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차 슬럼프, 기자의 길이 맞는 것일까

[기자는 무엇으로 사는가] 제1부-기자들이 사는 법 ②방황하는 3~5년차 기자들

이진우 기자 | 2016.01.12 21:50:07

출입처서 이름 드러내야 하고
승진도 고려해야 하는 시기
‘여기서 살아남을 수 있을까’
‘어떤 기자로 남아야 하나’ 고민

자기생활 중시하는 젊은 세대
선배들과 소통 부재에 갈등도
결혼·출산, 회사는 관심 없고
언론사 옮기거나 그만두거나


“이게 맞는 길인지 혼란스러워요.” 한 일간지 정치부 A기자의 고백이다. 그는 올해로 꼬박 만3년차 기자가 됐다. 처음 입사할 땐 수백 명의 경쟁률을 뚫고 어렵게 들어온 만큼 기대가 컸다. 사스마리 기자 시절엔 열심히 단독거리를 찾아 성실성을 인정받기도 했다. 하지만 10명 안팎의 동기 대다수가 원하는 핵심 부서인 정치부에 홀로 발령받고 그의 생활은 조금씩 변하기 시작했다. 출입처에서 물먹지 않기 위한 치열한 몸부림은 기본, 선배와 후배 사이에 끼여 자신의 입지를 어떻게 굳혀나가야 할지 막막했다. 급기야 모든 게 의미 없고 하기 싫어지는 ‘3년차 매너리즘’이 찾아왔다. 좀 더 나은 사회를 만들기 위한 포부를 안고 기자라는 직업을 선택했는데 그 초심마저 무너지기 시작했다. “지금 이 길이 과연 맞을까?” “나는 지금 행복한가” 등 끊임없는 자문이 이어졌다. A기자는 “정치부에 오고 2년간 주 6일 근무에 술자리까지 11시 퇴근을 기본으로 살아왔다”며 “같은 출입처 또래기자들끼리 모이면 자연스럽게 퇴사 얘기가 오가기도 한다”고 호소했다.


경제방송사에서 일하다 3년 만에 회사를 떠난 B기자는 최근 일반 기업의 신입사원으로 채용됐다. 그는 명문대를 졸업하고 대기업과 언론사를 동시 합격하며 선배들의 주목을 한 몸에 받은 인재였다. 다른 동기들보다 앵커와 기자 등 다양한 기회가 먼저 주어졌다. 처음엔 자신의 능력을 인정받는단 생각에 신이 났다. 하지만 정식으로 출입처를 배정받고 후배가 들어오며 슬럼프가 시작됐다. ‘자신만의 콘텐츠의 부재’가 문제였다. 선배들은 ‘최소 5년차까지는 자신이 발전시킬만한 전문성이 무엇인지 찾고 기초를 다져놔야 한다’고 조언했다. 하지만 지금까지 쏟아지는 리포트를 소화하는 데만 급급했지 별다른 고민을 해오지 않은 터라 막막하기만 했다. 간부들의 질책에 자신감은 나날이 떨어졌고, 자신의 적성에 맞지 않다고 생각한 그는 사표를 내기로 결정했다. 그는 “단독 하나 때문에 사람들을 속이고 비굴해 지는 나 자신을 발견했을 때 ‘이건 아니다’란 생각이 들었다”고 고백했다.

“점프냐 낙오냐”
주니어 기자들은 유독 고민이 많다. 3년차부터 5년차까지, 가장 왕성하게 활동하는 시기여서 더욱 그렇다. 신입이나 경력으로 옮길 수 있는 적정한 시기이기도 하다. 출입처에서는 자신의 이름을 굳혀야 하고, 회사에서는 승진을 고려해야 하는 ‘어깨가 무거워지는 때’이다. “나는 여기서 살아남을 수 있을까” “어떤 기자로 남아야 하나” 등의 고민이 더해진다. B기자는 “신입 때는 선배가 시키는 대로 하기만 하면 됐지만 연차가 쌓이면 알아서 잘 헤쳐나가야 하는 부담감이 있다”며 “적응을 잘하면 점프하고, 못하면 낙오되는 ‘기자로서의 전환기’가 바로 이 시기”라고 전했다.


