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원에 전화도 안 한 기자, 사태 키운 수뇌부, '시정' 운운한 수석

KBS '시사기획 창' 사태, 핵심 쟁점들 되짚어보니


KBS 〈시사기획 창〉 방송과 재방송 취소를 둘러싼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KBS가 지난 8일 “어떤 압력도 없었다”고 공식 입장을 밝혔음에도 외압 의혹은 사그라지지 않고 있고, ‘외압 운운하기에 앞서 방송 자체에 문제가 없는지 돌아봐야 한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지금까지 밝혀진 내용 등을 토대로 이번 사태의 전말과 핵심 쟁점을 짚어봤다.

◇쟁점1. “허위보도” VS. “부실취재”
〈시사기획 창〉은 KBS 중견 기자들이 만드는 시사 다큐멘터리다. 지난달 18일 방송된 ‘태양광 사업 복마전’편은 정부가 추진하는 태양광 발전 사업의 각종 비리 의혹 등 난맥상을 다뤘다. 그중 한 사례가 저수지 태양광 사업이다. 청와대가 수상 태양광 사업 TF를 꾸려 최혁진 사회적경제비서관 주재로 몇 차례 회의를 열었는데, 저수지 수면의 몇 퍼센트를 태양광 패널로 덮을지를 결정하는 과정에서 대통령의 의중이 크게 작용했다는 것이었다. 취재진은 “당초 환경 등을 고려한 면적은 10% 이하였다. 그런데 대통령이 좋아했다는 전언에 어이없는 결정이 내려진다”고 했다. 이 ‘전언’을 전한 최규성 전 농어촌공사 사장은 인터뷰에서 “차관이 처음에 30%를 합의해 주다가 풀어버리더라고. 왜냐하면 대통령께서 60% 한 데를 보고 박수를 쳤거든. 그러니까 차관이 ‘저기 사장님 30%도 이제 없애버립시다’라고 그래요”라고 말했다.


방송은 그 ‘차관’이 어느 부처의 누구인지 밝히지 않았다. 당연히 반론이나 해명은 없었다. 최 전 사장의 인터뷰 내용을 뒷받침해줄 다른 증언도 등장하지 않았다. 최 전 사장의 ‘일방적 전언’을 검증 없이 내보낸 것이다. 특히 방송은 패널 설치 면적 제한이 10%로 복원됐다는 팩트도 담지 않았다. 방송만 보면 대통령이 박수 쳐서 저수지 태양광 발전 규정이 지금도 완전히 없어진 것으로 읽힌다.


〈시사기획 창〉의 진행자인 홍사훈 시사제작국장이 지난 4일 사내 게시판에 올린 경위 보고를 보면 취재기자는 해당 차관에게 전화조차 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방송에서 원희룡 제주지사를 만나기 위해 제주도까지 찾아간 것과 비교된다. 윤도한 국민소통수석에 따르면 고민정 청와대 대변인에게 두 차례에 걸쳐 취재 요청 문자메시지를 보낸 것으로 확인되나, 방송에 청와대 입장은 담기지 않았다.


지금 단계에서 청와대 주장대로 ‘허위보도’라고 단정할 근거는 없다. KBS가 밝힌 것처럼 “사실 관계에 대한 다툼”의 여지도 있을 수 있다. 하지만 교차검증 등 확인 취재와 데스킹에 소홀했다는 점은 부인하기 힘들어 보인다. ‘노영민 대통령 비서실장이 쓰던 사무실’을 언급한 부분 역시 마찬가지다. 이런 이유로 KBS 내부에서조차 “결함이 많은 방송”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KBS에 따르면 이미 사전심의에서도 ‘청와대와 관련된 일부 내용에서 연관 관계 등 맥락 설명이 충분치 않고 추가 확인이 필요해 보인다’는 지적이 제기됐고, 방송 이후에도 비슷한 지적이 있었다. 보도본부장은 방송 뒤 시사제작국장을 불러 “프로그램 곳곳에 비약이 있었고 잘 이해할 수 없는 부분도 많았다. 비판 대상자에 대한 반론도 없더라”며 “그런 부분은 게이트키핑을 잘했어야 하는 거 아닌가”라고 지적한 것으로 알려졌다.


