들도 위험하다. 문명화된 민주 사회의 공영 뉴스는 권력의 필요에 민첩하게 반응하는 것이 아니라 민주주의의 필요에 민감히 부응해야 한다. 규제개혁 장관회의를 열심히 중계한 방송들이 권력의 필요에 반응한 것인지 민주주의의 필요에 부응한 것인지 판단 받아야 한다. 


물론 정치권력은 자신의 메시지와 이미지를 뉴스에 싣고 지지를 높이기 위해 수단과 전략을 찾을 것이다. 그러나 거기에 너무 쉽게 넘어가는 우리 언론이 더 심각한 문제이다. 그 언론에 민주주의를 의지해야 하는 우리 사회는 더욱 불안하다. 정치인에게 의제설정이란 뉴스를 이용하여 대중의 의식에 영향을 끼치는 것이다. 국민은 자신이 규제개혁이란 의제에 대해 정보를 얻고 정책의 현장을 생생히 보았다고 생각하겠지만 실제로는 정략적 시각에 맞추어 잘 짜놓은 틀 속에서 이미지를 조작당한 것일 뿐이다. 국민은 규제완화 장관회의를 보면서 대통령이 국가의 정책을 세워야 하고, 현장의 목소리를 들어야 하고, 실무 장관들에게 직접적으로 국민의 목소리를 들려주며 지시하다보니 자연스럽게 발생한 뉴스라고 여길지 모른다. (물론 그렇게 쉽게 넘어가지 않는 시청자가 다수이겠지만….) 그러나 이런 과정이 반복되면서 권력은 방송을 통해 사람들에게 무엇을 생각하고 어떻게 생각하라고 지시하고 조종할 수 있게 된다. 조종되는 국민은 부의 불평등과 양극화가 정치권력의 집중, 기업위주 정책에 의한 불평등의 고착화로 인해 벌어진 결과라고 인식하지 못한다. 어쩔 수 없는 삶의 현실이라고 받아들이게 될 것이다. 


언론은 뉴스의 가치를 객관적이고 중립적으로 판단하고 균형 있게 전해야 한다. 비판적이기 위해 비판하는 것이 아니라 객관성과 중립성을 확보하고자 노력하다보면 비판적인 기능을 수행할 수 있는 것이다. 제대로 비판적이라고 한다면 이 규제완화 장관회의가 어떤 배경에서 어떤 세력에 의해 어떻게 제작되어 어떻게 팔리기를 기대하고 국민에게 뿌려지는지를 전해야 한다. 그리고 규제완화 드라이브에 반대의견을 갖고 있지만 의제설정에서 불리한 위치에 있어 정책 수립과정에서 기회를 놓치기만 하는 정파에게도 방송의 기회가 주어져야 한다. 이것이 방송의 공공성이고 정치적 독립성이다. 


우리의 방송들이 끝내 균형과 비판성을 갖춘 보도를 외면하면 국정은 특정 정파의 손 안에 놓이게 되고 관료들은 정권의 눈치를 보며 통속적이고 뻔한 해결책만 재활용해 내놓으며 복지부동할 것이다. 결국 우리 사회의 정치와 행정은 국민 편이 아니라 권력의 지배와 군림으로 변질되어 버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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