실제로 3~5년차 기자들은 회사를 불현듯 관두기도 한다. 주요 일간지의 경우 1년에 1~2명씩, 비주류 언론사는 각 기수당 절반 이상이 퇴사의 길을 걷는다. 일간지의 한 기자는 “후배 10명 중 반 이상이 ‘왜 이렇게 살아야 하나’ 등의 하소연을 털어놓고 그중 1~2명은 결단을 내리는 편”이라고 전했다. 지난해 종편은 평균 5~10명 이상의 주니어 기자들이 회사를 떠났다. 이들은 대부분 비교적 시간이 여유롭고 자기 시간을 가질 수 있는 직업을 찾아 나갔다. 한 종편 기자는 “30대 중반에 접어들며 건강도 신경 써야 하는 나이인데, 잦은 야근과 술자리 때문에 스트레스가 많다”며 “메인방송을 끝내면 밤 10시가 넘어 퇴근하는 등 불규칙적인 생활을 이제 그만하고 싶다”고 토로했다.


비주류 언론사들의 사정은 더 심각하다. 한 경제지의 경우 2014년에 4~5명의 주니어 기자가 퇴사했다. 한 기수에서 70%가 회사를 떠난 것이다. 메이저 언론사로의 이직을 위해 떠난 경우도 있지만 아예 직종을 변경한 사람도 있다. 업무 자체가 버겁고 적응하기 힘들다는 게 이유였다. 인력난은 고스란히 주니어 기자들의 부담으로 돌아온다. 저연차의 경우 지면을 메우는 게 한계가 있는데다 고참 기자들은 직접 기사 제작을 담당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결국 주니어 기자들의 짐이 더 늘어날 수밖에 없는 구조다. 한 경제매체 증권부의 4년차 기자는 “업무 부담뿐만 아니라 출입처에서 주요 언론사 기자들에 비해 못한 대우를 하거나 차별을 받을 때 자괴감이 든다”며 “‘더 좋은 언론사로 이직하면 상황이 더 나아질까’하고 이직을 고민하게 된다”고 고백했다.

경직된 조직문화
수습기자는 일 자체가 힘들어 관두고, 간부는 기업 임원, 학계 등 제2의 인생을 위해 떠나는데 비해 주니어 기자들의 퇴사 이유는 다양하다. 이중 경직된 조직문화 속에서 젊은 세대들이 적응을 힘들어하는 게 주된 이유 중 하나로 꼽힌다. 세대차이와 소통의 문제가 주니어 기자들의 마음을 얼어붙게 만드는 것이다. 또 본인이 원하지 않아도 목표를 위해 우직하게 일을 하는 선임 기자들과는 달리 개인주의를 중시하는 주니어 기자들은 일보다는 자기생활을 중시하는 경향을 보이며 선배 기자들과 부딪치기 일쑤다.


방송사로 이직을 꿈꾸는 주니어 기자들도 많다. 주요 일간지의 한 기자는 “40~50대의 선배들은 신문기자로서의 이점이 남아있지만 우리 미래세대의 앞길은 막막한 게 현실”이라며 “동기들끼리 카톡방에서 ‘방송사로 옮기는 게 낫지 않겠냐’며 고민을 주고받기도 한다”고 전했다. 다른 일간지의 기자 또한 “신문 취재뿐만 아니라 방송리포트, 진행 능력을 함께 배워놓으면 좀 더 안정된다는 생각 때문에 순환근무를 통해 방송사로 자원을 하기도 한다”고 전했다.


온라인 부서에서 일하는 주니어 기자들의 방황도 다르지 않다. 최근 디지털퍼스트를 내세우는 회사 기조에 온라인 부서가 상대적으로 주목을 받고 있긴 하지만, 여전히 방송사나 지면에 밀리는 게 현실. 특히 가장 실무취재를 많이 접해야 하는 시기의 3~5년차 기자들에게는 온라인부서 배치가 경력에 큰 타격이 될 수 있다. 내근을 하면서 취재에 소홀해질 수밖에 없기 때문. 공기업으로 이직한 3년차 기자는 “대부분의 시간을 취재가 아닌 온라인 편집이나 디자인에 쏟다보니 적성에 맞지 않아 나올 수밖에 없었다”며 “다른 언론사로 옮길 생각도 있었지만, 기자 자체에 대한 회의감이 들어 다시 돌아가기 싫었다”고 고백했다.