◇쟁점2. 재방송 취소 결정 과정 적절했나
허술했던 게이트키핑은 방송이 나간 뒤에야 엄격하게 이뤄졌다. KBS가 낸 공식 입장과 홍사훈 국장의 글을 종합하면, 보도본부장은 방송 심의에서 지적된 내용과 청와대에서 허위라고 주장하는 부분에 대해 “사실 관계를 보다 깊이 있게 확인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 22일로 예정된 재방송을 보류하고 제작진이 준비한 입장문 발표도 미뤘다. 홍사훈 국장은 “〈시사기획 창〉 부장과 팀장에겐 본부장의 결정사항이다, 사실관계 확인에 주력하라 지시했다”고 했지만, 그 과정에서 충분한 소통이 이뤄지지 않았음은 사흘 뒤 나온 제작진의 성명서만 봐도 알 수 있다. 제작진은 지난달 24일 사내 게시판에 연명 성명서를 올려 “청와대가 허위보도라고 반발하기만 하면 재방송도 결방시키는 것이 KBS가 추구하는 언론관인지 묻고 싶다”고 비판했다.


제작진의 성명서를 시작으로 2노조인 KBS노동조합이 “보도 외압 망령이 되살아났다”며 연이어 성명을 내고 이를 보수언론과 정치권에서 받아 확대재생산 하면서 ‘외압’ 논란이 점화됐다. KBS가 지난 8일 “외압은커녕 어떤 연락도 직접 받은 바 없다”고 해명했지만, 이미 오해와 불신의 골은 깊어진 상태다. 재방송 불방 자체보다 그 결정 과정에 대한 보도본부 수뇌부의 책임론이 제기되는 이유다.


윤도한 청와대 국민소통수석. /뉴시스

◇쟁점3. 윤도한 수석의 발언은 외압인가 아닌가
이번 사태에서 청와대의 부적절한 대응이 ‘외압’ 논란을 초래했다는 지적도 잇따르고 있다. 윤도한 국민소통수석은 지난달 21일 백브리핑을 통해 “KBS 보도에 대해 즉각 시정조치를 요구했으나 사흘이 지나도록 아무런 답변이 없다”고 말했다. KBS 누구에게 어떤 경로로 ‘시정조치’를 요구했는지는 밝히지 않았다. 그리고 다음날 예정됐던 재방송이 취소되면서 ‘외압’ 의혹이 불거졌다. 논란이 커지자 윤 수석은 지난달 26일 브리핑에서 “정상적인 절차를 거쳐서 정정 보도를 요구했다”고 말했다. 윤 수석은 그 ‘절차’에 대해 역시 함구했지만, KBS에 따르면 국민소통수석실 관계자들이 KBS 청와대 출입기자에게 “해당 프로그램의 일부 내용이 잘못됐다, 정정보도를 신청할 것”이라는 취지의 언급을 한 것이 전부였다고 한다. 보도에 대한 반론이나 정정을 요청할 때 먼저 출입기자를 통하는 것이 윤 수석이 말한 대로 “관례”이긴 하지만, ‘정상적인 절차’라는 데는 이견이 있을 수 있고, 그것이 ‘공식적’이라고 보기는 더더욱 힘들다. 청와대는 논란이 커질 대로 커진 뒤에야 대통령 비서실장 명의로 KBS에 공문을 보내 정정·반론 보도를 청구했다.


외압의 실체를 떠나 ‘시정조치’ 운운한 윤 수석의 발언은 ‘KBS가 청와대에 휘둘린다’는 인상을 줬다. KBS 기자협회는 지난 5일 성명에서 “공영방송의 독립성을 심각히 훼손하는 발언”이라고 비판했다. 전국언론노조 KBS본부도 “언론중재위원회를 통한 반론권 청구나 공식 서한을 통한 항의 등 제작진이 외압이라고 느끼지 않을 항의 방식이 있다”고 지적했다. 자유한국당과 보수 성향 시민단체, 소수노조인 KBS공영노동조합은 윤 수석이 KBS 보도에 개입함으로써 방송편성의 자유와 독립을 보장한 방송법 제4조 등을 위반했다며 검찰에 고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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