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편 기자들의 속앓이…"왜 우리는 떠나는가"

<종편 출범 4년, 기자들 속마음>
무리한 리포트에 야근·특근 일상화
열악한 업무환경에 취재의욕 사라져
심층취재커녕 하루하루 때우기 급급
임금차별 서러운데 인적교류도 막혀

“오늘을 무사히 끝냈다고 생각했는데 바로 내일이네요”. 한 종합편성채널의 A 기자의 목소리는 어두웠다. A기자는 지난 2012년 경제지에서 지금의 회사로 자리를 옮겼다. ‘신문 미래가 밝지 않다’는 주변의 우려에 따른 결정이었다. 처음엔 신선했다. 보도뿐만 아니라 예능부터 드라마까지, 다채로운 방송국의 모습에 기대가 한껏 부풀어 올랐다. 하지만 현실은 그를 압도했다. 경력기자에게 보도시스템을 설명해주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선후배 체계도 오락가락이었다. 바빠서 챙길 여력이 없단 이유에서였다. 그는 부서 배치를 받자마자 제작 과정을 습득하지 못한 채 리포트를 쏟아냈다. 기사의 질은 신문에 있을 때보다 현격하게 떨어졌다. A기자는 “꼭 다른 사람의 자리를 대신 메우는 부속품 같다”며 “요즘엔 ‘그냥 지면에 있을 걸 그랬나’하고 후회가 든다”고 토로했다.


또 다른 종편채널에서 일하고 있는 B 신입 기자의 사정도 마찬가지다. 합격이라는 통지서를 안고 설렌 마음으로 입사를 했지만, 막상 와보니 현실은 달랐다. 대부분의 간부들이 본지 출신인 만큼 방송보다는 신문 위주로 경영이 돌아갔고, 임금 등의 기본적인 처우부터 본지와의 차별이 극심했다. 특히 노조의 부재로 부당한 대우가 있을 때 마땅히 호소를 할 창구가 없다는 점이 문제였다. 주변 선배들은 인사 시즌이 올 때마다 지면 기자들에 밀려 낙담하기 일쑤였다. 본지에서는 원하면 언제든지 종편으로 이동이 가능했지만, 종편 출신은 본지로 갈 수 없었다. B 기자는 “구시대의 산물인 계급제가 이 작은 조직에서 버젓이 나타나고 있다”며 “다른 매체 기자들이 차별없이 본지와 순환 교류를 하며 만족을 느낄 때면 이직을 종종 생각한다”고 하소연했다.


종편 출범 4년. 성장세가 뚜렷하다. 하지만 기자들의 하소연은 끊이질 않고 있다. 방송통신위원회가 지난 7월 공표한 ‘2014년 방송사업자 재산상황’ 자료에 따르면 2012년 2263억원이었던 종편4사 매출액은 2013년 3061억원, 2014년 4046억원으로 상승세다. 출범 초기에 ‘시청률 1%를 넘길 수 있을지 모르겠다’던 업계의 우려는 완전히 뒤집혔다. 2013년 월 평균 시청률 1%를 거뜬히 넘긴데 이어 올해엔 지상파마저 위협하고 있다.


빛나는 성과엔 어두운 그림자가 있었다. 턱없이 부족한 인력난 속에서 하루에 1~2개 꼭지는 꼭 제작해야 하는 구조와 밤낮이 수시로 뒤바뀌는 업무 패턴, 잦은 생방송 출연 등 인건비를 줄이려는 회사의 무리한 노력 때문에 여기저기서 기자들의 곡소리가 터져 나왔다. 한 종편 기자는 “심층 취재는커녕 출입처에서 ‘물만 먹지 말자’는 생각으로 임하게 된다”고 했다. 그는 “어린 후배들이 다른 회사로 빠져나갈 궁리만 하고 있는데, 어떻게 정을 두고 가르치겠나”고 반문하며 “기자들은 궂은 업무환경에 내몰려서 퇴사를 하고, 회사는 기자들을 믿지 못해 투자를 안 하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고 토로했다.


종편은 출범 이후 리스크를 줄이기 위해 제작비와 인건비를 최소화하는데 앞장서왔다. 방통위에 따르면 종편4사 인건비는 2014년 기준 JTBC 72억원, 채널A 36억6000만원, TV조선 28억6000만원, MBN 34억7000만원이다. 반면 같은 기간 지상파3사 인건비는 KBS 610억5000만원, MBC 284억9000만원, SBS 191억3000만원이었다. 광고나 시청률 면에서 지상파를 따라잡고 있는 종편이지만 아직도 기자들의 처우는 출범 초기에 머물러 있는 셈이다. 제작비의 축소는 형편없는 업무 환경으로 고스란히 이어졌고, 인건비의 축소는 인력난을 불러일으키며 기자들의 삶의 질을 떨어뜨렸다. 한 종편의 기자는 “이른 새벽에 출근해서 아침 보고를 하고 제작과 모니터까지 마치면 10시를 넘겨서 퇴근하기 일쑤”라며 “야근과 주말 특근이 잦은 종편 기자들은 수당이 중요한데 지상파의 절반 정도도 못 받는 경우가 허다하다”고 호소했다.


