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속 사소한 제보… 그것이 한 데 모여 거대한 퍼즐로 완성된다

결정적 제보, 결정적 순간

‘취재는 한 통의 제보에서 출발했다.’ ‘제보가 없었다면 시작조차 못 했다.’ ‘용기를 내준 제보자에게 감사드린다.’ 한국기자협회가 수여하는 ‘이달의 기자상’ 수상 후기에 자주 등장하는 구절이다. 좋은 기사와 제보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다. 기자들이 꿈꾸는, 사회를 뒤흔드는 기사는 사실 작은 제보에서 시작할 때가 많다.


지난 4월 <조현민 대한항공 전무 물컵 갑질>을 처음 보도한 김희래 매일경제 기자도 제보의 위력을 실감했다. 광고회사에 다니는 지인들에게 들은 한 마디가 시작이었다. 기사의 사회적 파장은 생각보다 컸다. 조씨 일가의 갑질을 폭로하는 제보와 보도가 쏟아졌다. 밀수·탈세 의혹이 불거졌고 대한항공 자회사 진에어의 사업면허 취소 위기까지 번졌다.


김 기자는 “작은 이야기라도 큰 파급력을 가질 수 있다는 걸 직접 경험했다”며 “생생한 현실을 담은 제보는 기자가 취재하며 맞닥뜨리는 벽을 뛰어넘게 해주는 것 같다. 이번 일을 계기로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한 마디라도 더, 잘 듣겠다고 다짐했다”고 말했다.


일러스트=송준영 기자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오는 제보
제보는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온다. 예멘 난민들이 제주도에 입국했다는 사실을 최초 보도한 좌동철 제주신보 기자에게도 그랬다. 종종 술잔을 기울이는 중학교 동창이 지난 4월 말 뜬금없이 연락해왔다. 제주공항에서 오래 근무해온 친구였다. “요즘 예멘이라는 나라에서 80명씩 들어온다는데.” 예멘? 생소한 국가였다. 분명 심상찮은 일이라는 촉이 왔다. 전화를 끊자마자 제주 출입국사무소에 접촉했다. 평소 친분을 쌓아둔 내부 관계자에게 ‘예멘 출신 난민들이 대규모로 제주에 들어오고 있다’는 구체적 정황을 들을 수 있었다. 후속 보도는 예멘인 120명이 함께 거주하는 호텔 르포기사였다.


좌 기자의 보도로 처음 알려진 예멘 난민 사태는 제주지역뿐 아니라 한국사회의 뜨거운 감자로 떠올랐다. 좌 기자는 “제보 하나의 여파가 이렇게 클 줄 몰랐다. 동창이긴 하지만 저에게 먼저 연락해준 제보자에게 고맙다”며 “난민 문제가 중요한 쟁점이 된 만큼 끝까지 지켜보고 보도하겠다”고 밝혔다.


지난해 12월 <이대목동병원 신생아 사망사고>를 가장 빨리 전한 전다빈 JTBC 기자는 저녁 당직 중 회사로 걸려온 제보전화를 받고 곧장 병원으로 향했다. 현장에 도착하자 경비원이 취재진을 막아섰다. 유족의 도움을 받아 가까스로 들어갔지만 함께 왔던 카메라 기자는 결국 내부까지 동행하지 못했다. 전 기자는 휴대폰을 꺼내 들었다. 현장이 사라지기 전에 최대한 많은 증거를 확보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오열하는 유족들, 바리케이드 쳐진 중환자실, 아기들이 있던 자리, 부모들의 증언, 현장 의료진의 발언 등이 그의 전화기에 생생히 담겼다.


취재를 바탕으로 <80분 사이…이대목동병원서 신생아 4명 숨져> 리포트를 단독 보도했다. 전 기자는 “마침 제가 당직할 때 제보가 온 것뿐”이라고 설명했다. 여기에 기자의 빠른 판단도 작용했다. 전 기자는 “같이 당직했던 선배가 빨리 현장에 가봐야 할 것 같다고 하셨고 역시 그 판단이 옳았다”며 “취재를 마칠 때쯤 다른 방송사 취재진이 병원 출입문을 촬영했다고 들었다. 그쪽에도 제보가 갔을 수 있다”고 말했다.

◇‘제보는 자산’… 외면할 뻔한 다시 살펴보니 

기자들은 결정적인 제보가 오길 기대한다. 회사 제보시스템이나 메일로 늘 제보를 접하지만 ‘얘기가 되는’ 사건은 찾기 힘들다. 이런 일이 반복되다 보니 제보가 들어와도 슬쩍 보고는 흘려 넘길 때가 많다. 그러나 쌓여 있는 제보 속에 진주가 숨어있을지도 모른다. <음이온 침대서 라돈 검출>을 연속 보도했던 강청완 SBS 기자는 외면할 뻔했던 사건을 취재·보도하며 ‘제보는 자산’이란 생각을 굳혔다. 


