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시민단체, 방송법 개정안 각론 놓고 동상이몽

국회, 내년 2월 임시국회때까지 처리 합의
박홍근안 주축으로 추혜선·이재정안 더해 논의할 듯

김고은 기자 | 2018.12.12 14:22:45

국회가 공영방송 지배구조 개선을 위한 방송법 개정 논의에 착수하면서 오랜 시간 공전을 거듭해온 방송법 개정이 20대 국회에서 마침내 종지부를 찍을지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정보통신방송법안심사소위원회(제2법안소위)는 내년 2월 임시국회 때까지 방송법 개정안을 처리하는 데 지난 3일 합의했다. 방송법 개정안 심사만을 위해 별도의 의사일정을 잡기로 하고, 필요하면 공청회도 열기로 했다. 방송법 개정안 논의는 지난달 5일 대통령이 참석한 여·야·정 국정상설협의체에서도 합의한 사안인 만큼 더는 변죽만 울리지 않겠다는 계산이다.


그러나 ‘조속한 논의’에 대해서만 공감대를 이뤘을 뿐, 각론에 대해서는 여야와 시민사회의 온도차가 큰 편이고 주무 부처인 방송통신위원회조차 정부안을 아직 확정하지 못한 상태여서 기한 내 합의안을 도출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현재 제2법안소위에 상정된 공영방송 지배구조 개선 관련 방송관계법 개정안은 총 18건이다. 이 중 박홍근 의원 법안을 중심에 놓고 추혜선 의원 법안과 이재정 의원 법안을 가미하는 방식으로 소위에서 논의가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 강효상 자유한국당 의원이 지난해 11월 대표 발의한 법안은 여야 간사 협의로 이번 논의에서 빠졌다. 한국당은 공영방송 이사 추천을 정치권이 아닌 제3의 단체에 맡기는 강효상 의원 법안 대신 야당이 강력한 견제력을 발휘할 수 있는 일명 ‘박홍근안’을 지지하고 있다.


2016년 7월 발의된 박홍근안은 △KBS·방문진·EBS 이사 정원을 13명으로 늘리고 △여당이 7명, 야당이 6명을 추천하며 △15명 이내로 사장추천위원회를 구성해 △사장의 임면제청 시 재적이사 3분의2 이상의 찬성으로 의결하는 특별다수제를 도입하는 것을 골자로 하고 있다. 발의 당시만 해도 ‘김재철 방지법’, ‘언론장악 방지법’으로 불리며 당시 야당이었던 민주당 등은 물론 언론·시민단체로부터 압도적인 지지를 받았으나 ‘촛불혁명’을 거쳐 정권이 바뀐 뒤 분위기가 반전됐다. 당시 박홍근안을 ‘야당·노조의 언론장악법’이라고 비판했던 한국당은 뒤늦게 “원안대로 처리”를 고집하고 있고, 민주당은 한 발 물러서 국민 참여 보장을 고민 중이다.


박홍근안의 최대 쟁점 중 하나는 정당의 공영방송 이사 추천권 법제화다. 현행 방송법은 “각 분야의 대표성을 고려하여 방송통신위원회에서 추천하고 대통령이 임명한다”고만 규정하고 있지만, 사실상 여야가 배후에서 ‘관행’이란 이름 아래 위법적으로 이사 선임에 개입해왔다. 결국 박홍근안은 공영방송의 정치적 독립성을 보장하는 게 아니라 정치권의 개입을 제도화하고 7대4, 6대3 구도에서 야당의 몫을 늘려 7대6으로 정치적 ‘균형’만 맞췄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에 대한 대안으로 나온 것이 지난해 11월 발의된 ‘추혜선안’이다. 추혜선안은 이사 추천 과정에서 정치권을 완전히 배제하는 게 핵심이다. 방통위가 지역·성별·연령을 고려해 200명의 이사추천국민위원회를 구성하고 공개 면접을 통해 다득표 순으로 공영방송 이사를 선임하는 방식이다. 이사 선임 과정부터 국민 참여와 투명성을 보장한다는 측면에서는 시민사회의 의견과 근접하지만 200명의 이사추천위원회를 구성하고 운영하는 현실적인 문제 등이 거론된다.


