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자에게 배운 '몸값'의 의미

[스페셜리스트 | 문화] 박돈규 조선일보 주말뉴스부 차장

박돈규 조선일보 주말뉴스부 차장. 기자 초년 시절, 부장에게 꾸지람 듣고 뿌루퉁해 있을 때면 선배들이 말했다. 욕먹는 것도 월급에 포함되어 있다고. 납득하기 어려운 지시를 받거나 불편한 식사 자리에 불려갈 때도 비슷한 이야기를 들었다. 일의 기쁨과 슬픔 사이에 있는 부산물이겠거니 참고 넘겼다.


며칠 전 술자리에서 이영자의 일화를 듣고 몸값이 뭘 뜻하는지 새삼 깨달았다. 한때 다이어트 광고 논란(지방흡입 수술을 받은 것으로 밝혀져 사과)으로 방송을 접었던 이 코미디언은 지금 제2의 전성기를 누리고 있다. 연말에 KBS와 MBC에서 여성 최초로 연예대상 2관왕에 올랐다.


10여년 전 그녀가 지상파에서 밀려난 뒤 뮤지컬 ‘메노포즈(Menopause)’에 출연할 때의 목격담이다. 폐경기 여성을 괴롭히는 질병들을 유쾌하게 조롱한 이 공연에서 이영자는 건망증이 심한 전업주부를 맡았는데, 당시 제작사가 메이크업 등 운영비를 깎자 여배우들의 불평이 하늘을 찔렀단다. 이영자만 예외였다. 그녀는 동료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계약서에 서명했잖아. 몸값이 뭘 의미하는 줄 아니? 약속했으면 할 수 있는 최대치를 보여주어야 그게 네 몸값이 되는 거야.”


이영자는 적당히 일하지 않았다. 기대한 것 이상을 쏟아냈고, ‘좀 더 줄 걸 그랬다’며 제작자를 겸연쩍게 만들었고, 다시 함께 일하고 싶어지는 직업인이었다. 공연계 관계자는 “지방에 가서 스탠딩으로 3000명을 웃길 수 있는 코미디언은 사실상 그녀가 유일하다”고 했다.


이영자는 1980년대 말 밤무대 MC로 유명했다. 중년의 아저씨가 주정을 부리면 “어이 동생, 누나 진행하잖아!”라고 카리스마 있게 질렀고, 그가 노려보면 “우리 동생 동안이다”로 넘어갔다고 한다. 방송에 데뷔한 1990년대부터 에이스로 활약했다. 밑바닥까지 추락한 적이 있지만 불평하거나 책임을 전가하거나 현실을 부정했다면 ‘영자의 전성시대’는 다시 오지 않았을 것이다.


‘전지적 참견 시점’으로 MBC 연예대상을 받은 이영자는 음식에 대해선 성격이 급하고 참견하기 좋아한다. 그녀가 찍은 휴게소 음식은 판매가 급등하고 ‘이영자 맛집’이 검색어에 오른다. 무뚝뚝하지만 그림자처럼 지켜주는 매니저(송성호 팀장)와의 ‘케미’도 볼거리다.


밥벌이는 누구에게나 고단하다. 하지만 일을 대하는 태도에 따라 가치가 달라질 수 있다. ‘몸값의 지엄한 의미’를 배운 날, 유튜브에서 이영자의 수상 소감을 찾아보았다. 송 팀장을 와락 안아준 뒤 마이크를 잡은 최고의 예능인은 자신을 낮추며 또 한 번 최대치를 들려주었다.


“인생은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구나. 저를 보면서 희망을 가졌으면 좋겠습니다. 팀장님께 물어봤습니다. 매니저의 목표가 무엇이냐고. 자기가 케어하는 연기자가 상을 탈 때 보람을 느낀다고 합니다. 오늘 그 목표가 이루어진 것 같아요. 송성호 팀장님은 내 최고의 매니저입니다!”

맨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