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혼 잃어버린 MBC…언론인, 굳은 심지 지켜야"

'사라져 아름답다' 쓴 구영회 전 삼척MBC(현 강원영동) 사장

“공영방송이 영혼을 잃어버린거죠. 높은 가치를 추구할 수 있는 시설과 인력을 갖추고 있는데도, 무엇을 하고 있는지 무엇을 해야하는지 자체를 잃어버렸어요.”


기자, 보도국장, 사장…. 수많은 명함을 뒤로 하고 지리산에 들어가 자연 속에서 제2의 인생을 살고 있는 구영회 수필가는 현 언론 상황에 대한 착잡함을 감추지 못했다. 특히 지난 2012년 공정방송의 기치로 불거진 노조 파업과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는 해직 및 징계는 MBC의 대선배로서 두고두고 안타까움으로 남아 있다. 구 수필가는 “공영(公營)이라면 방송사 문을 들어설 때부터 퇴근할 때까지 특정 집단이 아닌 오로지 국민들을 위해 일하는 게 당연한 건데, 이런 기본적인 게 상실되고 소멸되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깝다”고 했다.


“특정 세력이 이해관계 속에서 방송을 장악해 활용하고자 하는 건 어느 시대나 있었어요. 기자는 사명감들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아무리 바깥에서 뭐라하든 ‘내 할 일은 이거다’ ‘나의 미션은 이거다’라는 굳은 심지요. 요즘엔 이런 것들이 많이 없어진 것 같아요.”


몸과 마음을 자연에 두며 속세의 무게를 훌훌 벗어던진 구 수필가에게도 언론과 방송에 대한 애정만큼은 여전히 남아있었다. 33년간 누구보다 언론인으로서 치열하게 살아온 그로선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그럼에도 지리산 속 삶을 선택한 건 ‘언젠가 구들방에서 장작을 때면서 살겠다’는 오랜 로망 때문이었다.


“30대 후반부터 자기의문이 끊임없이 일어났어요. 질주하듯 살고 있는데 무엇을 위해서 사는건지 인생에 대한 근본적인 의구심이 꼬리를 물었죠. 주말마다 지리산에 갔는데 숨 가쁜 도시생활의 군더더기가 떨어져나가면서 복잡했던 머리가 고요해지고 정리가 되더라고요. 몸의 유랑, 자유를 통해 마음의 자유를 얻은 거랄까요.”


그는 산 속에서 책을 읽다가 글이 써지면 펜을 든다. ‘지리산이 나를 깨웠다’ ‘힘든 날들은 벽이 아니라 문이다’ 등 저서가 잇따라 나온 이유다. 특히 최근 펴낸 신간 ‘사라져 아름답다’에는 인생의 후반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생의 의지를 불어넣어준다.


“누구에게나 터널은 다 있어요. 터널의 깜깜함을 못 견뎌서 그렇죠. 이 터널을 나가면 환한 바깥이 분명히 있어요. ‘삶은 결국 마감되는 것’이라는 사실을 순간순간 알고 산다면 좀 더 아름답고 완전하게 연소될 수 있지 않을까요?”


구 수필가는 기자 후배들에 대한 조언도 아끼지 않았다. 어려운 시기일수록 기자 정신을 확고하게 가져야한다는 것. 그는 “본질적으로 내가 왜 이 직업을 선택했는지 고민해야 한다”며 “기자들이 좀 더 큰 그림으로 사회를 바라보며 좋은 에너지를 세상에 내뿜길 바란다”고 전했다.


자신의 인생을 ‘백지장’으로 소개한 그에게 계획이 있을까. “꿈을 꾸는 것보다 꿈을 깨는 게 내 삶의 기조에요. 내 삶의 마감이 오기 전까지 얼마나 고요하고 평화롭게, 혹은 사람들과 의미있게 살 수 있을지 고민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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