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은 바꿀 수 있습니다’…故 이용마 기자 시민사회장 엄수

고인 마지막 길 500여명 배웅

최승영 기자 | 2019.08.23 18:31:54

“이용마 기자는 몸 안에 암을 가지고 같이 떠나갔습니다...(중략)...세상에 있는 암들도 사실 같이 함께 (떠나)가야 합니다(만) 암은 없앨 수 없을 수 있어요. 하지만 그게 더 크지 않게 면역력을 잘 길렀으면 좋겠습니다.”


고 이용마 MBC 기자의 배우자 김수영씨는 23일 오전 서울 상암동 MBC사옥 앞 광장에서 진행된 고인의 영결식 ‘세상은 바꿀 수 있습니다’ 자리에서 유족을 대표해 이 같이 말했다. 민주공화국에서 언론의 기능, 면역체계로서 언론의 역할. 고인의 마지막 뜻이 그렇게 광장을 울렸다.


고 이용마 MBC기자의 영결식 '세상은 바꿀 수 있습니다' 시민사회장이 23일 서울 상암 MBC 앞 광장에서 열렸다. (언론노조 MBC본부)

김씨는 “걱정하실까봐 먼저 말씀드린다”며 “착하게 자다가 편하게 가셨다”는 얘기로 이 기자에 대한 말문을 열었다. 그는 “결혼한 다음부턴 제가 아마 (이용마 기자) 최고의 팬이었을 것”이라며 “이용마 기자는 죽음에 대해서도 자기가 먼저 공부하고 엄청나게 잘 정제된 단어들로 저를 잘 가르쳐줬고, 저는 잘 배웠다. 잘 준비하고 기다렸지만 그래도 마지막은 쉽지 않았다”는 말도 했다. 김씨는 가장 가까이서 오래 이 기자를 지켜본 이로서, 고인의 유지를 분명히 전하기 위해 애썼다.


“어제(22일) 입관식을 했습니다...(중략)...그런데 혼자 있는 게 아니어서 깜짝 놀랐습니다. 배가 산처럼 올라와서...(중략)...암덩이도 같이 깨끗한 수의에 쌓여 함께...(중략)...떠나갔습니다. 암덩이가 처음 발견됐을 때...(중략)...더 자라지 못하도록 잘 다스리자고 준비했습니다...(중략)...너무 늦게 발견해 면역체계가 이겨내지 못한 거 같습니다...(중략)...세상에는 이겨내기 어려운 암들이 많을 겁니다...(중략)...그게 이용마 기자가 남기고 간 메시지일 거 같습니다.”


이용마 기자는 지난 21일 오전 6시44분 향년 50세의 나이로 별세했다. 김씨의 남편이자 두 초등학생 아이의 아빠이기도 했던 그는 2011년 언론노조 MBC본부 홍보국장으로 공영방송 정상화를 위한 투쟁에 앞장섰다가 2012년 3월 해고됐다. 해직 기간 복막암 판정을 받고 투병을 하면서도 공영방송 정상화를 위해 계속 목소리를 내왔다. 해직 5년 9개월만인 2017년 12월8일 복직했고, 사흘 후 마지막으로 출근했다.


마지막 출근일 이 기자는 자기 자신에 대한 바람이자 MBC 구성원들에게 남기는 당부의 말을 남긴 바 있다. “기득권을 가진 권력자는 소수고요. 억울함을 호소하는 사람은 다수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소수에 대한 감시도 좋지만, 다수를 배려하고 그들의 목소리를 반영해서 억울한 사람들이 나오지 않는 사회...다시 복직을 한다면 나는 그 부분에 좀 더 힘을 써서 따뜻한 뉴스를 많이 만들고 싶다 그 생각을 참 많이 했어요.”


고 이용마 MBC기자의 영결식 '세상은 바꿀 수 있습니다' 시민사회장이 23일 서울 상암 MBC 앞 광장에서 열렸다. 사진은 영결식에 앞서 유족이 이 기자의 영정사진을 들고 보도국을 방문한 모습.(언론노조 MBC본부)

이날 참언론인, 이용마 기자의 마지막 가는 길을 500여명이 배웅했다. MBC구성원은 물론 타 언론사 기자, 각계 관계자, 일반 시민 등 시민장례위원이 되길 자처한 이들이 자리했다. ‘강지웅, 박성제, 정영하, 최승호’ 등 함께 고난의 시기를 보낸 해직 언론인들도 동료를 참석했다. 워싱턴특파원인 박성호 기자는 먼길을 달려와 동지의 마지막 길을 함께 했다. 


