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인의 제주 땅 매입과 무책임한 선동

[스페셜리스트 | 외교·통일] 김동진 세계일보 차장·정치부

묘한 느낌이 들었다. 한 시민단체가 지난 14일 제주도 전체 외국인 소유 토지의 40% 이상이 중국인 소유로 드러나자 원희룡 제주도 지사에 “더욱 거세지고 있는 중국인의 제주도 땅 매입 열풍을 잠재우라”고 강력하게 요구했다는 소식을 접하고서다.


중국인들이 우리의 소중한 땅을 쓸어담고 있으며 이를 그대로 방치할 경우 ‘큰 일’이 날 수 있다는 우려가 한국 사회에 빠르게 퍼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언론 보도도 이런 기류에 편승하고 있다. 제주도의 중국인 소유토지가 2009년 2만㎡에서 2014년 6월 현재 592만2000㎡로 급증하자 이를 경고하는 기사가 쏟아지고 있다. 일부 매체는 중국 복부인 ‘다마(大)’가 국내 부동산 시장의 큰손이 될 것이라고 호들갑을 떨기도 했다. 민족감정에 기대어 중국인의 한국내 토지 투자를 ‘국부유출’로 몰아가는 무책임한 풍조가 엿보인다.


데자뷔라고 해야 할까. 일본에서 특파원 생활을 하면서 비슷한 현상을 지켜본 적이 있다. 2009년 초 막 부임했던 시절 일본사회는 장기 불황에서 탈출하기 위해선 ‘제3의 개국’만이 살길이라는 담론이 지배하고 있었다. 폐쇄적인 사고에서 벗어나 더 많이 외국과 교류하고 적극적으로 시장을 개척해 활로를 뚫자는 것이다. 이 시기에 일본에서 우리 한류 문화가 절정의 인기를 끌 수 있었던 한 요인이기도 하다.


하지만 2010년부터 사회의 풍향이 바뀌기 시작했다. 주류 미디어에서 조금씩 ‘우리 것을 지키자’는 국수적 담론이 등장했다. 이런 흐름은 그해 9월 중국과의 센카쿠(尖閣, 중국명 댜오위다오) 충돌 이후에는 걷잡을 수 없이 ‘중국 위협론’으로 활활 불타올랐다. 일본의 유명 의류업체인 레나운이 중국의 대형 섬유업체인 산둥루이(山東如意)에 팔리고, 가전 양판점 라옥스마저 중국 자본에 넘어가자 중국에게 ‘경제침공’이라도 당한 듯 울분을 토했다. 그 때까지 별 탈 없이 매년 큰 폭으로 늘고 있던 일본 내 중국인 관광객들에 대해서도 ‘매너가 나쁘다’ ‘무례하다’ 등의 부정적 평가를 달기 바빴다.


그중에서도 최고 압권은 ‘중국인이 물을 훔쳐간다’는 언론선동이었다. 극우성향의 산케이신문이 2010년 말 ‘중국이 일본의 상수원을 노린다’는 기획 시리즈를 내보냈다. ‘일본의 산림이 외국인에게 팔려나가고 있는데, 이들의 국적을 추적해보니 중국 본토 아니면 홍콩계 자본이었다. 이들이 투자한 지역을 보니까 식수원 근처이거나 하천 발원지 인근이었다. 물 부족에 시달리는 중국에 일본의 물을 빼앗길 위기에 놓였다. 국민의 안전을 위해 어떻게든 막아야 한다’는 요지의 보도다. 이를 계기로 각종 매체가 앞다퉈 똑같은 프레임을 되풀이했다. 비교적 중립적인 NHK마저 연말특집으로 ‘홋카이도 숲을 노리는 중국 자금’이라는 스페셜 다큐를 내보냈을 정도다.


하지만 중국인의 일본내 토지 매입 규모는 과거에 비해 크게 늘었기는 하지만 절대적으로는 여전히 적은 수준이다. 또 토지를 소유하더라도 그 땅에서 물을 채취해 중국으로 가져가려면 상수원 지역과 관련된 여러 규제를 받아야 하기 때문에 현실적으로는 일어나기 어려운 시나리오다.


그런데도 이런 점은 깡그리 무시한 채 마치 중국이 일본 열도를 야금야금 집어삼키고 있다는 식으로 보도한 것은 무책임한 선동이었다. 안보적으로 중국의 잠재적 위협에 대응할 필요는 있지만 투자와 교역에까지 이런 잣대를 들이대며 무분별하게 중국 위협론을 과장한 것은 지금와서 보면 결과적으로 일본의 국익에도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2차 대전 이후 지금까지 그 어떤 국가도 자국 기업이나 국민 개개인의 해외 땅투자로 국토를 넓히고 주권을 확대한 사례는 없다. 1980년대 일본인들이 뉴욕의 거대 빌딩들을 쓸어담은 적이 있는데 그래도 뉴욕은 미국 것이었다. 지금은 빌딩 소유주가 또 바뀌어 국적을 묻는 것조차 우습게 됐다.


중국인들이 제주도 땅을 산다고 해서 제주도가 중국땅으로 변하는 것이 아니다. 한·중·일 3국이 앞으로 서로에게 더 많이 투자하고 인적 교류도 더 늘리는 것이 국부유출이 아니라 ‘국부창출’임을 잊어선 안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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