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행·구태 때문에 안 바뀌고, 그래서 기본과 멀어지고

[저널리즘은 신뢰다] ②왜 신뢰와 멀어졌나?

이진우 기자 | 2018.01.09 19:01:42

입사를 할 때부터 그림얘기는 귀가 닳도록 들었어요. 취재를 하다가 얘기되는 아이템 같아서 보고하면 데스크가 그림은 확보했나’ ‘그림 좋나는 물음부터 던지셨죠. 물론 방송은 그림이 있어야 현장감이 있기 때문에 영상이 중요한 거라는 건 알아요. 그런데 타사에서 보도 나갔다는 이유만으로, 아니면 유튜브같이 SNS에서 떠도는 영상이 있으면 당장 리포트 말으라고 지시할 때는 고민이 되죠.”

 

종합편성채널의 A기자는 올해로 6년차다. 수습 때만해도 그림을 찾으러 다니면서 이게 문제가 될 거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어느 순간부터 주말에 아이템이 없을 때는 통신사에 나와 있는 기사를 참고해 거기에 그림을 입히는 관성이 생겼다. 그림이 주가 되는 일부 리포트에는 그림에 맞춰서 야마를 잡고 기사를 쓴 적이 있다고 고백한다. A 기자는 사실 이런 경우는 타 방송국에서도 비일비재할 것이라며 시간에 쫓기다보면 확인 과정을 축소하고 급하게 제작하게 되는데, 영상 해석에 개인의 자의적인 판단이 들어갈 수 있는 만큼, 팩트 확인이 매우 중요하다라고 지적했다.

  


그림 좋아?” 영상에 매달리는 보도국

 

그림만 있으면 된다는 보도국의 관행은 논란거리가 되기도 한다. 지난달 26MBC 뉴스데스크에서 보도된 <제천 화재, 긴박했던 상황'우왕좌왕' CCTV 영상 공개>는 기자가 자의적으로 영상을 묘사하며 질타를 받았다. 추가 취재 없이 CCTV 영상만으로 소방관의 행동을 우왕좌왕으로 표현하며 비판한 것. MBC의 한 기자는 당시 오후 5시가 돼서야 확보한 영상을 바탕으로 급하게 제작하다 문제가 터진 걸로 알고 있다. 왜 직접 구조에 나서지 않았는지 등의 세밀한 상황을 취재하지 못했다. 해당 기자뿐만 아니라 큰 사건이 터지면 성급하게 대응한 데스크가 더 큰 문제고 지적했다. 뉴스데스크는 시청자들의 항의 속에서 보도 닷새 만인 31일 사과 방송했다.

 

기자들은 이를 두고 개인의 문제로만 치부하기에는 현실을 설명하는 데 한계가 있다고 입을 모은다. 언론사의 낡은 타성과 조직 관행이 기자에 대한 신뢰, 나아가 언론에 대한 신뢰 하락의 주된 요인이라는 지적이다. MBC 민주언론실천위원회(민실위)사건사고 기사에 있어서 CCTV와 블랙박스 만능주의가 자리 잡았다현장 상황을 담은 CCTV의 가치를 높게 평가하면서 주요 방송사들이 똑같은 화면을 내보내는 경우도 자주 발생한다고 꼬집었다.

 

포털을 잡아라”...단독 아닌 단독 쏟아져

 

경쟁적으로 붙는 단독딱지도 지양돼야하는 관행으로 꼽힌다. 일간지 B 기자는 디지털퍼스트가 강조되면서 더욱 속보 경쟁에 목매는 것 같다. 타사에 물을 먹지 않기 위해 억지로 쓸 때면 단독이어도 보람이 없다고 하소연했다. 통신사의 C 기자도 단독 달기에 부끄러운 기사가 종종 있는데 데스크의 부추기기에 어쩔 수 없는 게 현실이라고 했다.