특히 3~5년차 기자들은 결혼과 출산 등으로 큰 변화를 겪는 시기기도 하다. 최근 여기자들의 출산·육아 휴직제가 자리를 잡아가고 있는 모양새지만 아직도 회사에서 반기는 추세는 아니다. 한 일간지의 5년차 여기자는 출산 후 온라인 부서에 옮겨와 일을 계속 하고자 했지만 결국 둘째를 출산하며 일을 관뒀다. 그는 “간부가 대놓고 눈치를 줘 더 이상 일을 계속하기 어려웠다”며 “‘관두냐 머무느냐 옮기느냐’를 두고 고민을 하게 되는 시기”라고 밝혔다. 여기자만의 일이 아니다. 남기자의 경우엔 출산, 육아휴직이 더 엄격하게 적용된다. 주요 일간지의 4년차 기자는 “주말에 와이프가 아이를 낳았는데 당일 당직을 바꿔줄 사람이 없어 결국 출산도 지켜보지 못한 아빠가 됐다”며 “그동안 성심성의껏 일해왔지만 아이를 낳고 보니 좀 더 복지가 안정된 곳으로 옮기고 싶은 생각이 든다”고 했다.

그래도 기자다
모든 주니어 기자들이 고충만 안고 있는 건 아니다. 필드에서 열심히 적응하며 활약을 하고 있는 기자들도 많다. 3년째 부동산 분야를 꾸준히 취재하고 있는 5년차 기자는 “매일 다양한 사람들과 소통할 수 있고 자신의 전문지식을 일하면서 쌓을 수 있다는 게 기자만의 장점인 것 같다”며 “출입처에서 적응하기까지 힘들었지만 그만큼 인생의 의미 있는 경험이었다”고 했다. 또 다른 4년차의 기자도 “후배들이나 동기들을 보면 3년차 때 고비가 오는 것 같다”며 “무조건 관두고 도망칠 게 아니라 자신의 길이 맞는지 아닌지 명확히 확인하고 신중한 판단을 내려야 할 시기”라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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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력기자의 하소연 “‘미운오리’ 취급 말고 ‘동료’로 대했으면…”


경력기자들은 시도 때도 없이 용병 취급을 받아 서글프다. 공채 과정에선 ‘어떻게든 데려오겠다’는 분위기지만, 막상 경력으로 입사하면 ‘미운오리’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대부분 언론사들은 3~5년차 기자들을 경력으로 채용하길 원한다. 따로 교육할 필요 없이 곧바로 필드에 투입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하반기 주요 언론사와 계열사 등은 3~5년차를 대상으로 경력공채를 쏟아냈다. SBS, MBC, JTBC, TV조선 등 방송사를 비롯해 연합뉴스, 뉴스1, 한국일보 등 신문, 통신사까지 경력기자를 위한 공고문이 줄을 이었다. 지난달에만 10곳이 넘는 언론사가 자사 홈페이지에 경력기자 채용 게시글을 올렸다.


경력기자의 경우 대부분 출입처나 회사에서 아는 사람의 소개로 상시 채용되거나 정식 공채를 통해 뽑힌다. 경력기자들은 입사한날부터 바로 출입처를 배정받고 기사 압력을 받는다. 공식 교육은 물론, 회사 시스템을 설명해주는 이마저 없어 우왕좌왕하기 일쑤다. 노조는 보이지 않는 차별을 가하고, 선후배 체계도 제대로 정해지지 않아 곤혹을 겪는 경우도 있다.


주요 일간지의 6년차 C기자는 “2년 전 이전 직장의 데스크가 ‘넌 새로운 조직에선 용병 신세를 면하지 못할 것이다’라는 얘길 했었다”며 “당시엔 떠나는 나를 긁는 저주인가 싶었는데 요즘엔 이 말이 맞구나 싶어 가끔 후회할 때가 있다”고 호소했다. 그는 “얼마 전에 경력으로 옮긴 선배도 ‘전 직장으로 돌아갈 수도 없고 진퇴양난에서 울며 겨자먹기식으로 일한다’고 하소연한 적이 있다”고 귀띔했다.


새 직장은 전 직장처럼 언제나 고민을 들어줄 선후배나 동기가 적다. 새로운 사람이란 인식은 이미 이직 때부터 경계심을 이끌어내고, 연봉·평판 등에 대한 검증이 암묵적으로 진행되면서 본인이 모르는 사이에 도마에 오르기도 한다. C기자는 “3~5년차 주니어 기자들이 회사를 옮기고 겪는 불안감은 다 비슷할 거라고 생각된다”며 “같은 조직에 속한 이상 ‘동료’라는 인식을 가져줬으면 좋겠다. 검증은 경력 공채 과정에서 이미 끝나지 않았는가”라고 하소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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