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가 특보단을 꾸려 언론인을 영입했다. 결코 반갑지 않다. 국정의 중추인 청와대에 검찰, 경찰, 언론, 정계의 엘리트들이 모여 머리를 맞대는 것이 왜 싫은가에 대해 설명해 보자. 우선 문고리 3인방, 십상시, 7인 모임이 뒤엉켜 있고 이를 해소하지 않겠다며 버티는 불통의 청와대에 언론인 특보가 들어가 대통령을 보좌한다는 것이 설득력도 의미도 없어 보인다. 이것이 첫째 이유다.
두 번째는 박근혜 정권의 구조적 성격이다. 박근혜 정권은 악성 코퍼러티즘으로 가고 있다. 코퍼러티즘(Corporatism), 협동조합주의는 국가가 자본과 노동을 동시에 컨트롤해 사회통합을 이루는 데 적용된 개념이다. 노사정협의체를 구성해 대기업의 전횡을 막고 노사분규로 인한 사회적 손실을 막고자 정부가 키를 쥐는 것이 대표적인 예이다.
그러나 정부에게 자본과 기업, 노동계의 통제를 맡겼는데 정부가 행정력, 경찰력, 사법적 제재를 휘두르며 위임된 권력을 남용하면 코퍼러티즘은 사회의 가장 위험한 적폐가 된다.
특히 코퍼러티즘이 우파에 치우쳐 변형되면 파시즘의 양태를 보이고, 다국적 기업과 유착하면 기업권력이라는 21세기의 네오코퍼러티즘이 되어 버린다. 그렇기 때문에 관료주의, 권위주의에 군사문화를 해결 못한 채 재벌기업 위주의 신자유주의 체제를 갖고 있는 우리나라에서의 코퍼러티즘은 개혁과 도덕성을 지닌 정권이 아니면 대단히 위험하다.
그런데 박근혜 정권은 정보기관, 검찰경찰, 사법부, 언론, 기업을 모두 일체화해 합체로봇처럼 컨트롤함으로써 새로운 코퍼러티즘을 만들어 내려 한다. 선거부정부터 시작해 친기업적 경제정책, 노동계 탄압과 고용불안정 심화, 종북몰이와 진보정당의 해산, 냉전이데올로기의 부활, 풍자와 비판 금지, 사이버공간의 검문검색까지 악성 코퍼러티즘의 예는 무수히 많다.
현 정권의 코퍼러티즘은 언론 특히 방송계에서 여실히 드러난다. 곳곳의 낙하산 사장과 이사장이 그렇고, 종편을 중심으로 극을 달리고 있는 이념방송들이 그렇다. MBC에서 잇달아 전해져 오는 숱한 징계와 해고 소식 또한 마찬가지이다. 이런 상황에서 저널리스트의 책무는 강고한 코퍼러티즘을 비판해 무너뜨리는 것이지 청와대 특보로 들어가 앉는 것일 수 없다.
KBS 노조의 공동 총파업 투쟁 소식은 그래서 반갑다. 이 시점에 최대의 공영방송 안에서 펼쳐지는 저항과 연대의 가치는 자못 크다. KBS 새노조 홈페이지에 실린 공정방송추진위원회의 KBS뉴스에 대한 치열한 비판분석 보고서에서도 ‘국민의 방송이 되겠다’는 구성원들의 의지가 읽힌다.
날로 어지러운 MBC와 비교하자면 지난 1월 초 세월호 특별법 보도에서 유독 MBC는 생존 학생들 대학입학 특별전형만을 부각시켰다는 이유로 피해 가족과 시민들의 항의를 받았고, KBS는 배상·보상·추모사업에 비중을 둔 보도로 균형을 갖췄다고 인정받았다.
세월호 참사 6개월이 되는 당일의 뉴스도 KBS·MBC 뉴스가 세월호 참사 6개월 당일에 세월호 문제를 다루지 않았다고 매체비평지가 보도했으나 KBS는 하루 앞당겨 그 전날 3건의 리포트를 내보냈다. 이 칼럼에서도 매체비평지의 해당 내용을 인용했으나 이를 전해 듣고 해당 기사들을 확인했다.
이런 일련의 흐름 속에서 KBS 노조의 공동 투쟁은 분명 단순한 임금협상 결렬의 반발에 그칠 거라 생각지 않는다. 지배구조의 개선과 정체성의 회복을 향한 전진의 큰 걸음이길 기대한다. 오늘의 우리 저널리즘이 처한 상황은 암울하고 출구가 보이지 않는다. 부인할 수 없는 일이지만 우리 안에는 저항의 불씨가 있고 젊은 의기(義氣)들이 몸부림치고 있다. 기억하고 격려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