종편 기자들은 본지와 비교해 차별적인 대우도 고민이라고 입을 모은다. TV조선의 기자는 “차장급 주말근무수당이 12만원인데 본지는 20만원이 넘는 걸로 알고 있다. 때문에 본지는 주5일 근무를 확실하게 지키려고 하지만 우리는 주말에도 마구잡이로 쓰이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예정에도 없는 특보 등 취재를 하고 있는 기자를 갑자기 생방송에 끌어들이는 일이 비일비재하다”며 “대우가 다르니 ‘받은 만큼 일해야 겠다’는 안일한 생각이 당연히 들지 않겠나”며 한탄했다. 또 다른 TV조선의 기자도 “내부 동기들끼리 종편 4사 가운데 우리가 가장 열악하단 내용의 글을 채팅방에서 공유할 때마다 취재 의욕이 사라진다”며 “평생 방송을 꿈꾸고 들어왔는데 본지로 가고 싶어 하는 동기가 있을 정도”라고 귀띔했다.


본지와 종편의 인적 교류는 폐쇄적이다. 조선일보와 TV조선의 경우 기수도 각각 50기, 7기로 구분돼 있다. 지면에서 TV조선으로 파견 온 건 평기자 1명과 차장급 데스크 1명 정도로 극히 이례적인 경우다. TV조선에서 본지로 가는 경우는 그동안 단 한 번도 없었다. TV조선의 기자는 “채널A나 JTBC의 경우 수습 때도 본지로 순환 근무를 하는데 우리만 그런 게 없다”며 아쉬움을 토로했다. 110여명의 취재기자를 둔 TV조선은 채널A와 MBN보다 상대적으로 인력이 많지만 이직자도 많다. 올해만 22명이 기자직을 관두거나 다른 곳으로 자리를 옮겼다.


노조가 없는 점도 문제로 지목된다. 현재 종편 4사 중 TV조선과 채널A는 노조가 없다. 채널A의 한 기자는 “임금 등의 개선안에 대해서 개인적으로 불만만 갖는 거지 조직적으로 변화를 위해 움직일 수 없는 구조”라며 답답해했다. 노조가 있는 중앙일보-JTBC는 2014년, 2015년 임급협상에서 각각 4%, 3% 인상의 성과를 냈다. 조선일보 노사도 2015년 임금협상에서 차장 대우와 차장의 경우 연봉 대비 2%, 평기자는 연봉의 7%를 인상하기로 합의했다. MBN 또한 올해 임금 총액의 5%를 인상시키기로 했다. TV조선의 한 기자는 “작년에 우리도 기본급의 5% 인상하는데 합의했지만 워낙에 조금 받고 있던 상태라 본지와는 차이가 클 수밖에 없다”며 “종편도 어느 정도 자리가 잡힌 만큼 노조도 만들고 합당한 목소리를 내놓을 때가 됐다”고 했다.


최근 잦은 이직률을 보이고 있는 채널A의 사정도 다르지 않다. 올해만 6명의 기자가 MBC와 JTBC로 자리를 옮겼다. 보도편성을 무리하게 하면서 기자들의 업무 과중이 극심했다는 게 이유로 꼽힌다. 채널A의 기자들은 ‘하루 1리포트’를 기본으로 제작하는 데 익숙해져 있다. 최근 주말이라도 사수하자는 목소리가 나오며 개선되고 있지만 평일에 할당되는 업무량 자체가 워낙 많아 불만을 잠재우기 쉽지 않은 상황. 채널A의 한 기자는 “대부분의 기자들이 메인뉴스 때문에 매일 야근을 하는데도 수당(4년차 기준 철야수당 6만원, 휴일수당 9만원)이 매우 짠 편”이라고 전했다.


MBN도 인력 이탈 바람을 피할 순 없었다. 106명의 취재인력을 둔 MBN은 올해만 6명의 기자가 회사를 떠났다. 사측은 기자들의 처우 개선을 위해 기존에 30만원대였던 취재비를 100만원대로 크게 올렸다. MBN의 한 기자는 “리포트를 찍어내듯이 편성할 게 아니라 MBN만의 콘텐츠 마련 등 근본적인 쇄신이 시급한 때다. 이대로 가다간 종편들끼리 공멸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JTBC는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 올해 다른 곳으로 이직한 기자는 단 한명도 없다. 대신 다른 종편 기자들을 흡수하고 있다. 올 하반기에만 10여명 이상의 기자들이 추가로 채용돼 취재 인력이 140여명에 달한다. 물론 JTBC도 초창기에는 업무 과중으로 인한 극심한 스트레스로 기자들의 이탈이 잦았다. 본지와 기수를 통일하고 노조를 통합하는 과정도 반발에 부딪쳤다.


경영진은 본지와의 소통을 위해 꾸준히 노력했다. 연봉 협상도 매년 함께 진행됐다. 손석희 사장이 온 이후 기자와 PD, 작가 등의 인력이 체계적으로 배치돼 연착륙하고 있다는 평가다. JTBC의 한 기자는 “초반에 고생스러웠던 것은 사실이지만 홍정도 대표가 5년 내 인력과 평균임금을 SBS 수준으로 끌어올리겠다고 공언한 만큼 기자들의 사기가 더욱 고조되고 있다”며 “종편들이 양적 콘텐츠로 승부를 낼 게 아니라, 기획 기사 하나를 준비할 때도 공을 들일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하는 등 질적 혁신이 필요한 시기”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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