 

기자들은 단독에만 급급하다보면 자칫 독자가 등을 돌리는 때가 올 수 있다고 경고한다. C기자는 단독을 매체가 꼽은 주요한 기사로 인지하고 있기 때문에, 사실과 다르거나 알맹이가 없으면 독자는 실망할 수밖에 없다통계자료를 면밀히 분석하거나, 추가 팩트 확인할 시간을 주지도 않고 빨리 보도하라는 윗선의 구태가 가장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포털 경쟁이 무분별한 단독을 양산하기도 한다. B 기자는 단독을 달면 그만큼 주목을 받게 되고 다른 매체들도 줄줄이 받아쓰기하기 때문에 포털에 노출될 가능성이 높은 걸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네이버 관계자는 단독을 달면 매체들이 따라 쓰고 인공지능이 주요뉴스로 인지하기 때문에, 최상단 노출은 당연히 우라까이보다 단독이 붙은 기사일 수밖에 없다. 그 후에 더 취재를 해서 양쪽 입장이나 새로운 취재내용이 들어간 기사가 발생되면 그걸로 알고리즘이 바뀌는 방식이라고 설명했다.

 

MBC 뉴스데스크가 지난달 11일과 26일에 보도한 내용.

아직 취재 덜 됐는데”...무리한 보도 남발 논란

 

근거를 충분히 제공하지 않아 신뢰에 금이 가는 경우도 있다. MBC 뉴스데스크는 지난달 11<[단독] 이례적 중동 특사 파견MB 비리 관련?> 리포트를 톱뉴스로 내놨다. 임종석 청와대 비서실장이 중동으로 특사 방문한 진짜 이유와 관련해 원전 관련 의혹이나 MB 비리에 대한 본격 조사에 앞서 외교적 마찰을 최소화하기 위한 것으로 해석된다는 내용이었다.

 

시청자들은 사실 여부를 떠나 리포트에 믿을 만한 근거가 부족하다는 지적을 쏟아냈다. 리포트에서 내세운 근거가 익명으로 처리된 청와대 관계자 한 사람에 불과했다는 것. 기사 댓글에는 밑도 끝도 없는 추측성 보도를 내고도 끝까지 버티는 건가. 기자하지 말고 차라리 소설을 써라” “국민 편에 서겠다면서 오보내고 정정보도는 왜 하지 않나” “청와대 고위 관계자 누구냐? 실명을 내라는 비판이 이어졌다. MBC는 이달 4<국회 동의 없이 '상호방위조약' 수준의 군사협력?>이라는 후속 보도를 내놨지만, 뒤늦은 감이 있다는 지적을 떨쳐내지 못했다.

 

MBC 뉴스데스크는 같은 달 26<"MB, 다스 미국 법인 왔었다"퇴임 후 방문> 리포트에서 반론을 싣지 않아 논란이 되기도 했다. 지난 2014 이명박 전 대통령이 다스 미국 법인에 방문했다는 내용의 리포트에는 해당 회사의 하청업체 관계자 인터뷰가 담겼지만, 당사자인 이 전 대통령 반론은 없었다. 박성제 취재 센터장은 이 전 대통령 관련 보도는 다른 매체 보도를 봐도 대부분 반론 없이 나간다. 모든 걸 부인하니까 다루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면서도 결과적으로 (반론을) 못 실은 점은 소홀한 게 맞다고 했다.

 

해당 리포트는 이명박 전 대통령에 의해 언론중재위원회에 제소된 상태다. 언론중재위 관계자는 두 건 모두 28일에 이명박 전 대통령 이름으로 직접 신청됐다“‘비리 때문에 대통령 특사가 UAE에 파견됐고 실소유주라고 의심받는 회사의 미국 법인을 방문했다는 보도는 사실이 아니다란 내용이 간략하게 담겨있다고 전했다.