지난 4월 발의된 ‘이재정안’은 일종의 절충안이다. 현행 방식대로 이사를 추천하되 KBS 이사를 11명에서 9명으로 줄이고, 방송사 구성원 및 학계에서 추천한 인사를 3명 이상이 되도록 구성해 ‘중립지대’를 두는 방식이다. 대신 사장 선임 시에는 국민의 대표성을 고려해 100명 이상의 홀수 위원회로 사장추천위원회를 구성하고, 사추위의 사장 후보 추천안을 이사회가 별도의 의결 절차 없이 승인한 것으로 간주한다. 이사회보다 사장 선임 과정에서 국민 참여를 강조하고 이사회의 권한을 축소한 것이 특징이다.


이재정안은 이미 지난해 MBC와 올해 두 차례 진행된 KBS 사장 선임 과정에서 유사한 형태로 구현되기도 했다. MBC는 사장 후보자 면접과 정책설명회를 공개로 진행했고, KBS는 공론화 방식으로 시민자문단의 평가를 40% 반영해 비교적 좋은 평가를 받았다. 언론·시민단체들이 시민 참여 보장 제도화를 요구하는 것도 일련의 변화와 무관치 않다. “촛불혁명을 거치면서 공영방송을 국민들에게 돌려주자는 것은 이제 시대적 요구가 되었다”는 것이다.



241개 언론·시민사회단체가 참여한 방송독립시민행동은 지난 5일 제출한 의견서에서 정치권의 개입을 법률에 제도화하는 박홍근안에 대해 단호히 반대의 뜻을 밝혔다. 이들은 “정치권 등 외부 개입을 금지하도록 법률에 명시하고, 위반할 경우 방송법 제4조처럼 처벌 규정을 둬 규제의 실효성을 확보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이사회 구성 시 종사자 대표의 참여와 성평등, 지역대표성, 다양성 보장을 의무화 하고, 사장 선임 시에는 시민 의견 40%, 종사자 의견 30%, 이사회 의견 30%를 의결에 반영하도록 법률에 명시해 시민과 종사자 참여를 보장할 것을 요구했다.


공영방송 지배구조 개선 논의를 공영방송 이사와 사장 선임 방식에서 보다 확장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언론개혁시민연대는 지난 3일 논평을 통해 “시민의 참여는 이사나 사장 선임 절차에 선별적으로 참가하는 일회성 방식에 그쳐서는 안 되며 공영방송의 운영과 프로그램 평가에 상시적으로 참여하는 방식으로 확장돼야 한다”며 “시청자위원회 제도를 논의 대상에 반드시 포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5일에는 “누가 사장이 되더라도 상시적으로 시민/사회의 통제를 받는 민주적 거버넌스를 형성해야 한다”면서 “시청자위원회가 명실상부하게 시민을 대표하여 공영방송을 감독하는 주체로 거듭나게 해야 하며, 시민/사회의 의사를 실질적으로 대의하는 역할을 수행토록 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를 위해 KBS 시청자위원회를 위상과 역할이 강화된 시청자평의회로 전환하고, 노사가 동수로 참여하는 편성위원회에서 평의원을 추천하는 방식 등을 제안했다.


박홍근안과 이재정안에도 노사 동수로 구성된 편성위원회에서 시청자위원회 위원을 추천하는 조항이 담겨 있다. 그러나 한국당은 노사 동수 편성위에 반대하며 해당 조항을 뺀 채로 박홍근안 처리를 주장하고 있어 편성위 문제가 방송법 개정 과정에서 중요한 쟁점이 될 전망이다.


김고은 기자 nowar@journalist.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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