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브랜드가 중요한 시대
사비 털어 공부하고 책 펴내
전문성 위해 출입처 뛰어넘어야
문제의식 갖고 살아가는 게 중요
개인 의지에 맡긴 전문성 교육
기자와 회사의 공동 노력 필요
하나의 유령이 언론계를 배회하고 있다. ‘전문성’이라는 유령이. 대다수 기자들은 기자이며 동시에 전문가 되기를 과제로 생각한다. 아니 요구받는다. ‘기자의 전문성’이란 무엇일까. 독자에게 더 나은 기사를 전하고픈 글쟁이 본연의 욕망이 원인이면서도 너무나 많은 기자들 사이에서 살아남기 위한 생존의 몸부림이기도 하다. 녹록지 않은 현실, 특정 영역에서 입지를 구축한 일부 기자들은 ‘전문가’로 거듭나 활약을 이어가고 있다. ‘전문성’을 키우기 위해 불철주야 노력하는 기자들도 상당수다. 그러나 이들의 성취나 노력은 ‘기자의 전문성’을 배양하려는 언론계의 토양에 기댄 것이 아니라는 지적도 나온다.
20년차 기자의 변신…강진구 경향신문 노동전문기자
노동전문기자, 논설위원, 중앙노동위원회 근로자위원, 공인노무사 등. 강진구 경향신문 기자가 가진 직함이다. 이를 아우르는 키워드는 ‘노동’. 1992년 경향신문 입사 이래 노동 관련 주제로 2차례 등 ‘한국기자상’을 4번이나 수상한 24년차 기자는 전문성을 무기로 종횡무진 활약 중이다.
강 기자는 대부분이 ‘책상머리 기자’가 되는 입사 20년차(2012년), 기자 최초로 노무사 자격증을 따고 ‘노동전문기자’로 거듭났다. 평일엔 퇴근 후 4시간씩 동영상 강의를 듣고, 주말엔 신림동을 찾아 실강을 듣는 생활을 1년 간 지속한 노력의 결과였다. ‘노동’에 대해 “전혀 관심이 없었다”는 그는 노조위원장을 맡았던 2011년 우연찮게 접한 노동전문 주간지의 기사 하나가 자신을 흔들어놨다고 했다. “‘수많은 신문에 여행, 건강, 머니 섹션이 있는데 왜 대한민국 인구의 3분의 1이 노동자인데 노동 섹션이 없나. 이 자체가 언론의 (노동에 대한) 무관심을 반영한다’는 기사를 보고 무릎을 쳤어요. ‘편집국에 복귀하면 내가 할 일이 이거다’ 싶었어요.”
이후 그는 ‘노동전문기자’만이 쓸 수 있는 기사들을 연거푸 선보였다. 지난해 7월 노동 관련 분쟁의 판정 주체들을 평가한 <노동자 울리는 ‘노동법 심판들’> 기획, 최근 서울시 산하 건설현장 일용직들의 포괄임금제 문제를 지적한 보도들이 대표적인 사례다. 노동 전문가와 기자의 경험이 합쳐지지 않았다면 결코 나오기 어려운 기사였다.
강 기자는 “기사가 나가고 한 노무사한테 ‘(이런 부분들을) 하소연할 데가 없더라. 고맙다’고 연락이 왔다. 노동법을 공부한 기자로서 보람을 느꼈다”며 “정보 비대칭 속에서 취재원들이 얘기하는 대로 따라가기 쉬운데 자격증 취득 후엔 노사 관계 부분에선 자신감이 생겼고, 취재원들도 존중하는 부분이 있다”고 했다.
처음 편집국에 돌아가 “노동전문기자를 하겠다”고 선포했을 때만 해도 편집국의 반응은 신통치 않았다. 데스크급 기자가 부족했던 당시, 정치·경제·사회부에서 각 5년 이상씩을 경험한 강 기자의 선언에 편집국은 “그냥 웃는” 분위기였다. 500대 기업의 재무재표에서 노동 관련 지표들을 뽑아 점수를 매긴 <500대 기업의 고용과 노동> 기획이 나온 배경이다.
“‘딱 한 번만 기획을 해보겠다, 기회를 달라’고 해서 두 달 말미를 받아 시작했어요. 성과를 보여주고 나서 ‘이제 제2, 제3의 노동 기획도 하겠다’고 해서 <간접고용의 눈물>이란 기획을 했고, 두 해 연속 한국기자상을 받았습니다. 그러면서 회사에서도 인정해주고 노동전문기자로 공식발령도 내줬죠.”
지난해 7월 논설위원으로 발령난 강 기자는 요즘 노동철학을 공부하며 정기적으로 ‘노동’ 관련 칼럼을 쓴다. 기자로서 ‘노동 섹션’을 만들어 ‘삶 자체로서의 노동’을 조명하겠다는 꿈이 있지만 그는 이미 기자 이상이다. 지난 2014년 JTBC 프리랜서 부당해고 사건에 노무사 자격으로 참석한 뒤 기사를 썼다가 서울노동청으로부터 조사를 받은 것이 일례다.