내가 15년간 외도했다고?” 받아쓰기하다 줄줄이 오보

 

저는 그저 가정을 지키고 싶었을 뿐입니다. 자식들한테 말도 못하고 너무나 힘들었습니다. 정말 잘못했습니다.” 지난해 8‘15년간 외도 아내 통화내용 몰래 녹음한 남편이라는 제목의 기사가 포털 사이트를 달궜다. 기사 상단에는 한 60대 남성의 구구절절한 호소문이 실렸다. 15년간 외도를 한 아내의 통화기록을 녹취한 혐의로 재판장에 서게 된 남성이 선처를 구하는 모습도 묘사됐다.

 

연합뉴스는 국민참여재판에서 피고인 A씨가 최후진술을 하면서 어깨를 들썩이며 울기 시작하자 배심원단은 술렁였다법원에 따르면 1980년 결혼한 A씨가 아내의 외도를 알아챈 것은 20년 정도 지난 2001년이었다. A씨는 2001년 아내가 다른 남성과 함께 차를 타고 있는 모습을 목격했다. 이후 그 남자를 만나지 않겠다는 약속을 받아냈지만 4년 뒤인 2005년에도 둘이 연락을 주고받는 사실을 알게 됐다고 아내의 외도를 기정사실화 했다.

 

하지만 이 남성의 증언은 사실이 아니었다. 재판부는 별개로 진행한 이혼 소송에서 아내가 15년간 외도를 했다는 것은 일방적인 주장이며 혼인관계가 파탄에 이르게 된 이유에 대해서도 아내의 외도 때문이 아니라 결혼기간 동안 이유 없이 아내의 남자관계를 의심한 60대 남성의 의처증과 아내에 대한 폭언 및 폭행 때문으로 판시, 아내에게 위자료 2500만원을 배상하라고 판결을 내렸다.

 

연합뉴스의 보도는 다른 매체들이 받아쓰며 더욱 확산됐다. 피해자 김씨가 언론중재위에 제소한 언론사를 살펴보면 온라인 중앙일보, SBS아이앤엠, 세계닷컴 등 온라인 매체뿐만 아니라 MBC, MBN, 채널A, 연합뉴스TV 등과 같이 방송사들도 뉴스 리포트를 통해 해당 기사를 인용 보도한 것을 알 수 있다. 이들이 쓴 기사에는 모두 피해자 김씨의 반론이나 추가 팩트가 담겨있지 않았다. 모두 통신사인 연합뉴스 기사를 참고하거나 재판장에서 남성의 발언만 믿고 그대로 보도한 것이다.

 

피해자 김씨는 언론중재위에 보도 이후 포털사이트에 불륜녀라는 수천 건의 댓글이 달리며 나쁜 인상을 심어줬다고 반발하며 정정보도를 요청했다. 실제로 해당 기사 댓글에는 지가 잘못해놓고 뻔뻔하게 남편 탓에 이혼 요구라니” “배우자 말고 다른 사람이 그렇게 좋으면 이혼하고 (불륜)하면 되잖아” “불륜 저지른 주제에 녹음했다고 고소를?” 등의 김씨를 비난하는 글들이 쇄도했다.

 

언론중재위 관계자는 해당 사건은 언론사에서 정정보도 또는 검색 차단 해주겠다고 해서 심리 출석 전에 합의되고 취하됐다언론사가 오보인지 아닌지 시시비비를 따질 필요 없이 잘못된 내용이 있는 것을 인정한 경우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노후화된 조직...일 떠안는 젊은 기자들

 

조직 노후화로 젊은 기자들에게만 업무가 과도하게 쏠리는 게 대다수 언론사의 고충일 거라 봐요. 데스크는 이름 그대로 의자와 결합돼있고, 연차가 쌓인 선배들 중에는 멀찌감치 서서 평론이나 지적질만 하는 분들도 많거든요. 예전 문화가 그랬다고 쳐도 이제 신입 기자도 잘 뽑지 않고 디지털 기사도 같이 고민해야하는데, 자기 아집만 주장하는 선배들 보면 답답하죠.”

