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사회가 '낙태죄 폐지'를 조명하는 방식

[언론 다시보기] 이진송 계간홀로 편집장

이진송 계간홀로 편집장. 지난달 30일, 팟캐스트 <말하는 몸> 녹음에 참여했다. 록산 게이의 ‘헝거’에서 원하는 부분을 낭독하고 자신의 몸에 대한 경험을 나누는 작업이었다. “우리 사회는 여성이 자신의 몸을 가부장제가 승인한 방식으로만 사용하도록 강요하고, 그렇지 않을 경우 단죄한다”는 취지의 이야기도 했다. 가임기 여성이 결혼해서 출산하지 않거나, 스스로 임신을 중단하고자 하는 경우 말이다. 전자가 인구절벽 문제의 주범으로 지목 당하고 비난 받는다면 후자는 명료하게 법적인 처벌을 받는다. 그날은 낙태죄 폐지 촉구 집회가 열렸고, 잇따른 영유아 유기 소식이 들려온 주의 토요일이기도 했다.


내가 다녔던 미션 스쿨에서는 중학생들을 어두운 강당에 몰아넣고 낙태 비디오를 틀어주었다. 부도덕하고 무책임한 여성과 불쌍한 아기라는 대립 구도에서 학생들이 누구에 이입하고 누구를 혐오하게 될지는 너무나 뻔했다. 원치 않는 임신을 둘러싼 무수한 맥락이나 남성의 책임은 사라진다. 한국 사회는 열심히 낙태를 타자화하고, 낙태 경험이 있거나 낙태하려는 여성들을 괴물로 낙인 찍는다. 누구나 겪을 수 있음에도 일부 ‘그런 여자’들에게만 일어나는 일처럼 시침을 뗐다. 화장실에서 빨간 줄이 뜬 임신 테스터기가 발견되고 어떤 여학생들은 울면서 돈을 빌리러 다니는데 학교에서는 순결 사탕이나 나눠주고 순결 서약식 따위를 했다.


어디서도 원치 않는 임신을 중단할 수 있는 것이 여성의 권리라고 알려주지 않았다. 인구정책의 일환으로 실컷 낙태를 이용했던 국가가, 가족 계획과 무관하게 낙태하려는 여성은 처벌하는 모순에 대해서 입을 다물었다. 유산유도제 같은 낙태 관련 정보와 기회를 차단했다. 낙태하려다 갑자기 모성이 샘솟아 아기를 지키는 여성은 매체 불문 자주 재현되었으나, 결혼 제도 바깥의 출산과 육아는 멸시의 대상이어야만 했다. 낙태죄가 폐지되면 여성들이 무분별하게 낙태를 할 거라는 헛소리가 공중파를 탔다. 절대로 원치 않는 임신을 할 리 없는 몸들이 발언권을 가진 결과였다.  


법무부는 1월, 영아 살해에 일반 살인과 같은 수준으로 처벌하는 방안을 추진하겠다고 밝힌 적 있다. 낙태죄 폐지 없는 처벌 강화는 여성들을 더욱 극단적인 상황으로 몰아갈 뿐이다. 2018년 2월에는 ‘임산부 지원확대와 비밀 출산에 관한 특별법안’(비밀출산법)이 대표발의되었으나 계류 중이다. 여성의 출산 사실을 비밀로 할 수 있고, 출산시 국가와 지자체가 지원하도록 한다는 내용이다. 그러나 이 역시 낙태죄 폐지 없이는 반쪽짜리에 불과하다. 비밀을 보장받으며 낳기를 원하거나, 그 전에 임신을 안전하게 중단하기를 원하거나, 비밀 보장 없이 낳아서 차별 없이 기르기를 원하거나, 어떤 여성이든 자신이 원하는 갈래의 선택을 할 수 있어야 하고, 시스템과 인식은 적절한 방식으로 바뀌어야 한다.   


4월11일, 헌법재판소의 낙태죄 위헌청구소송 판결을 앞두고 있다. 원치 않는 임신을 구실로 여성의 몸을 착취하고 통제하는 폭력을 이제는 정말 끝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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