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징계·해고는 나와 상관없는 다른 나라 얘기인 줄 알았다"

[기자는 무엇으로 사는가] 제2부:위기의 기자들 ①일상화된 징계·해고

징계감 안되는데 징계하고 같은 사유로 2~3번 반복...밉보이면 ‘괘씸죄’로 찍혀
괴롭혀서 나가게 하거나 경영진 순응하라 메시지...내부 억압·자기검열 노려


“내 일이 될 줄 전혀 몰랐다. 징계·해고는 다른 나라 얘기인 줄로만 알았다.”
2000년 기자 생활을 시작해 2003년 대전일보로 옮긴 장길문 기자는 평범한 기자였다. 노조에 가입했지만 그 흔한 구호 한 번 외치며 ‘팔뚝질’을 한 적도, 노동가요도 불러본 적 없는 노조 활동에 문외한인 기자였다. 그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기자들이 그랬다. 대전일보 노조는 적당한 수준에서 사측과 협의해왔고 회사에 큰 목소리 한 번 내지 않았다.


2013년 말 장 기자가 노조위원장이 됐을 때 그는 조합원을 모아 단합 차원의 전체 MT를 갔다. 조합원들이 어떤 생각을 하는지 듣고 싶었다. 그 자리에서는 조합원들의 쌓인 얘기가 줄줄이 흘러나왔다. 이제는 정당한 요구를 해야 한다는 주장이 곪은 자리가 터지듯 튀어나왔다. 당시 기업별 노조였던 대전일보 노조는 MT 이후 산별 노조로 전환하기로 했다. 회사와 싸우기 위해서라기보다 그저 제대로 알고 협의하자는 차원에서였다. 그게 갈등의 시작이었다. 장 기자는 그때로 돌아간다면 똑같은 선택은 못 했을 거라고 했다.


산별 노조로 전환한 대전일보 노조는 2014년 4월부터 사측과 임금·단체협약을 시작했다. 장 기자는 5개월간 6차례에 걸쳐 협상을 진행했고, 협상은 임금 7% 인상 수준으로 마무리 단계에 와 있었다. 그런데 도장을 찍기 전 임금 인상 소급분에 관한 사측의 약속이 바뀌었다. 진통은 거듭됐고 결국 노조는 총회를 열어 투표를 통해 전국언론노조에 임단협 교섭권 위임을 논의하기로 했다. 그러자 투표 날, 사측은 장 기자에게 4년 전 사진기사를 문제 삼아 경위서 제출을 요구했다. 그리고 장 기자를 대기발령 조치했다.


그렇게 4개월간의 소파생활이 시작됐다. 책상도 컴퓨터도 없었다. 그의 말을 빌리자면 “감옥 생활”이었다. 분하고 억울한 마음으로 버티고 버텼던 시간. 하지만 그건 서막에 불과했다. 그에게는 대기발령을 시작으로 문화사업국 전배, 업무방해 혐의 검찰 고소 등 보복이 이어졌다. 그때마다 지방노동위원회 등의 판단을 받아 다시 원직으로 복직했지만 소용없었다.


회사는 ‘순환근무’의 일환이라며 결국 그를 충주 주재기자로 발령냈다. 하지만 충주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연고도, 아는 사람도, 업무도 없었다. 그 곳에 있던 두 달도 채 안 되는 시간동안 그는 철저하게 무너졌다. 분하고 억울한 마음은 사라지고 자괴감만 남았다. 빈 사무실에 혼자 앉아 하루 종일 멍 하니 보내는 시간 동안 그는 여기서 뭘 하는지 생각했다. 조금만 더 오래되면 돌아버리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문득문득 들곤 했다. 충주에 있을 때는 찜질방에서 생활했다. 대전에서 왕복 네다섯 시간이 걸리는 거리를 출퇴근 할 순 없었다. 잠도 혼자 자고 밥도 혼자 먹었다. 출입처도 없었다. 그만두고 싶다는 생각을 그 때 처음 했다. 지난해 10월 말, 대전지방법원에 낸 전보발령효력정지가처분 신청이 또 한 번 인정됐다. 10월28일 그는 복귀 통보를 받았다. 그리고 다음 날 징계위에 회부됐고, 11월5일 해고됐다.


“지노위에서도 법원에서도 검찰에서도 모두 이겼지만 결국 해고됐습니다. 수많은 생각이 들더군요. 노조가 더 위축되지는 않을까, 그래도 없어지면 안 될 텐데 하는 생각과 함께 가족들이 겪을 고통도 떠올랐죠.” 실업급여와 퇴직금으로 생활을 꾸려나가는 지금도 그는 어린 두 아들과 아내만 생각하면 억장이 무너진다. 하지만 그는 후배들을 생각해서라도 대전일보를 완전히 떠날 수 없다. 현재 그는 지노위에 구제 신청을 낸 상태다.