그는 “제 정체성이 좀 확장된 거다. 기자가 가장 중요한 아이덴티티지만, 기자에 (노동) 활동가라는 영역이 포함된 거 같다”며 “은퇴 후에도 노동을 테마로 내 인생을 살아가고 있지 않을까 싶다”고 했다.
기자의 전문성이 강조되는 시대지만 개인들이 역량을 갖추기에 현실은 만만치 않다. 강 기자는 “전문기자로서 단단한 기초는 일반 기자의 활동을 통해 우리사회 전반을 이해하는 능력을 갖추고 기자로서의 순발력, 독자와의 교감을 갖추는 데서 시작된다”고 제언했다. 그러면서 “15~20년 후 어떤 분야에서 우리 사회에 자기 고유의 목소리를 던질지 늘 문제의식을 갖고 살아가는 게 중요하다고 본다”고 강조했다.
일찍부터 ‘전공’ 찾은 한겨레 남종영·한경 최인한 기자
주로 환경·생태기사를 쓰는 15년차 남종영 한겨레 기자는 일찍 전문분야를 찾은 경우다. 그가 환경에 관심 갖게 된 계기는 ‘북극곰의 수도’로 불리는 캐나다 허드슨만으로 떠난 신혼여행이었다.
“4~5년차였던 2005년이었어요. 여행에서 돌아와 북극곰 관련 기사를 썼죠. 그 이후에도 북극, 국토 상당 부분이 물에 잠긴 나라 투발루, 적도, 남극까지 취재에 나서 큰 기획기사를 냈습니다. 처음부터 환경기자를 하려 했던 건 아니었어요. 신혼여행에서 북극곰을 만난 후부터 환경분야에 관심을 쏟기 시작한 거죠.”
당시 국내에선 기후변화를 큰 이슈로 다루지 않았다. 남 기자는 외국 자료를 찾아보며 공부를 시작했다. 그 사이 여행, 노동 등도 담당했지만 환경 분야를 놓지 않았다. 전문성을 쌓아가며 틈틈이 책도 썼다.
2009년 북극과 남극 등 취재경험을 바탕으로 환경 에세이 ‘북극곰은 걷고 싶다’를 펴냈고, 2010년엔 ‘탄소 다이어트-30일 만에 탄소를 2톤 줄이는 24가지 방법’을 번역하기도 했다. 고래를 연구하면서 2011년 책 ‘고래의 노래’도 썼고 서울대공원에서 쇼를 벌이던 남방큰돌고래 ‘제돌이’ 기사를 수 차례 연재했다. 2013년에도 환경문제를 다룬 ‘지구가 뿔났다’를 출간했다. 한겨레 토요판 팀장을 맡으며 생명면을 신설, 동물복지·동물권을 집중 조명했다.
그는 전문분야를 더 깊이 공부하기 위해 유학길에 오르기도 했다. 2013~2014 영국 브리스톨대에서 동물지리학 석사를 밟으며 ‘제돌이’를 주제로 논문을 썼다. 그는 “사비를 털어 외국에서 공부했지만 하나도 아깝지 않았다”며 “그만큼 많이 알게 됐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전문성을 위해 출입처를 뛰어넘어야 한다고 조언했다. 남 기자는 “실제로 환경부를 담당했던 기간은 2년 남짓이었다. 환경부와 별도로 고래는 해양수산부가 담당하고 동물복지 등은 농림축산식품부가 맡고 있다”며 “환경이라는 큰 주제를 중심으로 영역을 넓히다 보니 출입처의 벽을 넘을 수 있었다. 개인의 노력도 중요하지만 회사, 동료들과 이런 인식을 공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일본통인 최인한 한경닷컴 뉴스국장 겸 일본경제연구소장은 기자 개인의 노력이 소속 조직의 맥락 안에서 유효할 수 있는 ‘현명한 노력’이 돼야 한다고 당부했다.
최 국장은 개인 차원의 노력이 선행돼야 한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그는 입사 3년차였던 1991년 당시 국제부에서 일본경제뉴스를 접하면서 전문분야를 찾았다. 2001~2002년 일본 연수 후 2004~2007년 도쿄특파원을 지내면서 일본전문가로 완전히 자리매김했다. 그는 지금도 매일 저녁 NHK 뉴스를 보고 매년 4회 이상 일본을 방문한다. 감을 잊지 않기 위해 일본서적도 자주 읽는다. 그가 전문성을 살려 기획한 한국경제 일본경제포럼은 벌써 10회를 맞았다.