오전 8시3분께, 운구차량이 상암 MBC 앞 광장에 도착했다. 이용마 기자의 영정을 든 가족들은 고인이 그토록 꿈꾸었던 장소, 사옥 내 보도국을 함께 둘러보며 고인의 마지막 미련을 달래주려 했다. 오전 9시, 최승호 MBC사장과 오정훈 전국언론노동조합 위원장의 분향으로 영결식이 시작됐다. 참석자 중 일부는 조사 등을 통해 이날 영결식의 테마이자 고인의 마지막 책 제목이기도 한 ‘세상은 바꿀 수 있습니다’란 메시지를 잊지 않고 실천하겠노라 다짐했다.


고 이용마 MBC기자의 영결식 '세상은 바꿀 수 있습니다' 시민사회장이 23일 서울 상암 MBC 앞 광장에서 열렸다. 사진은 김중배 전 MBC 사장이 비나리(여는 말씀)를 통해 애통한 마음을 전하는 모습. (언론노조 MBC본부)

김중배 전 MBC사장은 비나리(여는 말씀)를 통해 애통한 마음을 전했다. 김 전 사장은 “독립언론, 독립방송. 그 길을 열기 위한 이른 바 ‘이용마법’은 비록 먼지 끼어간다지만 여전히 살아나야 할 불씨로 남아있다. ‘세상은 바꿀 수 있습니다’는 ‘세상은 바뀌어가고 있습니다’를 거쳐 마침내 ‘이제 세상은 바뀌었습니다’로 말할 수 있는 길로 나아가야 한다”며 “ 때문에 나는 당신의 영혼을 가슴에 묻지 않기로 했다. 오히려 그대의 영혼을 가슴에 심겠다. 그 씨앗을 살려 내 온 천지에 날려보낼 것”이라고 말했다.


최승호 사장은 기자로서, 또 언론노동자로서 이 기자와 겪은 일을 전하며 고인의 뜻을 되새기고 MBC가 나아갈 길을 다짐했다. 최 사장은 2012년 ‘170일 파업’ 당시 이용마 노조 홍보국장이 만든 슬로건 “다시 국민의 품으로 돌아가겠습니다”를 거론, “그는 맹렬한 운동가였고 지략가였다. 공영방송 MBC 주인은 국민이다. 권력과 자본 눈치를 보지 말고 우린 주인인 국민의 눈치만 보자. 다시 국민의 사랑을 받는 MBC를 만들자. 이 슬로건 하나로 우리는 오랜 시간을 시민들과 손잡고 싸울 수 있었다”고 했다.


아울러 2016년 영화 ‘공범자들’ 제작 당시 “우리가 싸우는 의미는 뭐지”라는 질문을 해 답을 들었던 경험도 전했다. 이 같은 질문에 이 기자는 “‘우리 싸움의 의미요? 저는 기록만으로도 의미가 있다고 봐요. 적어도 이런 암흑의 시기에 침묵하지 않았다. 그것만으로도 의미가 있다고 봐요”라고 답했다.


고 이용마 MBC기자의 영결식 '세상은 바꿀 수 있습니다' 시민사회장이 23일 서울 상암 MBC 앞 광장에서 열렸다. 최승호 MBC사장은 두 번째로 조사를 했다. (언론노조 MBC본부)

최 사장은 이에 대해 “이용마의 열정에 대한 시민들의 감동과 호응, 그것이야 말로 우리가 MBC를 되찾게 된 가장 큰 동력이었을 것”이라며 “함께 해직돼 4년 동안 MBC를 되찾겠다고 싸워온 터였다. 병을 얻었고, 야윈 얼굴로 시골 요양원에 앉아있었다. 싸움을 선택하지 않았다면 늦둥이 아이들에게 오랫동안 살가운 아빠로 살 수 있었을지 모르는데...그는 아이들에게 유언처럼 남길 책을 쓰고 있었다”고 회상했다.


최 사장은 공영방송 MBC를 다잡는 계기로서 이용마 기자를 말하기도 했다. 그는 “가끔 문병을 간 제게 이용마 기자는 아쉬움을 내비치기도 했다. 그러면 저는 ‘그러니까 자네가 빨리 나아서 직접 해봐’라고 투정을 부리기도 했다...‘MBC뉴스 이용마입니다’라는 그의 목소리가 방송될 때 시민들이 다시 MBC가 돌아왔구나 느끼지 않을까 꿈을 꾸곤 했다”면서 “우리는 남아 세상은 바꿀 수 있다는 그의 뜻을 받아들었다...용마씨 우리가 더 열심히 할게. 자네의 뜻 ‘세상은 바꿀 수 있다’는 뜻을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노력할게. 자네는 이제 근심걱정 놓고 부디 편히 쉬게나”라고 말했다.

