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 감시·고발도 서울 위주… 보도 사각지대 놓인 '기초의회'

기초단체 전국 226개지만, 지방의회 기능 비판보단 가십 활용하는 경향
지역 언론은 '안 하거나 못하고', 중앙 언론은 '관행적으로' 외면

지난 1월 안동MBC의 ‘예천군의회 해외연수 추태’ 보도가 이달의 기자상 취재보도부문 수상작으로 선정됐다. 인구 5만여 명에 불과한 경북 지역 작은 군의회의 문제를 전국적인 이슈로 끌어올리고 제도 개선까지 이끌어낸 결과였다. 지난 2월에는 충북 지역 국회의원들의 정책연구용역비 사용 실태를 분석한 MBC충북 보도가 기자상의 영예를 안았다. 두 보도는 “열악한 지역 언론의 취재환경”을 극복하고 “지역 언론의 사명을 충실히 이행했다”는 점을 높이 평가받았다.


권력을 감시하고 고발하는 것이 언론의 숙명이라지만, 그 대상을 지역으로 한정하면 고개를 갸웃할 수밖에 없다. 지방자치는 20년 넘게 중앙정치에 예속돼 있고, 언론의 정치 보도 역시 중앙(여의도)을 향한다. 지역 권력에 대한 언론의 감시도 뒷전으로 밀리기 일쑤다.


특히 지방자치의 한 축을 이루는 ‘작은 국회’인 지방의회에 대한 언론의 관심은 상대적으로 낮고, 기초의회는 더 그렇다. 전국에는 226개 기초단체(시·군·구)와 의회가 있다. 언론은 4년에 한 번 지방선거를 치를 때마다 기초단체와 의회가 ‘풀뿌리 민주주의’의 근간이라며 유권자들의 무관심을 꾸짖고 관심과 참여를 호소하지만, 평소 언론의 무관심도 그에 못지않다.


경북 예천군이장연합회 회원들이 지난 1월19일 예천군의회 청사 앞에서 ‘외유 추태’로 논란을 빚고 있는 의원들의 전원사퇴를 촉구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예천군의회 사태는 지방 기초의회 문제가 전국적인 이슈로 주목을 받은 이례적인 사례다. /뉴시스

앞서 언급한 안동MBC의 예천군의회 보도는 이례적인 경우다. 기초의회에 대한 고발 보도로 언론이 주목을 받은 사례는 극히 드물다. 1990년 9월부터 실시된 이달의 기자상 수상작 중에서도 기초의회나 의원의 비리 등을 다룬 보도는 지금껏 단 4편에 불과했다. 광역의회로 범위를 넓혀도 전체 7편에 그쳤다.


보도가 적은 이유는 간단하다. 중요도가 낮기 때문이다. 지역과 중앙을 막론하고 기초의회를 일상적으로 취재하는 경우는 사실상 없다고 해도 무방하다. 예천군의회 사건처럼 지방의회 의원들의 해외연수 문제나 폭행 사건이 발생하지 않는 한 기초의회는 늘 뒷전이다. 경북 지역 일간지 A 기자는 “지방의회 기사를 후순위로 두는 게 습관화 됐다고 보면 된다”면서 “게다가 지방의회에 관한 기사도 지방의회의 고유 기능이 정상적으로 작동하는지 집중적으로 해부하는 내용보다는 자극적인 기사가 주를 이룬다. 지방의회에 대해 비판과 반성의 기회를 제공하는 게 아니라 가십거리 소재로 지방의회를 활용하는 경향이 있다”고 지적했다.


중앙 언론 역시 마찬가지다. 서울에도 25개의 기초의회가 있지만, 보도 양은 극히 적고, 그나마 보도되는 기사는 의원들이 몸싸움에 휘말렸다는 소식이나, 동정 중심의 보도다. 종합일간지 B 기자는 “기본적으로 기초의회에는 관심을 두지 않고 있다”면서 “경험에 의한 것일 수도 있고 선입견일 수도 있지만 기초단체 의원들은 상대적으로 역량이 떨어진다는 생각을 하는 것 같다. 소위 ‘얘기되는’ 취재원이나 출입처도 아니고 다른 기사 거리가 많다 보니 시간 낭비하지 말자는 인식이 있다”고 말했다.


우선순위에서 밀리다 보니 인적·물적 투자가 안 되고, 그래서 보도가 더 되지 않는다. 보도를 하더라도 지방의회에서 제공하는 홍보자료나 시민단체에서 내는 분석 자료 등에 의존해서 단순 전달식 기사를 쓰는 경우가 많다. 충청 지역 방송사 C 기자는 “당장 오늘 처리해야 하는 기사가 있는데 기초의회까지 챙길 시간이나 인력은 보장이 안 돼 엄두를 못 낸다”면서 “그러다보니 관심도 상대적으로 덜 갖게 되고 악순환이 반복된다”고 말했다.


보다 현실적인 이유도 있다. 지방의회는 조례 제정 외에 예산을 확정하고 결산을 승인하는 역할 등을 한다. 다시 말해 각 지자체에서 언론사에 사업이나 광고 등으로 집행하는 예산을 삭감하거나 증액할 수 있는 권한을 갖고 있다는 의미다. 그러다 보니 지역 언론이 지방의회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고, 그런 경향성은 지자체에 대한 의존도가 높은 지역 신문에서 더 뚜렷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실제 예천군의회 사건을 보도한 안동MBC 취재팀은 지역 모 신문사로부터 ‘예천군의회와 박종철 의원으로부터 예산 지원 등의 도움을 많이 받았으니 취재하지 말아 달라’는 요청을 받기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역 언론은 보도를 안 하거나 못하고, 중앙 언론은 “관행적으로” 외면한다. 지방의회는 각 지자체를 견제하는 기능을 하는데, 그런 지방의회가 뚜렷한 감시자 없이 사각지대에 놓여 있는 셈이다. 그러다 보니 문제가 곪을 대로 곪은 뒤에야 터진다. 포털 사이트의 관련 기사에는 ‘이럴 바엔 기초의회 없애라’ 같은 댓글들이 달린다. 한 현직 국회의원은 “지방의회는 자정 기능이 없고 언론사의 취재 시스템에는 사각지대가 있다 보니 부정부패가 발생해도 손을 쓸 수가 없다”면서 “지방자치라는 명분 때문에 국회는 물론이고 광역단체나 행정안전부에서도 좀처럼 나서기 힘들다. 사각지대를 방치하는 무기력 상태가 지속되면 기초의회가 무너져 내리고 말 것”이라고 말했다.


김재영 충남대 언론정보학과 교수는 “기초의회나 지방자치 무용론은 안 좋은 현실을 구조적으로 악화시킬 것”이라며 명확히 선을 그었다. 그러면서 김 교수는 “기초든 광역이든 지자체가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는 것은 지역에서 공론장이 만들어지지 못한 탓이 크다”며 “언론이 시민들의 의견을 수렴하고 공론장의 기능을 하면서 지방정부나 기초의회의 의사결정 과정에 반영되도록 하고 피드백을 줘야 한다. 이렇게 언론이 제 기능만 해도 감시하고 견제하는 세력이 있다는 생각에 지방정부나 의회가 좀 더 주민 자치에 충실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김고은 기자 nowar@journalist.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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