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년 호적수 부산일보·국제신문… 마, 이정도면 친구 아이가

[지역언론 리포트] (9)·끝 : 부산 / 지역신문 단 2곳… 부산일보·국제신문 양대산맥

‘부산엔 왜 지역신문이 2곳밖에 없을까.’ 지역언론에 몸담고 있거나 관심 있는 기자라면 한 번쯤은 궁금했을 것이다. 지난 6일 부산에서 만난 최현진 국제신문 경제부장(기자협회 지회장)은 “다른 지역 기자들을 만나면 항상 듣는 질문”이라며 “부산 기자들도 저마다 생각이 다를 것”이라고 말했다.


부산 지역일간지 시장은 부산일보, 국제신문 투톱 체제다. 지난 2016~2017년 잇따라 창간 70주년을 맞은 부산일보(1946년)와 국제신문(1947년)은 지역을 대표하는 신문으로 자리 잡은 지 오래다. 전두환 신군부 시절이던 1980년 부산일보로 통합됐다가 1989년 국제신문이 복간한 이후 지금과 같은 지형을 유지하고 있다.


왼쪽부터 부산일보 안준영 기자(2014년 입사), 윤여진 기자(2003년 입사), 김은영 논설위원(1989년 입사), 박세익 기자(2000년 입사). /사진=김경현 기자

두 신문사의 규모는 지역일간지 가운데 가장 크다. 기자 수로 보면 부산일보는 120여명, 국제신문은 100여명이다. 발행부수(2017년분)도 부산일보는 14만3084만부, 국제신문은 11만5789부다. 전국 지역지 중 각각 1위, 3위다. 최현진 국제신문 부장은 “10만 부 넘게 발행하는 두 신문사를 따라잡으려면 신생 신문사에 얼마나 많은 자본과 시간이 필요하겠느냐”면서 “엄청난 자본을 가진 대기업이 밀어주지 않는 이상 쉽지 않았을 것”이라고 했다.


1980년대 후반 항도일보(이후 부산매일신문)가 창간하면서 3대 일간지 시대를 맞은 적도 있었다. 그러나 부산매일신문은 1998년 IMF 금융위기로 자금난에 시달리다 문을 닫았다. 1989년 부산일보에 입사한 김은영 논설위원은 “이만한 도시 규모(인구 350만)라면 신문사가 3개 정도는 있어야 지역사회를 위한 선의의 경쟁을 할 수 있었을 것”이라며 “물론 2곳으로도 선순환해왔지만 만약 두 언론사의 언로가 막혀버리면 방법이 없지 않나. 개인적으로 아쉽다”고 말했다.


윤여진 부산일보 기자는 두 신문사가 양강 체제로 자리 잡은 이유로 부산의 시대적 상황을 언급했다. 윤 기자는 “한국전쟁 이후 부산은 복구하느라 바빴고 또 일본을 통해 새 문물을 접했고 산업화에 앞장서는, 뒤돌아볼 수 없는 도시였다”며 “이런 과정이 동시다발적으로 이뤄지다 보니 지역민들이 특정 아젠다를 깊게 들여다보거나 신문에 관심 가질 기회가 적었던 것 같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신문에 관심 없던 분위기가 시간이 흘러 오히려 언론사 난립을 방지하고 두 신문사의 권위를 높여준 건 아닐까”라며 “기자들은 그 권위를 쥐고 지역사회를 위해 기사를 쓰고 있다”고 했다.


부산 사람 특유의 기질도 또 하나의 이유로 꼽혔다. ‘우리가 남이가’라는 말에 담긴 기질이 긍정적으로 때론 부정적으로 영향을 미쳤다는 것이다. 안준영 부산일보 기자는 “부산 사람들은 ‘부산’이라는 두 글자에 뭉치는 게 있다”며 “그런 보이지 않는 유대관계들이 카르텔을 더 단단하게 만든 측면도 있다”고 했다.


박세익 부산일보 기자(기자협회 지회장)는 “복잡한 것 싫어하고 한두 군데 꽂히면 그 길만 보는 부산 사람들의 성격이 지역신문에도 적용된 것 같다”며 “정치적 측면에서 보면 과거 보수정당이 오래 집권하기도 했고, 워낙 영향력이 큰 두 신문사가 공고하다 보니 작은 신문사가 살아남기에는 어려운 환경이었다”고 설명했다.


왼쪽부터 국제신문 박호걸 기자(2013년 입사), 김양우 사우회장(1970년 입사), 최현진 경제부장(1999년 입사)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사진=서정빈 기자

기자들은 오랜 시간 사실상 독점적 지위를 누려왔지만 그만큼 자부심도 크다고 말했다. 좋은 기사로 지역사회의 변화를 이끌어야 한다는 책임감도 있다. 기자상 수상목록에 이름이 자주 오르는 이유다. 최근 3년 간 한국기자상 지역기획보도부문에 두 신문사의 작품이 연속으로 선정됐다.


박세익 기자는 “선배들이 쌓아온 노하우가 후배들에게 전해져 좋은 기사를 쓸 수 있는 기반이 됐다”며 “그 전통을 계속 전수하면서 후배들을 키우는 것이 저와 같은 기자(18년차)의 역할”이라고 말했다.


