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사이버 망명을 부추기나

[언론다시보기] 김준현 변호사·민변 언론위원장

며칠 사이에 똑같은 내용의 휴대전화 메시지를 자주 받았다. ‘○○님이 텔레그램에 가입했습니다.’ 이른바 ‘사이버 망명’이 주변에서도 벌어지고 있었던 셈이다.


알다시피 시작은 “대통령에 대한 모독 발언이 도를 넘어서고 있다”는 박근혜 대통령의 언급이다. 검찰은 곧바로 사이버 명예훼손을 엄단하겠다고 나섰다. 세월호 진상규명을 요구해오던 정진우 노동당 부대표에 대한 수사과정에서 지인 3000여 명과의 통신사실이 경찰에 압수되었다는 인권단체의 발표까지 있었다. 이들 사건이 맞물리면서 사태는 증폭됐다. 대표적인 모바일 메신저 서비스인 ‘카카오톡’ 같은 프로그램에서의 사적인 대화도 국가권력이 검열할 수 있다는 우려가 시민들 사이에서 확산됐다. 이메일 계정을 구글로 옮겼던 몇 년 전 일이 모바일 메신저에서 반복된 것이다. 


사실 많은 사람들이 사이버 망명을 택한 것은 사용과 보안의 편의성이라기보다는 국가권력에 대한 항의와 조롱의 의미가 더 클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무엇보다도 사이버공간이든, 실생활이든 개인의 사적인 대화를 검열하겠다는 국가권력의 오만함에 대한 불만이다. 과거 유신시대의 ‘막걸리 보안법’도 아니고, 실시간 사이버 검열이라니 시계가 거꾸로 돌아간 것 아니냐는 착각마저 들 정도다. 일각에서 말하는 것과는 달리 본질은 모바일 메신저의 암호화나 저장기간의 길고 짧음에 있는 게 아니다. 진짜 문제는 위정자들이 표현의 자유를 경시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견제와 비판 받지 않는 권력은 부패하기 마련이다. 누구든 비판을 받게 되면 자신의 행태를 돌아보고 근신하고 행동을 바르게 하는 것이 먼저다. 진실을 가리고 반박하는 것은 차후에 해도 늦지 않다. 자신을 돌아보기보다는 남의 입에 재갈부터 물리려는 사고방식에 사이버 공간에서나마 이 땅을 떠나고자 하는 마음이 반영된 것 아닐까. 


한편으로는 해묵은 과제이긴 하지만 이번 일을 계기로 범죄수사와 관련해서 현행 통신비밀보호법의 정비가 요구된다. 현행법상 범죄수사와 관련해 이동통신사업자 등이 수사기관에 제공하는 자료는 통신사실기록과 관련된 것이지 통신의 내용은 아니다. 언제 누구와 전화를 하고 문자메시지를 주고받았다는 기록이 제공의 대상이지 그 문자메시지 내용은 대상이 아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는 전기통신의 내용이 저장된 해당기업의 서버 등을 압수·수색하는 방식으로 개인의 사생활이 침범되고 있다. 이 경우는 삭제되지 않고 서버에 저장되어 있던 이메일이나 문자메시지, 대화 내용까지 고스란히 수사기관에 공개되고 만다. 특히 수사와는 무관한 내용, 이를테면 수사 대상자와 친구간 사적인 대화까지도 무한대로 노출되는 형국이다. 이런 점에서 국가기관의 압수수색을 수용할 의무가 상대적으로 자유롭거나 대화메시지를 저장하지 않는다는 해외 업체를 선택하는 시민들이 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고 망명으로 모든 게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기본적으로 문자메시지 등 사적인 대화 내용을 보관하는 것은 당사자의 동의 없이는 해당기업이 할 수 없다. 문자메시지를 보관할 것인지, 보관기한을 둘 것인지 등은 이용자와 기업간 해결할 문제이다. 텔레그램을 선택할 것인지, 카카오톡을 선택할 것인지를 이용자에게 맡기는 것처럼 말이다. 


또 하나는 통신내용에 대한 압수수색은 엄격한 조건하에서만 선별적으로 이뤄지도록 법조문을 구체화하는 것이다. 나아가 법 집행과정에서 기본권이 침해된 자들에게는 국가의 손해배상의무를 명시화하는 방안을 도입할 필요가 있다. 예로 불기소되거나 무죄로 끝난 사건의 경우는 당사자들에게 통신내용 침해에 대한 별도의 보상을 하는 방안 등이다. 


어쨌든 사이버 망명이 이어지고 있는 것을 보니, 그래도 목소리는 낮더라도 지속될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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