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13 지방선거 일주일 후인 지난 20일 경상남도 창원시 경남도청 정문. 잎이 누렇게 마른 나무 한 그루가 우두커니 서 있었다. 차광막 설치에 영양제까지 꽂혀있었지만 나무는 힘겨워 보였다. 아래 놓인 표지석엔 이렇게 쓰여 있었다. ‘채무 제로 기념식수 2016년 6월1일 경상남도지사 홍준표.’
이 나무는 홍준표 도정의 상징으로 꼽힌다. 홍 전 지사는 재임 시절 ‘채무 제로’ 달성을 기념해 이곳에 사과나무를 심었다. 사과나무는 금방 시들시들해졌고 그 자리에 다시 심은 나무도 6개월을 버티다 말라 죽었다. 지금 세 번째 나무마저도 고사할 위기에 처했다. 표지석 양옆에는 ‘홍준표 적폐나무 즉각 철거하라, 홍준표 염치제로 나무철거’라고 적힌 말뚝이 보였다. 전날 지역 시민단체가 “(홍 전 지사의) 채무 제로는 무상급식 중단, 진주의료원 폐쇄, 시군 보조금 등 각종 기금을 삭감해 만들었다”고 비판하며 박은 것이다. 창원을 찾은 날 경남도의회 기자실에서 만난 지역 언론 정치부 기자들은 “채무 제로 기념수를 없애라는 요구는 이번 지방선거에서 드러난 민심을 반영한다”고 입을 모았다.
◇중앙 언론은 드루킹 보도 열 올려… 지역선 드루킹 영향력 미미
6·13 지선에서 경남도지사 선거는 가장 뜨거운 관심을 받았다. 문재인 대통령의 복심으로 불리는 김경수 더불어민주당 후보가 선거를 앞두고 ‘드루킹’ 연루 의혹에 휩싸였다. 중앙 언론들은 선거 기간 내내 드루킹 보도에 열을 올렸다. 일부에선 이를 ‘드루킹 게이트’로 명명했고 김경수 후보뿐 아니라 청와대를 저격했다.
경남도지사 선거를 직접 취재한 지역 기자들 사이에선 중앙 언론의 과도한 보도행태에 비판도 나왔다. 차상호 경남신문 기자는 “한 중앙지에서 본지와 계열사 기자 3명이 창원에 내려와 취재했는데 쓰는 기사마다 제목이 드루킹이더라”며 “드루킹 얘기만 주구장창하고 프레임을 그쪽으로 몰아가니까 지역 기자들이 그만 좀 하라고 할 정도였다”고 꼬집었다. 이어 차 기자는 “드루킹 의혹 제기는 김경수 후보가 아니라 대통령이나 정부를 겨냥한, 정치적인 성격을 띤다고 본다”며 “또 여기서 일어난 게 아니고 우리가 직접 취재할 수도 없는 사안이어서 언론이나 지역에서나 관심 자체가 크지 않았다”고 말했다.
다른 기자들도 지역 표심에 드루킹 여파는 미미했다고 평가했다. 그보다 지역민들에겐 홍 전 지사와 한국당에 대한 배신감, 새로운 인물을 향한 열망이 컸다고 한다. 김두천 경남도민일보 기자는 “서울에서 볼 땐 드루킹이 특검수사까지 갈 정도로 큰 사건이지만, 지역에선 선거 결과에 영향을 미치리라 생각하지 않았고 실제로도 그랬다”며 “홍 전 지사는 재임 때나 한국당 대표로 있을 때나 도민 정서와 동떨어진 이야기를 남발했다. 보수정당에 실망한 도민들이 이번에는 바꿔보자고 민주당을 선택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선거 당일 개표 과정에서 김경수 후보와 김태호 한국당 후보는 엎치락뒤치락 초접전을 벌였다. 지역 민심을 고스란히 읽은 경남 기자들은 처음부터 김경수 후보의 당선을 예상했다. 다만 표차는 20%p까지 벌어졌던 여론조사보다 훨씬 적을 것이라는 데 의견이 모였다. 제32·33대 경남도지사를 지낸 김태호 후보의 개인적 역량과 탄탄한 지지기반을 간과할 수 없었다. 샤이보수의 존재도 무시 못 했다.
지상파3사 출구조사에선 김경수 56.8%, 김태호 40.1%로 격차가 16.7%p였다. 그러나 실제 결과에선 김경수 52.81%, 김태호 42.95%로 득표율 간격은 9.86%p로 좁아졌다. 오종우 KBS창원 기자는 “김태호 후보가 아니었다면 표차는 더 벌어졌을 것”이라며 “선거 기간 김 후보는 중앙당, 당 대표인 홍 전 지사와 거리를 두면서 스스로 바닥을 다지는 모습이었다. 김태호의 개인기로 격차를 줄였다”고 분석했다.
