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판 '테드'를 넘어 온오프 교육 플랫폼

[디지털 신사유람단] ② 세바시

지난 3일 서울 양천구 목동 KT 체임버홀에서 열린 세바시 강연회 모습.


 지난 3일 저녁 7시 서울 양천구 목동 KT 체임버홀. 500석 규모의 공개홀이 꽉 찬 것도 모자라 통로마저 10~30대 관객들로 발 디딜 틈이 없을 정도다.

 

쌀쌀한 기온에도 이들이 이 곳을 찾은 이유는 한국판 테드(TED)로 조명 받고 있는 세상을 바꾸는 시간, 15’(이하 세바시)의 신년 첫 강연회가 열리는 날이기 때문이다. 노쇼(예약부도)를 감안해 700명을 모집했는데도 1400여명이 신청할 정도로 참가 희망자가 쇄도한 것.

 

이런 성과는 오프라인에서만 그친 게 아니라 SNS 등을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실제로 세바시의 페이스북 공식페이지 좋아요의 수는 45684(지난 5일 기준)으로 무한도전 등 일부 인기 예능프로그램을 제외하고 단일 프로그램으론 수위를 다툴 정도라는 게 세바시 관계자의 설명이다. 경향신문(35만여명), 한겨레(33만여명) 등과 비교해도 전혀 뒤지지 않는 수치다. 하지만 CBS 내부에서조차 이런 열풍을 예견한 사람은 거의 없었다.

 

세바시는 동영상 콘텐츠와 수익을 동시에 잡은 사례다. 세바시는 출범 2년만인 20138CBS TV국 소속에서 콘텐츠사업팀으로 떨어져 나오는 등 우여곡절 끝에 지난해 4CBS에서 분사했다.

 

강연회 장면을 촬영하는 구범준 세바시 대표.

 

8년째 세바시를 이끌어온 구범준 대표PD 겸 대표이사가 20112TV국 편성 개편 워크숍에서 세바시 아이디어를 처음 발제했다. 당시 스마트폰 보급 대수가 1000만대를 돌파한 데 이어 코바코 독점체제가 무너지고 종편이 등장하면서 지상파방송사의 위기가 가중되던 시기였다.

 

구범준 대표는 신자유주의가 대두되는 등 사회 전반적으로 경쟁이 심해지면서 자기개발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이를 적극 찾아 나서던 시기였다하지만 책과 강의만 있을 뿐 정작 스마트폰 플랫폼용 강연 콘텐츠는 없었기 때문에 지식강연 콘텐츠를 만들면 팔릴 거라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는 모바일용 HD급 영상 콘텐츠를 생산하되, 기독교전문 콘텐츠가 아닌 교육용 강연 콘텐츠를 만들어 그 콘텐츠를 유튜브 포털 팟캐스트 등에 무료로 배포하겠다고 회사 측에 제안했다. 당시 SD급 장비만 있던 CBS 입장에선 HD 장비를 임대하고 VOD 수익마저 포기해야 하는 등 비용 상승을 우려할 수밖에 없는 상황. 하지만 그의 집념이 이를 관철시켰다.

 

이처럼 세바시가 성공적인 동영상 강연 프로그램으로 자리 잡을 수 있었던 배경은 기존 방송 관행에서 벗어난 차별화된 시도와 실험 정신 덕택이다. 특히 소셜미디어의 효과를 톡톡히 봤다.

 

우선 프로그램을 알리기 위한 홈페이지를 방송사가 아닌 페이스북에서 만들었다. 지금은 보편화됐지만, 당시해만 해도 낯선 시도. 하지만 가뜩이나 사람들이 찾지 않은 방송사 홈페이지의 서브 페이지로 들어간다는 것 자체가 높은 진입장벽이 될 수 있어 과감한 선택을 했다페북 페이지가 세바시의 브랜딩에 사실상 일등공신의 역할을 한 셈이다. 실제로 지난해 8월에 열린 이국종 아주대학교병원 중증외상세터장의 강연회의 경우 조회 수만 900만명을 넘겼다. 국내 페북 이용자 1800만명 안팎인 점을 감안하면 적잖은 수치다.

 왼쪽부터 순서대로 이민호 스피치 코치, 조승현 PD(조연출), 박진희 열린번역 매니저, 윤성아 콘텐츠 큐레이터(작가), 박재홍 세바시 MC(앵커), 구범준 대표 PD, 김신애 선임 PD, 김태엽 PD(조연출),  임채민 PD(조연출), 김민주 매니저(연사 큐레이터).(세바시 제공)

 

이를 자발적인 관객 모객 활동과 홍보 등에도 활용했다. 500석은커녕 50여명만 자리를 채웠던 강연회는 횟수를 거듭할수록 인지도가 높아져 20121월 처음 500석을 꽉 채웠다. 첫 강연 이후 7개월만이다.

 

구 대표는 자발적인 관객 모객은 개그콘서트, 열린 음악회 등 일부 인기 프로그램만 가능했지만 세바시의 경우 페북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세바시는 인지도 있는 강사 출연 여부보다 포맷과 강연 콘텐츠라는 매력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신청을 하는 것 같은데 이게 브랜딩됐다는 방증이라고 말했다.

 

세바시의 지난해(5~12월 기준) 매출액과 영업이익은 각각 12억원, 5억원을 기록했을 것으로 추정했다. 금액으로 따졌을 때 작을 수도 있지만 그동안 없었던 동영상 콘텐츠와 수익원이 생긴 것을 감안하면 적잖은 성과다. 세바시는 상표권과 플랫폼 사용료 등으로 1대 주주인 CBS에 수익의 일정 부분을 떼어준다.

 

더구나 작년 7월엔 크라우드펀딩을 통해 255명의 투자자를 모았다. 개인당 40~200만원을 투자해 목표 금액인 3억원을 15일 만에 달성했다. 주식 가치(액면가 주당 5000)를 주당 40만원으로 인정받은 셈이다. 세바시 주주 구성은 CBS 64.5%, 구범준 대표 31.8%, 크라우드펀딩으로 모아진 주주 3.6%.

 

지금까지 총 900여편의 강연자료가 만들어진 가운데 대기업 공공기관 등의 협찬광고 외에 기관 기업 학교 등에 동영상 강연 자료를 판매하는 콘텐츠 판매수익 등이 세바시의 주된 수익원이다. 세바스 구성원은 구 대표를 비롯해 PD 4, 콘텐츠 매니저 1명 등 6(정규직 기준)으로 구성됐다.

 

CBS 목동 사옥 14층에 위치한 세바시 사무실.

조승현 PD많은 분들께 영감과 인사이트를 드리기 위해 강연자들의 이야기와 그 안에 담긴 의도를 왜곡 없이 전달해야 한다는 게 큰 부담감이라면서 하지만 우리의 고생으로 세상이 조금 더 따듯해 질 수 있다면 기쁘게 감당할 만한 일이라고 말했다.

 

세바시는 내달부터 오프라인 유료 온라인 클래스를 시작으로 무크(Massive Open Online Course·온라인 공개 수업)사업에 본격 시동을 걸 예정이다. 또 궁극적으론 온·오프라인상 교육을 아우르는 세바시 스쿨을 만들 생각이다.

 

구범준 대표는 테드가 18분인데 다소 길다는 느낌이 들었다. 잡지를 훑어보는 시간, 야식으로 라면을 끓여 먹는 시간, 버스를 기다리기 위한 시간 등 ‘15은 우리 일상에서 무수히 버려지고 있지만 그 15분으로 많은 것을 변화시킬 수도 있다유료 플랫폼으로 만드는 게 저희 가장 큰 목표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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