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최순실 게이트’ 정국에서 박 대통령의 의료 문제는 ‘잃어버린 7시간’을 규명할 중요한 단서 가운데 하나였다. 수많은 기자들이 대통령의 ‘비선 진료’ 의혹을 밝히기 위해 취재에 돌입했고, 그 치열한 전쟁 한복판에 의사 출신인 조동찬 SBS 의학전문기자도 뛰어들었다. 그는 지난 13일 최순실씨가 김영재의원에서 ‘최보정’이라는 가명을 사용해 136차례나 진료를 받은 것과 관련, 최보정의 생년월일이 대통령 생일과 최씨의 생년을 합쳤다는 내용을 단독 보도하는 등 소기의 성과를 올렸다. 최씨 단골병원 의사인 김영재 원장은 대통령 주치의도, 자문의사도 아닌데 청와대에 5번 이상 ‘보안손님’으로 들어가 대통령을 진료했던 인물이다.
취재는 시작부터 쉽지 않았다. 시작이 가설인 것부터가 그랬다. “부장은 ‘잃어버린 7시간’의 열쇠가 의료에 있다며 전력투구하라고 지시했지만 가설을 기반으로 취재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자괴감이 많이 들었고 핵심 증인들이 입을 열지 않아 외곽부터 취재를 해야 했죠. 하지만 김영재 원장 등 관련인물이 드러나고 의료계 특혜 등이 밝혀지면서 취재에 의미가 부여됐습니다. 의료분야에조차 비리가 있었다는 것, 큰 성과였죠.”
특히 비선 진료 문제는 조 기자를 포함한 여러 기자들의 취재로 상당 부분 실체가 드러났다. 주치의가 아닌 민간 의사들이 태반, 백옥, 신데렐라 주사 등을 대통령에게 처방하고 있었던 것이다. 조 기자는 “현대 의학이 추구하는 건 근거를 갖고 있는 연구자들이 모여 공통된 가이드라인을 만드는 근거 중심 의학”이라면서 “이런 주사들은 누구에게나 권할 수 있는 치료가 아니다. 심지어 개인이 아닌 대통령에게 이런 치료가, 검증되지 않은 의사에 의해 이뤄졌다는 건 대단히 안타까운 일”이라고 했다.
비선 진료뿐만 아니라 청와대의 특혜 의혹 등도 집단적인 취재를 통해 드러났다. 김영재 원장의 아내 박채윤씨가 대표로 있는 와이제이콥스메디칼에 전 방위적인 특혜가 있었다는 의혹이 수면 위로 드러난 것이다. 조 기자는 “업계 관계자들은 기술력으로 경쟁하는 것보다 정치권에 줄 대는 것이 더 빠르다는 걸 알았다면서 허탈해한다”며 “이참에 의료계도 제대로 교정할 기회를 마련해야 한다. 교정되는 모습까지 지켜보고 보도하는 것이 기자들이 할 일”이라고 말했다.
무엇보다 그는 진실을 알고 있는 사람들이 이제는 말해야 한다고 했다. 청문회에서 관련자들의 증언이 계속 엇갈리고 강남구 보건소가 조사한 내용을 밝히지 않고 있는데 슬픈 일이라고 말했다. 조 기자는 “의사들은 인턴 초기 트레이닝 과정에서 거짓말을 하면 안 된다는 교육을 받는다. 환자를 안 봤는데 본 척 거짓말을 하면 다른 의사가 그 환자를 점검하는 기회까지 없애버리는 것이기 때문”이라며 “그러나 지금 비선 진료 국면에서 등장하는 인물들 중 누군가는 거짓말을 하고 있다. 이제 진짜로 진실을 말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한편으론 세월호 참사 당일 대통령이 의료 시술을 안 받았어도, 마약을 안 했어도 그것 자체로 이미 심각한 문제라는 것을 사람들이 알았으면 좋겠다고 했다. “그 날 정말 아무것도 없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제보도 많이 들어왔고 오랜 기간 취재했지만 그 근거까지 밝힌 적은 없었기 때문이죠. 하지만 그날 시술도 안 했고, 마약도 안 했다고 괜찮은 건가요? 아무것도 하지 않았기에 더 심각한 겁니다. 아이들이 죽어갈 동안 청와대에서 아무런 대책이 나오지 않았다는 것, 시스템이 작동하지 않았다는 것에 대해 더 큰 반성을 해야 할 때가 된 것 같습니다.”
강아영 기자 sbsm@journalist.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