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 구독자인데 계속 이런 논조를 유지한다면 절독하겠다’라는 이메일들이 간간이 날아오곤 했다. 논설위원으로 일할 때다. 박근혜 정부 초부터 ‘국정원 댓글부대의 대선 개입 사건’과 ‘서울시공무원 간첩 조작 사건’, ‘노무현 북방한계선(NLL) 포기 발언 증거용 외교문서 공개’ 등이 있었다. 때문에 정권 초기 ‘6개월 권언밀월’도 없이 정부를 비판하는 글을 자주 썼다. 그러면 저런 이메일이 날아왔다.
물론 지인들이 “너무 세게 쓰는 거 아니냐”고 걱정도 했는데, 아버지 박정희 대통령 때나 전두환 정권 때처럼 남산이나 남영동 대공분실에 끌고 가 고문하는 시절은 최소한 아니라고 믿고, “노무현 시절에 동아일보 아무개 논설위원도 아무 일이 없었는데요”라고 답변했다.
촛불민심이 광장에서 활활 타올랐고, 지난해 12월8일 국회가 박근혜 대통령을 탄핵소추하고, 지난 3월10일 헌법재판소가 “대통령 박근혜를 파면한다”고 결정해 더 성숙한 민주주의 시민으로 살고 있다는 자부심에 고개도 빳빳해지곤 한다. 조기대선 덕분에 새 부대에 새 술을 담을 수 있게 됐다. 한국의 민주주의가 되돌릴 수 없는 불가역적 수준에 올라왔다는 평가도 나온다.
그러나 최근 민주주의의 한 축이라는 언론을 다소 극단적으로 혐오하고 적대하는 시선이 있다. 특히 특정 후보 지지자들의 콘텐츠는 걱정스런 수준이다. 그 중 하나는 ‘또 하나의 기득권 한겨레, 경향, 오마이뉴스, 왜곡보도 한경오 몽둥이 찜질이 약이다’라고 명문화한 포스터다. 경찰 모자와 몽둥이가 강압적이다. 지난 2월 말에는 ‘ㅍㅍㅅㅅ’에 <한겨레와 경향이 문재인을 혐오하는 이유>라는 글이 올라왔다. 현재 수십 만명이 좋아요를 누른 글이다. 그 글은 이들 매체가 문재인을 혐오한 실태를 거의 설명하거나 논증하지 않고 ‘혐오한다’고 확정지운 뒤 과거 학생 운동권과 호남 동교동과 학벌주의와 엘리트주의자들이 문재인을 왕따 놓는다고 주장했다. 17일자 미디어오늘의 <‘무너진 양강 구도’ 보도 외면한 매체들>의 글도 다소 이상했다. 주요 언론 온라인에 관련기사가 보도되지 않았다는 비판인데, 이는 언론사의 편집권을 간섭하는 발언이기도 하다.
슈메이커와 리즈의 <Mediating the Message in the 21st Century> (2013)에 따르면 미디어 내용에 영향을 미치는 5개의 동심원이 있다. 동심원의 코어에 개인이 있고, 그 위에 미디어 관행이, 미디어 조직의 특성이 쌓이고, 미디어 외부의 법과 제도가 4번째로, 마지막 이데올로기 등 사회 구조적 요인이 둘러싼다.
슈메이커는 미디어 콘텐츠 제작에 미치는 영향력이 위계적이라 코어가 아니라 5번째 원에서 더 큰 영향력이 나온다고 판단했다. 즉 시민사회 등의 압력은 현업 기자들에게 큰 압력이다. 또 언론사에서 뉴스가 나오는 과정은 취재기자부터 현장팀장, 담당데스크, 편집국장(부장단회의), 제작회의, 실제 신문으로 나오는 과정에서 편집기자, 편집부장 등 다수의 과정을 거쳐야 하므로 특정 언론사가 특정 대선 후보를 혐오한다고 해서 언론사 내부가 일사불란하게 움직여 이를 실현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그것은 피해의식이 극대화해 언론의 역할을 폄하하는 과정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런 태도가 과연 박근혜 정부와 크게 다르지 않은 것은 아닌지 생각해봐야 한다. 박 정권은 ‘여자 대통령이라 얕본다’고 하면서 방어하지 않았던가. 언론에 대한 극단적인 불신은 민주주의 성숙을 위해 바람직하지 않다.
한가지 더! 선거판에서 어떤 후보도 투표를 앞두고 승리할 것 같다는 예고기사가 나면 “나를 죽이느냐”는 항의전화가 온다. 지지자들은 방심하고, 경쟁자는 죽기살기로 덤비기 때문이다. ‘양자구도 흔들’이란 기사를 쓰지 않은 이유가 오히려 특정 후보에게 특혜를 준 것은 아닌가 하고 반대로 생각해보는 것은 어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