최 국장은 “기자가 전문성을 쌓지 않는다면 기자 개인이나 언론사가 생존하기 어렵다는 것에 다수가 동의한다”면서도 “다만 기자도 한 조직의 구성원이기 때문에 개인의 커리어뿐 아니라 전체적인 콘텐츠 경쟁력이나 비즈니스 역량 강화 등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이진우 경제전문기자, 유용원 조선일보 군사전문기자
전문분야는 언론사를 넘어선 기자를 가능케 한다. 이진우 경제전문기자는 2011년부터 MBC 라디오 ‘이진우의 손에 잡히는 경제’ DJ로 활약하며 전문성을 드러내고 있다. 이데일리 등에서 10여 년 간 기자생활을 해 온 그는 2013년 신문사를 떠났지만 경제전문기자로서 브랜드 파워를 지녔다. 지난해 MBC 연예대상에선 라디오 부문 우수상을 받기도 했다.
이 기자는 남들보다 경제기사를 잘 쓰고 싶어 더 깊이 파고들었다. 그는 “기자의 전문성은 취재를 열심히 하다보면 자연스레 갖춰지게 된다”면서 “제겐 방송·라디오에 출연한 것도 큰 도움이 됐다”고 설명했다.
그는 소속 언론사보다 기자의 브랜드가 중요한 시대라고 강조했다. “다들 네이버 기자, 다음 기자, 페이스북 기자가 됐다”며 “이제 기자로서 정체성을 가질 수 있는 건 각 언론사보다 자신의 기사”라고 했다.
국내 언론계 ‘기자 브랜드’의 대표격인 유용원 조선일보 군사전문기자 겸 논설위원은 “기자의 브랜드화는 개인뿐 아니라 언론사에도 도움이 된다”며 “기사를 쓰고 외부활동을 할 때마다 소속사를 함께 내세우기 때문에 ‘윈-윈’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유 기자는 언론사의 생존전략 중 하나로 기자의 전문성을 꼽기도 했다. 그는 “인터넷 등장으로 가장 어려워진 직업이 기자다. 정보 독점권을 누렸던 기자들은 정보 홍수 속에서 사회의 기대를 따라가지 못한다는 비난을 받는다”며 “제도권 언론의 영향력이 줄어드는 상황에서 언론사가 살아남기 위해선 기자의 차별화된 전문성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현재 언론계에서 전문기자제도는 제대로 자리잡혀 있지 않다. 전문성을 강화하기 위해선 재교육이 필수지만 고질적인 인력부족 문제와 전문기자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제도 안착을 가로막고 있다.
한국언론진흥재단이 발간한 ‘2013 언론인 의식조사’에 따르면 응답 기자 1527명 중 96.1%가 ‘재교육이 필요하다’고 답했다. 대다수의 기자들이 재교육의 필요성에 공감하고 있다는 의미다. 실제 한국언론진흥재단을 비롯해 대기업의 이름을 건 공익재단 등에서 언론인을 대상으로 다양한 프로그램을 제공하고 있다. 하지만 이들 중 최근 2년간 직무 관련 연수나 재교육을 받은 경험이 있는 기자들은 37.1%에 불과했다. 같은 보고서에서 이들은 ‘기회가 있어도 업무량이 많아 참여 어려움(41.7%)’, ‘재교육에 대한 회사의 투자 인식 부족(38.0%)’을 걸림돌로 꼽았다.
특히 저연차 기자들의 교육참여는 더욱 어렵다. 전문성을 배양하기 위해선 충분한 시간이 필요하지만 당장 회사에 도움되는 경우가 아니라면 교육참석 의사를 밝히기도 어려운 게 현실이다. 한국언론진흥재단은 업계 수요에 따라 올해 디지털 분야 교육프로그램을 대폭 강화해 대부분이 만석으로 운영됐지만 여기서도 저연차 기자를 찾기는 어렵다. 정대필 언론재단 언론인연수팀 팀장은 “재교육 필요성에 대한 인식이 높아지고 디지털 분야에 초점을 두면서 교육참여 기자들의 연차가 5~12,13년차 정도로 내려갔지만 여전히 2~4년차는 비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한 7년차 방송사 기자는 “전문성을 강화하기 위해 교육에 참여하겠다고 했다가 ‘일반 부서에서 기자생활을 쌓아 가는 걸 우습게 보냐’는 비아냥을 들었다”며 “보도국의 분위기 자체가 전문기자에 그리 호의적이지 않은 것 같다”고 토로했다.
유용원 조선일보 군사전문기자는 “기자의 의지와 희망만으로는 전문기자제도가 자리잡기 어렵다. 전문기자를 강조하는 언론사가 많지만 아직 체계화됐다고 말하기엔 이르다. 전문기자 인재풀을 구성해 인력 공백에 대비하고 젊은 기자들을 키우는 등 기자와 회사의 공동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최승영 기자 sychoi@journalist.or.kr
김달아 기자 bliss@journalist.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