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상파 텔레비전 방송이 과거의 화려한 권좌에서 물러나고 있음은 모두가 지켜보는 바이다. 과거 지상파 텔레비전은 당대의 미디어 가운데 가장 뛰어난 콘텐츠, 가장 선진적인 기술의 보유, 전파의 독과점에 의해 번성하고 최고의 지위에 올랐다. 그러나 이제는 아니다. 미디어의 환경이 바뀌고 지상파 텔레비전의 가치는 구조적으로 추락의 길을 걸어야 했다.
최근 그 추락을 잠시나마 지연시켜준 사건이 세월호 참사다. 세월호 사고 당일 지상파 방송 3사 메인뉴스 시청률은 6%포인트 이상 껑충 뛰었다. KBS ‘뉴스 9’은 16.5%, MBC ‘뉴스데스크’는 8.6%, SBS ‘8시 뉴스’는 10.6%…. 지상파 방송 3사 메인뉴스 시청률을 합치면 35%가 넘는다.(시청률 조사업체 TNmS 기준). 구조작업이 진행된 다음날인 17일의 전국 가구 기준 텔레비전 시청 시간은 8시간26분, 전주 같은 요일에 비해 1시간 넘게 늘었다.
세월호 참사로 인한 시청률과 시청자 가구 수의 변화를 단기·중기로 나누어 연구해 보아야겠지만 미국 9·11 참사 당시의 예를 봐도 지상파 텔레비전이 가장 큰 수혜자임은 능히 짐작할 수 있다. 미국은 9·11 당시 3대 전국 네트워크 방송의 저녁뉴스 야간 시청자가 7900만명에 이르렀다. 그 이전에는 2700만~2800만명 수준으로 계속 줄어가는 추세였다. 9·11 일주일 후의 평균 시청자 수는 3100만명이었다. 그 후로 6개월 간 평균 시청자는 3000만명을 웃돌았다. 이런 선례로 추정해 보건대 우리 지상파 텔레비전도 뉴스를 중심으로 시청자가 급증하며 3개월 이상 추락을 늦추는 효과를 보았으리라는 추정이 무리는 아니다. 월드컵 축구도, 아시안게임도 먹히지 않는 상황에서 지상파 방송은 큰 이득을 올린 셈이다.
그러나 지상파 방송의 행태는 배은망덕에 가깝다. KBS는 당시 재난주관방송사임에도 전원 구조 오보를 내는가 하면 정부여당 측에 편향되게 보도해 세월호 유가족들이 KBS를 항의방문하기까지 했다. KBS 양대 노조가 공정방송을 위한 파업에 돌입했고 결국 사장이 자리에서 물러나야 했다. 물론 MBC가 받은 비판 역시 KBS와 별 다를 건 없었다.
지난 국정감사에서 새로 KBS를 맡은 신임 사장은 “세월호 관련 보도 전반에 대한 보고서를 작성하고 있다. KBS 보도는 분량이나 기획 등 심층보도가 많았다”고 자평했다. 그렇다면 한바탕 홍역을 치렀으니 ‘이제라도 잘하겠지’란 기대는 가능한 걸까? 한마디로 아니다. 세월호 6개월을 맞는 날 지상파 방송들은 세월호 6개월을 생략하고 넘어간다. KBS 메인 뉴스 프로그램에서는 ‘세월호 참사 반년…안산 시민 고맙습니다’라는 기획리포트가 세월호 관련 뉴스였다. 세월호 참사와 이후의 과제를 ‘안산지역의 문제’로 묶어 버렸다. MBC는 ‘울산 태화강에 연어가 돌아왔다’라는 기획뉴스를 내보냈지만 세월호는 없었다. 세월호 6개월의 의미를 몰라서 그랬을까? 아니다. 이것은 의도적으로 피한 것이다. 커다란 사고가 나면 1개월, 3개월, 6개월, 1년으로 시간을 매듭지어가며 반복해 다루는 건 관행이었고 그런 연속된 추적보도는 의미를 부여할 만하다. 신문에도 있는데 공영 지상파 방송에만 없다면 그것은 회피한 것이 분명하다.
지상파 방송이 세월호 참사의 교훈과 과제를 두고 두고 곱씹어서는 안 될 이유라도 있는 것일까? 상식으로는 그런 것이 있을 리 없다. 문제의 핵심은 지상파 방송이 섬기는 종교(?)이다. 국가 사회의 민주적 발전과 시민이라는 충성의 대상을 버리고 관권과 금권이라는 다른 우상을 섬겨 온 결과가 세월호의 외면으로 나타난 것일 뿐이다. MBC가 단행한 시사와 교양의 축소폐지도 결국은 그들이 무엇을 숭배하는가의 문제로 귀결된다. 그리고 그 우상숭배의 혼돈 속에서 우리는 지상파의 종언을 묵시적으로 바라보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