장 기자의 얘기는 특수한 사례가 아니다. 언론계에서 징계, 재징계, 해고는 일상이 됐다. 징계감이 안되는데 징계하고, 똑같은 사유로 여러 차례 징계하고, 경영진의 뜻을 거스르면 ‘괘씸죄’로 찍어 고통을 주고, 밉보이면 비편집국이나 지역으로 내쫓는 ‘묻지마 징계’가 횡행하고 있다.

공정방송 감시활동도 징계 사유?
“직장 내 질서를 훼손했다.” KBS는 지난달 24일 새노조 공정방송추진위원회 전 간사였던 정홍규 기자에게 감봉 6개월, KBS기자협회 공정방송국장 김준범 기자에게 견책의 징계를 내렸다. 정홍규 기자는 지난해 11월14일 KBS ‘뉴스9’을 통해 보도된 ‘교통마비에 논술 수험생 발 동동’ 리포트를 제작한 기자와 부서장에게 전화를 걸어 경위를 파악하고 보도근거 부족에 대해 지적한 것이, 김준범 기자는 지난 1월20일 같은 프로그램의 중계차 연결 코너 ‘청년 대한민국 현장을 가다. 대륙 전역 배송’의 리포팅 기자에게 보도 배경을 물은 점 등이 문제가 됐다. 사측은 이들의 행위가 취재기자, 부서장 등에 대한 부당한 압력·개입이라며 징계를 내렸지만 언론노조 KBS본부(새노조)와 KBS기자협회 등 7개 직능단체들은 단체협약과 편성규약을 부인한 부당노동행위라며 반발했다. 당시 새노조는 성명을 통해 “징계 사유가 얼토당토않다”고 지적했고 KBS 39기 기자들도 “선배 기자의 전화 한 통이 징계로 이어진다는 사실이 부끄럽다”고 비판했다.


징계의 범위는 점점 넓어지고 있다. 파업 과정에서 자행되던 징계와 해고는 이제 공정방송 감시활동을 했거나 오탈자를 냈다는 이유만으로 휘둘러지고 있다. 경영진의 눈 밖에 나면 찍힐 수 있다는 노골적인 겁박으로도 활용된다. 지난해 11월 문화재 전문기자였던 23년차 김태식 기자를 “부당한 목적으로 가족 돌봄 휴직을 신청했고 부적절한 언행을 했으며 업무시간에 페이스북을 하는 등 근무태도가 불량했다”는 이유로 해고한 연합뉴스와, 지난해 12월29일 편집기자에게 오탈자를 6번 냈다며 정직 2개월을 통보한 대전일보 등이 그 사례다. 당시 연합뉴스와 대전일보 내부에서는 각각 “경징계는 몰라도 해고 사유가 될 수 없다는 게 중론이다” “오탈자를 징계 프레임으로 삼는다는 것은 우스꽝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는 이야기가 있었다. 연합뉴스는 ‘역사교과서 국정화 반대 언론인 시국선언’에 참여했다는 이유로 김성진 노조위원장에게 감봉 처분을 내리기도 했다. 장영석 언론노조 노무사는 “징계사유에 비해 과도한 처분이 내려지는 경우, 징계사유가 아닌데도 징계가 내려지는 경우가 잦다”면서 “악의적이고 의도적인 징계”라고 말했다.

징계→무효 판결→재징계의 굴레
이용주 MBC 기자의 징계 역사는 2012~2013년 그가 내부게시판에 글을 올리면서 시작됐다. 당시 그는 사측의 부당인사를 비판하는 글과 MBC의 여당 편향적인 뉴스 보도 및 MBC가 당면하고 있는 숱한 문제점들을 외면한 회사 특보를 꼬집는 글을 지속적으로 업무 게시판에 올렸다. 그 글이 발단이 돼 그는 2013년 1월 초 행정부서로 전보 조치됐고 그 해 2월에는 ‘사내 질서 문란 행위’라며 정직 6개월의 중징계를 받았다. 또 그 해 3월 인사 평가에서는 세 차례 R등급을 받으며 정직 1개월 및 교육 2개월의 추가 징계를 받았다. 이 기자는 이후 징계무효 소송을 벌였고 결국 지난해 5월 대법원은 ‘사측의 징계가 지나치게 가혹하고 징계재량권을 일탈 남용했다’며 징계무효를 선고했지만 사측은 11월16일 또 다시 정직 3개월의 징계를 내렸다. “대법원 판결에서는 다만 양정이 과하다는 것이었기 때문에 그에 합당한 재징계를 내렸다는 것”이 이유였다. MBC 한 기자는 “어떤 한 사람을 표적으로 삼아 계속 징계를 하는 것은 괴롭히겠다는 것으로밖에는 보이지 않는다”면서 “당하는 입장에서는 정말 황당하고 화가 날 것이다. 대법원에서 무효 판결이 났을 때도 회사는 일언반구 사과의 말도 없었는데 재징계를 하는 것은 도리가 아니다”고 지적했다.