김순철 경남일보 취재부장은 “6:4 정도로 김경수 후보의 당선을 예측했는데 비슷한 결과가 나왔다”며 “다만 기초단체장, 기초의회 선거 결과를 보면 인물이나 정책에 대한 평가 없이 여당바람에 휩쓸려 묻지마 투표를 한 경향도 보인다. 이번 지선을 취재한 기자로서 아쉬운 부분”이라고 말했다.
◇민주당, 30년 만에 처음 다수당… “지역 언론 보도도 변화할 것”
이번 지선은 경남 정치판을 뒤흔들었다. 그간 경남도의회에서 과반은커녕 교섭단체조차 구성하지 못했던 민주당은 이번 선거로 다수당이 됐다. 도의회 58개 의석 가운데 민주당이 34석, 한국당 21석, 무소속 2석, 정의당 1석씩 차지했다. 4년 전 지선에서 50석 중 47석을 가져갔던 한국당(당시 새누리당)은 이제 제2당으로 추락했다.
경남 기자들은 김경수 도지사 당선과는 달리 전혀 예상 못 한 결과라고 했다. 30년 가까이 보수당 독점 체제를 취재해온 이들도 처음 맞닥뜨리는 정치환경이다. 차상호 기자는 “도의회도 그렇고 민주당이 경남 시장·군수 18명 중 7석이나 가져갈 줄은 예측 못 했다”면서도 “자세히 들여다보면 파란 점퍼에 빨간 내의 입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 이들이 화합해 민주당으로서 한목소리를 낼 수 있느냐가 관건”이라고 했다.
기자들은 정치지형 지각변동과 함께 지역 언론 보도도 변화할 것으로 내다봤다. 차상호 기자는 “제가 속한 경남신문은 보수에 가까운 언론이라 주요 독자가 보수당 지지자였다”며 “선거 결과를 보면 독자들이 (민주당으로) 돌아섰다. 균형감 있는 견제·비판에 더욱 신경 써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서윤식 MBC경남 기자는 취재 영역의 확장을 기대했다. 서 기자는 “보수당이 지배해왔던 시기에 도정을 비판한 이들은 민주당과 정의당 같은 소수자였다”며 “권력 비판이 임무인 언론 입장에선 이들에게 마이크를 쥐어줄 때가 많다 보니 한쪽으로 치우친다는 오해를 받기도 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이번 지선 이후 견제와 균형이 갖춰진 정치지형에선 그런 오해를 받지 않아도 될 것 같다”며 “예전보다 취재 범위가 더욱 넓어질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어 김두천 기자는 “민주당의 집권과 한국당의 견제, 전혀 겪어보지 못한 정치환경에서 어떻게 보도할지 고민해야 할 것 같다”며 “특히 김경수 도지사 당선인의 경우 청와대 경험도 있고 참모진의 역량도 뛰어나다. 기자들도 비판을 위한 비판이 아니라 공부를 많이 하고 나서 제대로 비판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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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원·울산 다른 기반… 기자협회 분리 주장도
한국기자협회 경남·울산협회엔 13개 언론사가 소속돼 있다. 경남도청 소재지인 창원에 기반을 둔 경남도민일보, 경남신문, 경남CBS, 뉴시스경남, 연합뉴스경남, KBS창원, MBC경남 등 7곳과 진주에 본사를 둔 경남일보, 울산광역시에 자리한 경상일보, 울산매일신문, 울산신문, 울산MBC, KBS울산 등 5곳이다.
하나의 지역 협회로 묶여 있지만 경남과 울산 기자들 사이엔 동질감보다 이질감이 더 크다. 울산이 1997년 광역시로 승격돼 경남에서 분리된 이후 기자들 간 교류가 줄어들었고 취재 환경도 달라졌다. 현재 경남도청에 출입하는 울산 기자가 없고, 울산시청에 출입하는 경남 기자도 없다. 이 때문에 지역에선 기자협회를 경남과 울산으로 나눠야 한다는 주장이 오래전부터 나오고 있다.
김지혁 울산신문 기자는 “울산엔 경남과는 다른 독립적인 언론 문화가 형성돼 있다. 경남과 울산 기자들끼리 교류도, 같은 출입처도, 지역의 공감대도 없어서 기자협회를 분리해야 한다는 이야기가 꾸준히 나온다”며 “다만 기자협회 차원에서 보면 울산 기자 전체가 120명밖에 안 돼서 당장 따로 나오기엔 무리가 있다”고 설명했다.
이에 대해 정성인 경남울산기자협회장(경남도민일보)도 “협회장이 됐을 때부터 경남-울산 분리를 추진했는데 울산 기자 수가 적어 현실적으로 어려웠다”며 “지금처럼 공식적인 협회 회의 외에 교류가 전혀 없는 상황이 이어진다면 언젠가 두 개 협회로 나뉘게 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밝혔다.
김달아 기자 bliss@journalist.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