그는 지난 2016년 <한양대병원 간호사 채용 비리>를 단독으로 보도했다. 신입 간호사 채용 과정에서 병원측이 벌인 부정행위를 고발한다는 A씨의 제보였다. 처음엔 시큰둥했지만 혹시 몰라 관련 자료를 살펴보니 얘기가 될 것 같았다. 강 기자는 취재에 나섰고 A씨의 제보는 사실로 밝혀졌다. 이듬해 법원은 병원장 등 관계자들에게 벌금형을 선고했다. *


강 기자는 “제보가 몰릴 때는 채무자가 된 것 같은 기분도 들었다”며 “지나고 보니 그런 제보에서도 좋은 뉴스가 나올 수 있다는 확신이 생겼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똑같은 제보가 들어와도 어떻게 취재하고 보도하느냐는 기자의 역량에 따라 달라진다”며 “사건팀 시절 롤모델로 삼았던 한 선배의 카톡 소개글이 ‘사소한 제보가 세상을 움직인다’였다. 기자에겐 그 말이 진리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제보, 신뢰를 바탕으로… 작은 제보에도 필요한 예의
제보는 좋은 기사를 만들고 좋은 기사는 또 제보를 부른다. 이 선순환은 기자, 언론사가 사회적 신뢰를 쌓아가는 과정이다. 지난 1월 <뇌성마비 오진 세가와병>을 단독 보도했던 배준수 경북일보 기자는 제보를 통해 자신이 신뢰를 얻고 있다는 걸 확인했다. 그의 기사는 뇌성마비 오진으로 10여년을 누워 지낸 한 환자의 기적 같은 사연을 그렸다. 뒤늦게 세가와병(도파 반응성 근육긴장 이상) 판명을 받은 환자는 도파민 복용 2시간 만에 두 발로 우뚝 일어섰다. 첫 보도 이후 제보가 뒤따랐고 같은 사례의 후속 기사도 이어졌다.


대구 법조담당인 배 기자는 지역 법조계 인사의 제보로 사연을 처음 접했다. 그는 “제보자가 ‘지역 법조계에서 배 기자가 제일 열심히 취재하더라. 당신이라면 가장 정확히 보도할 것 같았다’고 말해줬다”며 “기자로서 뿌듯했다. 그동안 하나의 사안이라도 끝까지 취재해왔던 고집이 이번 제보의 밑바탕이 된 것 같다”고 했다.


기자들이 기다리는 결정적 제보의 핵심은 결국 신뢰다. 제보자가 기자와 언론사를 얼마나 믿느냐다. 최순실 게이트 국면에서 한겨레 특별취재반이 가장 중요한 취재원으로 꼽았던 정현식 전 K스포츠재단 사무총장 가족은 한겨레 기자들에게 관련 자료를 모두 넘겼다. 취재에 결정적이었다.


아들 의겸씨는 지난해 8월 기자협회보와의 인터뷰에서 “(제보는) 처음부터 한겨레를 염두에 뒀다. 언론 보도를 지켜봤는데 한겨레가 고군분투하며 계속 끌고 가더라”며 “한겨레는 정부에서 꼬투리 잡으려고 해도 계속 싸울 수 있고 흔들리지 않겠구나 생각했다”고 밝혔다.


당시 가족을 직접 만난 류이근 한겨레 기자는 “제보가 없었다면 대한민국 헌정사에서 대통령의 탄핵 소추와 헌법재판소의 탄핵 결정은 일어나지 않았다”며 “이것이 바로 제보가 가진 힘이자 기자들이 느끼는 제보의 중요성”이라고 말했다.


류 기자는 일상에서 접하는 제보에도 최소한의 예의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작은 제보라도 제보자를 직접 만나고 확인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기자에게 제보는 중요하지만 그렇다고 특별하지도 않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류 기자는 “제보를 받고 걸러내고 취재를 통해 확인하고 보도하는 과정은 우리가 일상적으로 하는 일”이라며 “제보를 하나의 취재로 대한다면 쉽게 흘려버리는 지금보단 조금 더 진지하게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달아 기자 bliss@journalist.or.kr



*2018년 8월17일 보도된 기사 원문에는 '대학병원 간호사 채용 비리 사건을 제보한 A씨가 여러 기자에게 수차례 이메일을 보냈고, A씨는 기자들 사이에서 악성 제보자로 불렸다'는 내용이 실렸습니다. 하지만 기사에 언급된 A씨는 2020년 5월 기자협회보에 '제보 당시 여러 기자에게 이메일을 보낸 적이 없고, 이 때문에 기자들 사이에서 악성 제보자라는 말이 돌았다는 것을 이해할 수 없다'는 입장을 전해왔습니다. 당시 이 기사를 작성한 기자협회보 기자는 다른 기자들의 제보 경험담을 듣고 이를 기사화하는 과정에서 실제 A씨가 여러 기자에게 이메일을 보냈는지 확인하지 못했고, 의도치 않게 A씨를 '악성 제보자'로 표현했습니다. "해당 기사는 허위 사실을 기초로 개인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A씨의 지적을 무겁게 받아들이며, 2020년 6월8일 문제의 표현을 기사 원문에서 삭제·수정했습니다. 사실 관계가 명확하지 않은 내용을 기사화한 점 사과드립니다. 


맨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