징계는 이제 한 번으로 끝나지 않는다. 최근의 사례를 보면 일부 언론사들은 “당시에 이뤄졌던 모든 행위가 정당한 것이었다는 뜻의 면죄부를 준 건 아니다”라는 이유로 징계 무효 처분을 받은 기자에게 재징계를 내리고 있다. 2012년 11월 미디어스와 인터뷰를 하며 회사를 비방하고 보도 지시를 거부했다는 이유로 정직 3개월의 징계를 받은 김혜성·김지경 MBC 기자와 ‘정수장학회 도청 의혹’ 리포트 지시에 “정확한 사실 확인이 되지 않은 상황에서 무리한 보도는 부적절하다”고 피력해 정직 2개월을 받은 강연섭 MBC 기자도 법원의 무효 판결을 받았지만 정직 1개월의 재징계를 받았다.


해직기자에게도 재징계의 칼날은 예외 없이 휘둘러졌다. 대법원의 해고 무효 판결로 복직됐다 사측의 재징계로 6개월 만에 회사로 돌아온 이상호 MBC 기자는 최근 또 다시 징계위기에 놓였고 2014년 11월 대법원에서 해고무효 확정판결을 받고 6년 만에 복직한 권석재·우장균·정유신 기자를 기다리고 있는 것도 재징계였다. YTN은 당시 정직 5개월의 처분을 내렸지만 지난 1월14일 징계무효소송 1심에서 법원은 “부당해고 처분을 다투는 동안 장기간 고통을 줬는데도 불구하고 정직 5개월 처분의 재징계는 지나치게 무겁다”고 판단하며 기자들의 손을 들어줬다. 하지만 YTN은 지난 1월 항소 계획을 밝혔다. 우장균 YTN 기자는 “참 답답하고 한심스럽고 온당하지 못한 처사”라며 “보수적인 사법부조차 법의 논리보다 우리가 고통 받은 부분을 강조했다. 회사가 얼마나 반 인권적이고 수구적이며 악랄한지 보여주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회사 밖으로 쫓겨나는 기자들
장길문 기자의 사례처럼 회사와 갈등을 벌인 기자들은 타 지역으로 전보 발령되거나 아예 해고되는 등 내쫓기는 경우가 많다. 지난해 대전일보 정기인사에서 대전일보 노조 총무부장인 강은선 기자가 천안취재본부로, 선전차장인 최정 기자가 충남취재본부로 발령난 것이 한 예이다. 연합뉴스 역시 지난해 인사에서 2012년 103일 파업을 주도했던 공병설 전 노조위원장과 2010년 노조 공정보도위원회 간사를 지냈던 이주영 기자를 각각 충북 제천과 대전충남취재본부로 발령냈다. 당시 연합뉴스에서는 박노황 사장이 원칙 없는 보복인사를 했다며 비판하는 성명이 하루 만에 10개 기수에서 나오기도 했다.


2014년 9월 노조 부지부장이었던 이은용 전자신문 기자가 해고된 것도 같은 맥락에서 볼 수 있다. 당시 전자신문은 직장이탈, 불량한 직무 수행, 업무 태만 및 명령 불복종을 이유로 이은용 기자를 해고했다. 하지만 지노위에 낸 구제 신청이 받아들여져 이 기자가 회사에 복직하자 송도에 위치한 광고마케팅국 경인센터로 발령해 ‘보복인사’ 논란이 불거졌다. 이은용 기자는 결국 지난해 10월 페이스북을 통해 “유배돼 방치된 걸 참기 어렵다”는 글을 올리고 사직서를 냈다. 이은용 기자는 “전자신문에서 16~17년 가까이 일했던 기자로서 자존심에 상처를 받는 일들을 많이 겪었다. 항상 화가 차 오른 상태였다”며 “이렇게 있다가는 내가 무너질 것 같다는 생각에 사표를 냈다. 그 때는 벼랑 끝에 선 심정이었다”고 토로했다.


징계·해고는 사측이 내부 구성원의 불만과 비판을 억누르는 수단으로 사용한다는 점에서 비판의 여지가 크다. 특히 징계를 무기로 기자들의 자유로운 의견 교환을 권위적으로 억압한다는 것은 상식에 반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더 큰 문제는 조폭집단처럼 기자들에게 징계·해고의 린치를 가하는 언론사들이 늘어나고 있다는 점이다.


한 대전일보 기자는 “노조위원장 자리도 이제는 성배가 아니라 독이 든 잔”이라며 “예전만큼 단결해서 싸워야겠다는 동력 자체가 많이 사라지고 구성원들 사이에 보신주의가 생겼다. 타사 선배들도 나에게 가만히 있으라고 한다”고 말했다. 장영석 노무사는 “회사 입장에서는 본보기를 보여주는 것이다. 징계·해고를 휘두르며 기자들에게 무언의 압박을 하는 것”이라며 “노조 활동의 위축, 기자들의 자기 검열이 그들의 최종 목표”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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