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3총선에서 제1당을 더불어민주당에 내준 새누리당은 민심을 겸허하게 받아들이겠다고 했다. 시민들은 ‘정권심판’의 선거결과를 청와대가 엄중하게 받아들이기를 고대했다. 4.13총선 참패 제1 원인을 보수언론조차 ‘박근혜 대통령’으로 손꼽지 않았나. 총선 참패를 수용해 청와대를 인적쇄신하고, ‘불통’의 국정운영 방식을 전환하기를 바랐다. 독재시절에도 여당이 선거에서 참패를 하면 ‘쇄신 정국’을 형성했던 경험적인 연상기억 탓이기도 하다.
박 대통령은 며칠을 뜸들인 뒤인 4월18일 “앞으로 국민의 민의를 겸허히 받들고 새롭게 출범하는 국회와 긴밀하게 협력하겠다”면서 “경제활성화와 구조개혁을 일관성있게 추진하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이때 박 대통령에게 ‘민의’는 수용되지 않고 튕겨져 나왔구나 판단했어야 했다. 그런 탓인지 갤럽이 조사한 대통령 지지율은 29%로 추락했다. 청와대 문고리 권력이라는 ‘십상시의 국정농단 논란’에 이어 ‘연말정산 파동’이 있었던 2015년 1월과 메르스 확산으로 전 국민이 공황에 빠진 같은 해 6월의 지지율인 29%와 같았다. 대통령 지지율 29%로는 국정운영이 어렵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청와대에서 이런 비상사태를 돌파하려고 신문·방송사의 편집국장과 보도국장을 청와대에 초청하는 간담회를 긴급히 기획했다. 민의에 귀를 기울이는 ‘풍경’을 연출한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언론들은 앞다퉈 박 대통령이 국정운영에 변화를 시도하고 있는 것처럼 보도했다. ‘소통’이라는 단어로 ‘대통령이 변했어요’라는 메시지를 전달했다. 결과적으로 이런 보도는 오보라고까지 할 수는 없지만, 여론을 호도하는 것이 아니었나 싶다. 박 대통령은 4월26일 신문·방송사의 편집·보도국장을 모아놓고, “대통령 중심제라고는 하지만, 대통령으로서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었다. 국회와의 관계에서 되는 것이 없었고 경제 관련 법안 처리를 호소했지만 되는 게 없었다. 국민 입장에서는 그런 점에서 변화와 개혁이 이뤄져야겠다고 해서 양당 체제를 3당 체제로 민의가 만들어진 것”이라며 ‘국회 심판’을 거론했다. 역시 민심과 동떨어진 인식이었다. 박 대통령은 조금도 변하지 않았다.
지난 5월13일에는 여야 3당 원내 지도부와 청와대 회동을 했다. 당연히 언론들은 ‘협치(協治) 시동’이라며 보도했다. 청와대는 분기별로 여야 지도부와 회동하겠다며 ‘협치의 정례화’까지 약속했다. 청와대와 여야 협치 성공 여부는 5.18기념식에서 ‘임을 위한 행진곡’을 제창할 수 있느냐에 달려있었다. 더민주와 국민의당은 제창을 한목소리로 요청했고, 박 대통령은 "국가보훈처에 지시해서 '좋은 방안'을 강구하도록 하겠다"고 답한 것으로 전해졌다. 회동이 끝난 뒤 우상호 더민주 원내대표는 “저와 박지원 원내대표의 거듭된 주문에 답하신 것이라고 평가합니다”고 해 기대감을 부풀렸다. ‘임을 위한 행진곡’이 뭔가. 1980년대부터 내내 민주화 운동의 현장에서 항상 듣고 부르던 노래다. 이 노래를 부정하면 한국 민주화를 부정한다는 등식도 나온다. 그러나 국가보훈처는 16일 ‘불가’라는 기존의 입장을 재확인했다. 박 대통령은 조금도 변하지 않았다. 언론인들과 야당 지도부를 들러리 세워 협치와 소통이라는 이미지만 챙기고 ‘먹튀’한 것이 아닌가 하는 비판이 나올 수밖에 없다.
‘불변’은 인사에서도 드러났다. 청와대 인적쇄신의 핵심은 ‘문고리 권력 3인방’의 교체에 있다. 이들은 건재한 채, 대통령에게 직보할 기회도 없었다는 소문이 무성했던 이병기 청와대 비서실장이 지난 15일 청와대를 떠났다. 그 자리를 채운 사람은 ‘행정의 달인’이라는 신문나이 74세, 한국나이 75세의 이원종 전 충청도지사다. 미국 영화는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지만, ‘고용절벽’에 부딪친 청년들의 실업률이 사상 최고라는 한국의 박근혜 정부에서 노인은 건재하고, 영원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