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 계약하지 말든가!” “오늘밤 너와 놀고 싶다.” “남자친구랑 이 밤에 뭐하고 있냐.” 비정규직 직원들에게 언론사 간부나 기자들이 실제로 쏟아낸 폭력이다. 동료의식은 실종됐고 갑질과 희롱만 남았다. 이들 비정규직은 자신을 ‘아무데나 쓰이고 버려지는’ 존재, ‘소모품’으로 비유한다.
지상파 3사의 정규직 직원은 MBC 1627명, KBS 4916명, SBS 981명. 기간제를 포함한 비정규직은 729명, 840명, 203명(고용노동부 2017년 공시 기준)이다. MBC 비정규직 비율이 가장 높다. 최승호 사장이 선임되자마자 ‘비정규직 상생’을 강조한 것도 이들 처우를 개선하고자 하는 의지가 반영됐다. 기자협회보는 지난 2일 MBC에서 파견직 보도국 AD로 2년간 일하고 최근 계약이 만료된 A씨에게 그간의 사정을 물었다.
수당 깎아서 최저임금 메우는 ‘꼼수’
“왜 수당이 깎여있죠? 최저임금 때문인가요?” A씨는 1년 전 재계약 과정에서 실망감을 감추지 못했다. 최저임금 인상으로 월 급여가 10만원 이상 오를 것으로 기대했지만, 막상 계약서를 보니 달라지지 않았다. 계약할 때 평일연장수당을 지정하는데, 근로시간을 임의로 줄여서 수당을 산정해 사실상 급여가 동결돼서다.
실제로 A씨와 동료 AD들의 계약서를 보면, 수당이 매해 삭감된 것으로 확인된다. 지난 2015년부터 2017년까지 월 기본급은 116만원→126만원→135만원으로 올랐지만, 평일연장수당은 22만원→13만원→9만원으로 떨어졌다. 기본급과 연장수당, 식대(10만원) 등을 다 합쳐도 160만원을 넘지 못하는 이유다. A씨는 “파견업체가 이를 두고 본사 인사부에 조정을 요구했지만, 인사부에서 ‘그럼 계약하지 말라’고 엄포를 내놨다고 들었다”고 고백했다.
이정원 태광노무법인 회장(노무사)은 “전년도대비 근로시간이 줄어들지 않았는데, 당사자에게 납득할 만한 설명 없이 연장근로수당을 삭감한 것은 근로조건 제약 가능성이 있는 만큼, 위법성 여부를 따져볼 필요가 있다”며 “근로자는 노동부에 의뢰해 사실관계를 조사, 위법사항이 있는지 확인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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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C는 올해부터 고용노동부의 지침에 따라 포괄임금제를 폐지, 평일연장수당과 식대를 시간 당 별도 지급하기로 했다. MBC 인사부 관계자는 “사장이 오고 곧바로 개편이 시작돼서 별도로 대대적인 의견 수렴을 하는 여력은 없었지만, 포괄임금제 축소와 같이 그동안 인사담당자들이 ‘이런 건 개선되면 좋겠다’는 의견이 모아져서 기준을 마련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AD들은 개선안에 대해 환영하면서도 수당 결재를 올릴 때 좀 더 자유로운 문화가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A씨는 “저녁 메인뉴스 시간을 넘겨 퇴근할 때도 잦은데 이걸 일일이 부장에 결재 올리는 건 부담스러운 분위기”라며 “실제로 주변 AD들에게 물어보니 평창올림픽 특보 때 외에는 결재를 올린 애들이 없었다”고 전했다. 그는 “식대도 출근일 기준 4000원씩 산정돼있는데 금액도 터무니없이 적을 뿐 아니라, 평일에 끼인 공휴일이나 주말에는 근무해도 지급받지 못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인사부에 따르면 식비 지급 기준이 ‘통상 근무일수’에 따라 지급되기 때문에, 통상 근무하는 근로자는 휴일 근무를 할 경우, 별도로 식대를 지급받을 수 없다.