 

국민일보의 D 기자는 변화하는 미디어환경을 언론사와 기자들이 따라잡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D 기자는 “90년대까지 기자로서의 특권을 누려온 이들이 지금 언론사 간부를 하고 있는 건, 마치 부잣집 도련님으로 자라온 사람이 어려운 환경 속에서 자신뿐 아니라 처자식까지 먹어 살려야 하는 것과 같은 상황이라며 세대 간의 생각차가 있을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경영진이 각을 잡고 조직개혁을 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한 지상파 E 기자는 선배들이 귀찮다는 이유로 TC (Timecode의 약자로 영상 장면 위치를 뜻한 용어)따는 작업을 AD에 대놓고 떠넘기기도 한다자기가 영상을 찍었기 때문에 어떤 부분의 영상을 써야 하는지 알 텐데도, ‘이 연차되면 원래 그런 거 안 한다는 생각이 만연해있다. 최근에 어떤 선배는 A4 6장에 달하는 TC를 요구하더라고 토로했다. E 기자는 다른 선배는 아침보고를 이 연차에 해야 하냐막내를 보내 달라고 계속 투덜거렸다. 남에게 미루기가 이 조직의 특색이 돼버린 것 같아 씁쓸하다고 지적했다.

 

특권의식과 갑질로 대표되는 꼰대 문화도 신뢰 회복의 걸림돌로 꼽힌다. 한 방송사 F기자는 회의 시간에 소외된 시민들의 목소리를 담아야 한다고 강조하던 데스크가 어느 날에는 낮은 직책의 취재원이 전화를 했다며 왜 내게 전화하냐는 식으로 위선적인 모습 보이더라기자 직종을 마치 권력의 하나처럼 잠재적으로 생각하는 의식이 남아있는 것 같다고 지적했다. 경제지의 G 기자는 사회부 수습기자들에게 밤새 보고하게 하는 하리꼬미방식 등이 과연 진정한 기자 교육인지 의문이다. 선배의 억압적인 행동과 말들은 폭력과 가까운 수준인 경우가 많다. 구태 문화부터 고쳐야 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독점적 지위 역할 달라지고 있어

 

사회가 투명해질수록 언론의 신뢰도는 낮아질 수밖에 없어요. 공권력이나 언론이 불필요한 사회에서 권력 고발자로서의 언론은 예전만큼의 지위를 가질 수 없죠. 정보주체 면에서도 예전에는 독점적 지위였다면 지금은 역할이 바뀌어가고 있잖아요. 아직도 예전의 낡은 관행대로 속보경쟁에 목을 맬 게 아니라, 한 단계 높은 존재이유를 찾아야 합니다. ‘기레기라는 혐오대상에서 유일하게 벗어날 수 있는 길이라고 봐요.”

 

중앙일보의 H 기자는 언론의 감시 역할을 완전히 무시할 수는 없지만, 군부독재시절처럼 권력에 맞서 싸워야 하는 시대는 지나지 않았나민주주의에서 기자의 역할은 감시 기능을 넘어 팩트 체크를 해주는 전문가로서의 역할로 진화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H 기자는 독자들은 가짜뉴스 속에서 진실이 뭔지 궁금해 한다. 인터넷 정보만으로 확인이 불가능한 정보, 기자여야 접근 가능한 정보를 제공해야 한다고 했다.

 

국민일보 D 기자도 독자들이 똑똑하게 기사를 분석해서 보고 있는 상황이다. 정치의식이 그만큼 향상된 것이라며 기자들은 기사의 팩트 여부를 확인하는 데 있어서 보다 더 철저한 검증 과정을 거쳐야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경영진들도 신규 채용과 처우 개선을 통해 기자들이 맘 편히 일할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하고, 전문성 제고를 위해 분야별 교육에도 아낌없이 투자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진우 기자 jw85@journalist.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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