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극적인 발제, 거침없는 회의… KBS가 달라지고 있다

보도국장실 없애고 정상화위 준비… 걸음마 떼는 '양승동 체제'

“KBS 구성원 여러분! 새로운 KBS를 함께 그려주십시오.”


지난 9일 서울 여의도 KBS 본관 민주광장에서 열린 취임식에서 양승동 사장이 말했다. 양 사장은 “지난겨울 우리가 광화문에서 한 참회와 다짐은 한 마디로 ‘새로운 KBS를 만들겠다는 것’이었다”며 “새로운 KBS를 만들기 위해 취재·제작의 자율성 보장, 인적 쇄신을 하겠다”고 밝혔다.



양 사장의 공언대로 최근 KBS에는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구성원들의 신뢰를 받는 젊고 개혁적인 인사들이 발탁되고 화이트리스트, 세월호와 관련한 자기반성 리포트가 보도되고 있다. 새로 임명된 보도국장은 국장실까지 없애며 소통을 강조하고 있다. 구성원들은 “일단 대화가 많아졌다”며 “뉴스에서도 활기가 느껴진다”고 말했다.


양 사장은 지난 6일 본부장과 센터장 인사를 시작으로 보도본부 국·부장단, 앵커 등의 인사를 단행했다. 특징은 개혁적인 인사들이라는 점이다. 이명박 정권 시절 제작 자율성 투쟁에 앞장서 징계를 받았던 김덕재 PD가 제작본부장이 됐고 지역 발령 등 부당인사의 피해자인 국은주 PD가 라디오센터장이 됐다. 2012년, 2017년 파업 당시 언론노조 KBS본부의 파업뉴스팀에서 활약했던 김태선·엄경철 기자는 각각 통합뉴스룸국장(보도국장)과 취재주간이 됐다.


KBS 뉴스의 얼굴도 대폭 바뀌었다. 파업에 참여했던 기자, 아나운서를 중심으로 앵커진이 구성돼 16일부터 진행을 시작했다. 평일 ‘뉴스9’의 진행을 맡은 김철민 기자는 지난 13일 앵커 기자간담회에서 “과거 KBS 뉴스가 세월호 참사 때 대형 오보를 했고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 때도 대형 낙종을 해 보도 참사 수준으로 굴러 떨어졌다”며 “이번에도 만약 시청자 품으로 돌아가지 못한다면 역사에 큰 죄를 짓는 것이다. 초창기라 시행착오도 있고 좌충우돌하겠지만 뚜벅뚜벅 시청자만 보며 걸어가겠다”고 했다.



특히 KBS는 16일엔 세월호 참사 4주기를 맞아 ‘세월호 참사 희생자 정부 합동 영결 추도식’ 생중계 등 다양한 추모 특집 방송을 편성했다. 9명으로 구성된 세월호 특별취재팀도 9시 뉴스에서 세월호 블랙박스 영상을 세밀하게 분석한 리포트를 내보냈다. 그 이전인 11일엔 조대현 전 KBS 사장이 연임을 위해 박근혜 정부의 대표적 화이트리스트 영화 ‘인천상륙작전’에 30억 원을 투자했다는 내용을 방송하기도 했다.


이 같은 보도는 좀 더 나은 뉴스를 만들기 위한 구성원들의 책임감에서 나오고 있다. 송명훈 언론노조 KBS본부 공정방송추진위원회 보도 간사는 “그동안 KBS가 기계적 균형을 지키는 하나마나한 보도를 했다면 이제는 의제를 심층 취재하고 KBS만의 색채, 시각을 담기 위해 기자들이 강한 의지를 보이고 있다”며 “기자들이 상당히 능동적으로 아이템을 발제하고 있다. 1분20초 틀에 갇히지 않고 사실관계를 풍성하게 하기 위한 변화가 시작됐다고 본다”고 말했다.


소통도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 박종훈 KBS 기자협회장은 “당장 국부장단 회의부터 바뀌었다”며 “소통이 자연스럽게 이뤄진다. 아침회의부터 아이템에 대해 얼마든지 자기 견해를 이야기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새로 온 보도국장은 소통을 위해 국장실도 없앴다. 김태선 보도국장은 “예전에는 보도국 안에 휴게실이 따로 있어서 담배도 태우고 차도 마시며 의사소통을 했다. 그런데 사무실이 좁기도 하고 선후배간 갈등 같은 내부적 대립이 있어 10여 년 전부터 그런 공간이 사라졌다”며 “그래서 최근에 국장실을 없애고 남는 공간을 기자들의 휴게 공간으로 마련했다”고 말했다.


양 사장이 취임 약속으로 내건 국장 임면동의제, 편성위원회 정상화도 준비 단계에 들어섰다. 편성위의 경우 인사가 마무리되고 이르면 5월부터 한 달에 한 번 정례적으로 열릴 것으로 보인다. 국장 임면동의제도 노사 간 협의를 통해 현 국장부터 동의제를 실시할 것이라고 내부 구성원들은 보고 있다.


이사회 승인 전이지만 정상화위원회도 설립을 준비하고 있다. 정상화위는 내·외부 전문가로 구성돼 지난 9년간 KBS가 정상적인 공영방송으로서 역할을 못한 원인이 무엇인지 살펴보는 기구다. 복진선 정상화위 관계자는 “좋은 방송을 만들기 위해 과거 문제를 조명하고 분석할 예정”이라며 “재발방지를 위한 제도와 장치에 어떤 것이 있는지 살펴보고 적절한 제도를 만드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다.


강아영 기자 sbsm@journalist.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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