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매체 ‘더팩트’가 지난 2일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의 병상 모습을 담은 사진을 공개했다. 더팩트는 “이 회장 건강 상태를 둘러싼 세간의 억측이나 악성 루머 등이 삼성은 물론 나라 경제 차원에서 전혀 바람직하지 않은 비정상적 현상이라고 판단”해 근황을 보도한다고 밝혔다.
국가와 공공의 이익을 위한 보도이냐, 상업적 보도일 뿐이냐, 그저 다수의 관심사에 대한 보도이냐의 판단은 각자의 몫으로 돌리고 이 보도의 프라이버시 침해 여부에 대해 이야기해보자.
언론과 관련해 사생활 또는 프라이버시라 함은 개인이 자신의 생각과 자신의 비밀, 자신의 일상을 꾸려가되 간섭받지 않을 개인의 영역이다. 따라서 사생활의 권리는 자신이 원하는 것만 자신이 원할 때 외부에 내보여줄 수 있는 권리이다.
사생활 또는 프라이버시에서 보호받아야 할 것들을 크게 분류해보면 첫째 조용히 살고 싶다는 은둔과 고독, 둘째는 부끄러울 수 있는 난처한 모습, 셋째 남들에게 오해받을 수 있는 내용이나 장면, 넷째 자신에 관한 내용이 자신의 의사에 반하여 상업적 목적으로 사용되지 않는 것 등이다.
이를 근거로 따져보면 이건희 회장의 병실 모습은 중환자로서 은둔, 병환이 깊은 난처한 모습에 해당돼 보호받아야한다. 물론 악성소문과 달리 회복되고 있다는 긍정적 내용이니 당사자 측으로부터 문제제기가 없을 수도 있으나 걸면 걸릴 소지는 충분해 보인다.
이 때 언론으로서는 이건희 회장이 국가적 공인이며 국민 다수가 궁금해 하는 문제이고, 이 궁금증의 해소가 공공의 이익을 위해 필요하다고 예외를 주장할 수 있다. 그러나 여기에도 따져야 할 요건들이 있다. 보도할 개인의 사생활 영역이 국민 다수의 정당하고 긴급한 관심사일 때만 인정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개인과 가족, 소속 기관이 취재의 거부의사를 분명히 하였음에도 강제적으로 이뤄졌을 때 언론의 보도는 압박을 받을 수밖에 없다.
이건희 회장의 경우처럼 병원 특별병실에 외부인의 출입이 금지된 상태로 가료 중이라면 이는 언론 취재에 대한 명백한 거부의사 표시라고 볼 수 있어 공적사안이라 하더라도 병실과 환자에 대한 몰래 촬영 보도는 취재 윤리에 어긋나고 위법일 소지가 다분하다.
프라이버시를 엄격히 다루는 법적 환경에서는 초대받지 않았음에도 개인의 살림집이나 사무실을 방문하고 퇴거에 응하지 않은 채 취재를 시도하는 행위도 프라이버시 침해로 간주한다. 취재기자의 방문은 상업적 판매원의 방문과 비교할 때 대상자에게 주는 압박이 전혀 다르기 때문에 오히려 더 엄격히 적용될 수 있다. 물론 취재를 목적으로 자신의 신분을 속이는 행위도 마찬가지이다. 기자들이 취재를 이유로 타인의 기분과 마음의 평화를 심각히 손상시켰다면 귀책사유로 충분하다.
실제로 미국 법원은 기자들에게 이런 이유로 손해배상을 판결해 왔다. 언론의 자유는 언론의 부정행위까지 보호하지 않는다는 것을 생각해야 한다. 간추려보면 언론의 사생활 보도는 다음의 도덕적 원칙에 비추어 결정하고 시행되는 것이 바람직하다.
1. 언론의 품위와 기본적인 도덕성은 지켜져야 한다. 참사 보도에서 울부짖으며 비통해하는 유가족의 모습을 과다하게 비추거나 반복노출하는 것을 자제하는 이유가 이것이다.
2. 공중에게 노출될만한 충분한 가치가 있는 정보인가를 언론사 내에서 다수가 논의해 판단해야 한다. 공인에 대한 사실 정보라 해도 단순한 호기심을 만족시키기 위한 것이라면 자제하는 것이 옳다.
3. 인간이란 존재의 위엄성 그 자체가 훼손되는 건 언론이라 해도 금기시 된다. 보도영상에서 시신이나 처참한 몰골을 노출시키지 않거나 뚜렷하게 보여주지 않고 모자이크 처리하는 이유가 이것이다. 전체 사회와 인류에 나름 봉사하고자 하는 언론의 책무에 속하는 일이다.
언론 보도와 프라이버시의 문제는 특별히 따질 쟁점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볼 수도 있다. 대부분의 프라이버시 침해는 기자협회의 공정 보도 준칙들을 상식선에서 지키지 않음으로 발생하는 것이지 상당히 어렵고 복잡한 상황에서 발생하는 것이 아니다. 꼭 사진으로 찍어 보도하고 싶다면 당사자에게 허락을 구해야 하고, 불가피하게 허락 없이 찍은 경우라면 보도 이전에 동의를 구하거나 협의를 통해 조정하는 것이 상식이다. 그 상식을 훌쩍 뛰어넘어 거침없이 사진을 찍고 고민 없이 사진을 내보내는 직업도 있다. 그러나 그 이름은 기자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