성폭력에 노출된 약자들...‘행동강령’까지
성폭력도 끊임없이 제기되는 문제다. 1~2년마다 바뀌는 비정규직 신분인 만큼 사내 직원들이 더 쉽게 성추행을 일삼는다는 폭로다. AD들 사이에서는 성추행을 예방하기 위한 행동강령까지 공유되는 상황이다. 사내 보호망이 제대로 돼있지 않아 ‘스스로 지켜야 한다’는 방어의식이 굳건하게 자리한 것이다. A씨는 “윗사람에게 알려도 훈방조치 식으로 조용히 경고만 주고 넘어가는 경우가 많다”고 토로한다.
지난달 유명드라마를 연출한 MBC 드라마 PD B씨가 상습 성추행으로 물의를 일으킨 가운데, 보도국 소속 C기자도 성추행으로 징계를 앞두고 있다. C기자의 성폭력 논란은 타사 기자가 페이스북을 통해 폭로하면서 사내에 알려지게 됐다. AD들 또한 C기자의 성폭력이 상습적이었다고 폭로한다. A씨는 C기자에 대해 “퇴근 후 버스를 타고 집에 가는데 문자가 왔다. ‘(같이) 술 마시고 싶다’는 얘기를 계속 하더라. 비슷한 경험을 당한 AD들이 꽤 되는 것 같다”고 회상했다.
그는 “또 다른 보도국 D편집자의 경우에는 ‘남자친구랑 XX하고 있냐’ ‘저기 가서 앵커하고 싶으면 내 친구에게 잘 보여야 한다’는 등의 발언을 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덧붙였다. 내부 관계자에 따르면 현재 MBC는 C기자와 D편집자에 대해 감사를 착수하고 5일 인사위원회를 개최, 해고를 포함한 중징계를 내릴 것으로 보인다.
사전 통보 없이 부서를 바꾸는 것도 개선 과제다. 이들의 계약서에는 <갑의 사정으로 인해 인사이동이 필요시 명령에 의해 근무지를 변경할 수 있다. 이때 정당한 사유 없이 인사명령을 불복할 때에는 근무의사가 없는 것으로 보아 사직하는 것으로 처리한다>는 내용이 명시돼있다. A씨는 “대학생이거나 자기 업이 각자 있는 사람들인데 부서나 업무 시간을 미리 얘기도 안하고 바꿔버린다. 항의하면 ‘1년만 채우고 나가라’고 압박하고, 이것 때문에 울면서 부장에게 하소연하면 기자들도 모르쇠 분위기였다. 우리는 그들의 ‘동료’가 아닌 것”이라고 말했다.
“저희 업무는 잡일이 아니에요”
보도국 AD는 뉴스 제작 전반에 관여한다. 파견업체와 1년씩 계약을 하는 비정규직이지만 업무는 취재와 편집 등을 아우르며 기자 못지않은 역할을 해내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 과정에서 어느 기자는 편집을 떠넘기고 퇴근하기도 하고, 실수가 나오면 기자들의 면피 대상이 되기도 한다. 식사심부름과 청소 등과 같은 업무와 관련 없는 잡일도 AD들의 몫이다.
A씨는 “업무 중에도 차장님은 ‘메뉴가 왜 똑같냐’ ‘인스턴트 시키면 부장이 싫어한다’ ‘왜 비싼 거 시켰냐’고 혼낸다. 식사가 끝난 후에는 기자들이 ‘왜 이렇게 책상이 더럽냐’며 청소하라고 짜증내기도 일쑤”라며 “기자를 꿈꾸고 들어온 친구들이 실망하고 바로 나가는 이유”라고 호소했다.
“함부로 하는 말이든 성폭력이든, 그걸 너무 쉽게 할 수 있는 게 화가 나죠. 또 그런 말은 정규직, 혹은 남자들만이 할 수 있는 거잖아요. MBC만의 일이 아니라 언론사의 비정규직은 저와 같은 심정이라고 생각해요.” A씨는 다시 언론사에 돌아올 생각이 없다고 밝혔다.
이진우 기자 jw85@journalist.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