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뉴스, 기사에 '여성차별적 성별 표기' 안하기로

노조 "타 매체에도 긍정적 영향 있길...모니터링 강화할 것"

연합뉴스가 여성 차별적인 방식의 기사 표기 관행을 개선하고 나섰다. 인물정보를 표기할 때 남성은 괄호 속에 나이만 쓰고, 여성은 나이와 함께 ‘여’라고 병기해 온 그간의 방식을 지난 16일부터 고치도록 한 것.

 

연합뉴스 편집국은 지난 16일 “최근 사회인식의 변화 등에 맞춰 기사 내 성별 표기 방식을 일부 개선하기로 했다”며 위 내용을 골자로 한 개선안을 “오늘부터 시행한다”고 밝혔다. 개선안은 “기사 작성 시 성별 표기가 없어도 독자가 내용을 이해하는데 지장이 없으면 남녀를 모두 표기하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맥락상 성별이 필요할 경우에는 남녀 모두를 표기한다. 남성 또는 여성만 있는 기사에서도 필요 시 성별표시를 쓸 수 있다”는 내용 등을 담고 있다.

 

지난 2016년 4월 서울지하철 2호선 강남역 10번 출구를 찾은 시민이 ‘강남역 살인사건’ 피해자 여성을 추모하고 있다. (뉴시스)

실제 아래에 예시된 사례를 살펴보면 기사 내 표기 변화를 구체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

 

“부산 영도경찰서는 교제 중인 여성에게 흉기를 휘두른 A(49) 씨에 대해 살인미수 혐의로 구속영장을 신청했다고 11일 밝혔다. 경찰에 따르면 A 씨는 지난 10일 오후 10시 10분께 부산 영도구에 있는 한 주점에서 수개월 전부터 교제해오던 B(60·여) 씨를 미리 준비한 흉기로 3차례 찌른 혐의를 받는다…”

연합뉴스 지난 11일자 <왜 다른 남자랑 술 마셔?…교제 여성 흉기로 찔러> 기사 중 일부

 

“…22일 경기북부지방경찰청에 따르면 이날 오전 0시 10분께 경기도 동두천시의 한 도로에서 미8군 소속 A(20·여) 이병과 미2사단 소속 B(19·여) 일병이 걸어가다가 A 이병이 C(58·남)씨의 오토바이를 넘어뜨리고 지나갔다…”

연합뉴스 22일자 <행인 폭행한 미군 여성 병사, 출동한 경찰관도 폭행> 기사 중 일부

 

개선안 시행 전 나온 상단 기사에선 여성인 경우에만 ‘B(60‧여)’처럼 성별이 표시됐지만 시행 후 출고된 하단 기사에선 남성의 경우에도 ‘C(58‧남)’처럼 성별이 적혔다. 기존 관례대로라면 하단 기사 내 관련 성별표기는 ‘A(20‧여)’, ‘B(19‧여)’, ‘C(58)’이 된다. 상단 기사에서 확인되듯, 여성의 경우 ‘여’로 적히지만 남성인 경우 ‘기재되지 않는 방식’이 기본이었던 이 같은 점이 개선됐다.

 

연합뉴스 편집국은 지금까지의 관례적인 표기방식과 관련해 “여성차별적일 뿐만 아니라 ‘남성이 표준’이라는 잘못된 고정관념을 강화하는 것이란 지적이 타당한 것으로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연합의 이 같은 대응은 ‘젠더 이슈’와 관련해 여성단체 등 외부에서 최근 몇 년 새 언론에 지속적으로 개선을 요구해 온 지점에 대한 조응이란 점에서 고무적이다. 지난 2016년 5월 말 기자협회보 보도(<클릭에 눈먼 언론, 여성 비하 언어 '00녀' 양산>)에도 이 같은 목소리(아래 해당 부분 발췌)가 담긴 바 있다. 연합의 경우 노동조합 내 보도감시기구인 공정보도위원회에서 처음으로 문제제기 돼 노사편집위원회, 편집국 내 의견수렴, 노사협의 등을 거쳐 이번 개선안 시행에 들어갔다.

 

“…이 같은 상황에서 언론 보도가 관행처럼 사용해 온 아주 사소한 보도 관행부터 바꿔야한다는 의견이 제기된다. 사건기사 등에서 남성과 여성을 달리 표기하는 데 대한 지적이다. 현재 연합뉴스, 뉴시스, 뉴스1 등 3개 통신사와 조선, 중앙, 동아, 경향, 한겨레, 한국, 국민, 세계, 서울, 문화 등 10개 주요 일간지들은 모두 사건기사 등에서 남성은 ‘A(34)’, 여성은 ‘B(여·24)’ 등으로 여성의 경우에만 성별 표기를 하고 있다.

 

남성은 ‘둘 이상의 성 중 하나’가 아니라 성을 구분하는 기준이 되고, 여성은 보편적인 성이 아닌 특별한 존재가 되는 시각이 반영된 결과다. 지면제작의 효율성을 위해 관행처럼 이뤄져 온 가이드라인일 수 있지만 사회적으로 해악이 크다고 한다면 모두 없애거나, 모두 기입하는 식으로 바꿀 필요가 있다는 제언이다…”

 

더불어 이번 개정안에는 성별표기 방식과 함께 성소수자 등에 대한 정체성 존중을 강조한 내용도 포함됐다. 개선안은 “성전환자가 기사에 포함돼 있을 경우 당사자의 성 정체성을 존중해주는 방향으로 기술한다”고 명시했다.

 

연합뉴스 노조 관계자는 “뉴스 영향력이 큰 국가기간통신사에서 양성평등 사회구현 측면에서 의미 있는 조치를 한 것으로 평가한다. 타 매체에도 긍정적인 영향이 있길 기대한다”면서도 “지침이 내려가긴 했지만 시행착오가 있을 수 있다 본다. 정착할 때까지 모니터링 활동 등을 강화할 생각”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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