6년차인 박호걸 국제신문 기자는 “존경받는 선배들이 많아서 일을 계속 배우고 싶은 마음이 크다”며 “후배 입장에선 아직 선배들을 따라가기 어렵지만 종이신문을 넘어 디지털용 장기기획물이나 고퀄리티 콘텐츠를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선배들의 노하우와 전통이 켜켜이 쌓이고, 이를 후배들이 본받을 수 있는 환경은 인력 유출이 적기 때문에 유지할 수 있다. 종종 서울 언론사로 이직하는 경우는 있지만 지역언론 내 이동은 거의 없다. 현역 기자가 공공기관이나 기업 공보실로 자리를 옮기거나 얇은 월급봉투를 토로하며 퇴사·전직하는 일도 드물다. 실제 이들의 임금은 전국 일간지 기자와 비교해도 적지 않다. 김은영 논설위원은 "퇴직한 선배가 공공기관으로 가는 건 봤지만 현장을 뛰던 기자가 바로 간 경우는 못봤다"고 했다. 최현진 부장도 "금융위기 당시 구조조정은 했어도 최근 10년 간 자발적으로 이탈한 기자는 거의 없었다"고 말했다.


1970년 입사해 통폐합, 복간까지 모두 경험한 김양우 국제신문 사우회장은 두 신문사 후배들에게 “중앙지와 경쟁하라”고 조언했다. 김 회장은 “과거 청와대나 국회 출입 기자단에선 국제신문, 부산일보는 지방지라고 생각 안 했다. 기자실도 중앙지와 함께 썼을 정도”라며 “환경이 바뀌면서 지역언론 위상이 떨어졌고 형편없는 지방지들이 많이 생겨났다. 두 신문사는 그런 취급을 받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했다.


이어 김 회장은 “지역신문의 특성을 살려 우리만 할 수 있는 특종, 기획으로 중앙지들을 따라오게 할 수 있다”면서 “지방지가 전국지를 경쟁자로 생각해야 역설적으로 지방지가 산다”고 말했다.  

김달아 기자 bliss@journalist.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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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통·비리 리더십 떠났지만… 정상화와 공정보도 목소리 여전
‘배우자 공천 논란’ 부산일보 사장 곧 퇴진… ‘엘시티 비리’ 전 국제신문 사장 구속


최근 2년 사이 국제신문과 부산일보는 각각 사장 퇴진운동을 벌였다. 해운대 엘시티 비리에 연루된 차승민 전 국제신문 사장은 구속됐고, 배우자의 지방선거 출마로 논란이 됐던 안병길 부산일보 사장은 이달 중 물러난다. 두 신문사 전‧현직 사장은 불명예 퇴진하면서 부산 언론사(史)에 오명을 남기게 됐다. 사장 퇴진을 이끈 기자들에겐 이 같은 역사를 되풀이해선 안 된다는 과제가 남았다.


앞서 차승민 전 국제신문 사장은 재임시절 엘시티 시행사 임원에게 광고비 명목으로 5100만원을 강제로 받아내고, 엘시티 명의 카드로 100여만원을 사용한 혐의(공갈 및 횡령)로 지난해 3월 기소됐다. 국제신문 구성원은 그해 3월부터 강도 높은 사장 퇴진운동을 벌였다. 당시 현직에 있던 차 사장은 지난해 12월 징역 2년을 선고받고 법정 구속됐다.


차 전 사장이 구속된 이후 송문석 사장에 이어 지난 10월 박무성 사장이 취임했지난 지난 6일 찾은 국제신문은 아직도 뒤숭숭한 분위기였다. 노조는 대주주이자 발행인인 능인선원 주지 지광스님의 책임론을 제기하고 있다. 김동하 전국언론노조 국제신문지부장은 “2006년 국제신문을 인수한 능인선원은 차승민을 고용해 회사를 망가뜨려놓고 정상화하려는 의지조차 없다”며 “은행에 빚을 져 급여를 충당할 만큼 어려운 상황인데 사주로서 해결책 하나 제시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노조는 지난달 지광스님을 향해 증자 등 자금 조달 계획을 내놓지 못하면 사주 교체 운동에 돌입하겠다고 선언했다.


부산일보에선 지난 5월 안병길 사장의 배우자가 6·13지방선거에 자유한국당 시의원 후보로 출마하면서 논란이 불거졌다. 구성원들은 보도공정성 훼손과 편집권 침해를 우려하며 사장 퇴진운동에 나섰다. 지난 10월2일 파업안이 가결되면서 노조위원장은 단식농성을 시작했다. 일주일 뒤 안 사장이 자진퇴사 의사를 밝히면서 사태가 마무리됐다. 안 사장은 이달 열릴 정기 주총 이전에 사퇴할 예정이다.


전대식 전국언론노조 부산일보지부장은 “2015년 안 사장 취임 이후 안일한 수익이기주의에 매몰돼 편집권의 위상은 떨어지고 있었다. 노조나 기자들도 ‘그나마 우리는 낫다’는 식으로 침묵해왔는데, 배우자 출마건으로 ‘이건 아니지 않나’는 생각이 터져 나온 것”이라며 “1988년 부산일보 노조의 파업은 정치·자본으로부터의 독립이었지만 30년이 흐른 지금, 내부의 무기력감과 싸워 새로운 가치와 정신을 만들어야 할 때”라고 말했다. 


김달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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