고 이용마 MBC기자의 영결식 '세상은 바꿀 수 있습니다' 시민사회장이 23일 서울 상암 MBC 앞 광장에서 열렸다. 오정훈 언론노조 위원장이 조사를 하는 모습. (언론노조 MBC본부)

오정훈 언론노조 위원장은 당시 언론탄압을 감행한 당사자들에게 분노를 표하면서도 고인의 뜻을 받아든 무거운 책임감과 앞으로의 과제를 말했다. 오 위원장은 2012년 5개 언론사 노동자들이 언론의 자유와 공정성을 외치며 100여일 넘는 파업투쟁을 벌이고 해고, 징계로 탄압받은 상황을 언급, “지금도 그 시절 언론탄압과 무자비한 해고 징계를 생각하면 끊어오르는 분노를 억누르기 힘들다. 이용마 조합원의 병마가 왜 왔는지 생각해보면 더 참을 수 없는 분노와 증오가 솟구친다”고 했다. 이어 “하지만 이용마 조합원이 꿈꿔온 모두가 행복한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기 위해, 어려운 사람에게 먼저 손을 내밀기 위해, 우리는 그 분노와 증오의 마음을 접고 낙관적 사고로 그가 남긴 유지를 받들어야 할 것”이라고 했다.   

 

오 위원장은 그러면서 고인의 가장 큰 유지이기도 했던 ‘공영방송 지배구조 개선’ 절차의 미진한 진행상황을 비판했다. 그는 “아직도 공영방송 지배구조 개선을 위한 법안 개정절차는 이뤄지지 않고 있다. 국민에게 아직도 돌려드리지 못하고 있다”면서 “우리 아이들이 해복하고 아름답게 살아갈 수 있는 그런 사회를 보장할 언론의 자유와 독립성, 그리고 자본과 정치권력이 손대지 못할 언론의 공정성 확립을 위해 좌절하지 않고 한걸음 한걸음 나아가겠다”고 밝혔다.


고 이용마 MBC기자의 영결식 '세상은 바꿀 수 있습니다' 시민사회장이 23일 서울 상암 MBC 앞 광장에서 열렸다. 고 이용마 기자의 동기인 김효엽 MBC기자 역시 조사를 했다. (언론노조 MBC본부)

이용마 기자의 동기인 김효엽 MBC 기자도 조사를 통해 애틋한 마음을 전했다. 김 기자는 “사회부 막내시절 형은 이런 말을 했다. ‘높은자리에 있고 힘있는 사람들은 기자를 무서워한다. 감출게 많아서다. 시민들은 기자들을 무서워할 이유가 없다. 그런데 많은 기자들이 힘있는 사람 앞에선 조용하고 시민들은 가르치려 든다. 우리가 해야할 일은 시민들의 말을 열심히 듣고 그들을 대신해 힘 있는 자들에게 질문하고 답을 받아내는 거’라고. 형은 처음부터 그런 사람이었다. 그 날 형이 참 멋있어 보였다”고 말했다.


김 기자는 또 “용마 형은 피하지 않는 사람이었다”고도 했다. 그는 “적당히 피하고 살아왔다면 지금의 이용마는 존재하지 않았을 거다. 취재를 할 때도, 노조 활동을 할 때도, 공정방송을 위해 파업에 나설 때도, 해직된 뒤에도, 심지어 몹쓸 병을 얻어 병마와 싸울 때도, 늘 한결 같았다”면서 “많은 사람들이 세상은 바꿀 수 없다며 나를 바꾸기 시작했지만 용마 형은 그렇지 않았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형이 지치지 않았던 이유는 형이 쓴 책 제목이기도 한 이 한 마디였을 거다. 사람을 좋아했고, 우리의 공동체를 사랑했고, 우리의 세상이 좋아질 수 있다는 굳은 믿음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라고 덧붙였다.


고 이용마 MBC기자의 영결식 '세상은 바꿀 수 있습니다' 시민사회장이 23일 서울 상암 MBC 앞 광장에서 열렸다. 식 막바지 유족이 헌화를 하고 있다. 배우자 김수영 씨와 아들 헌재, 경재. (언론노조 MBC본부)

영결식에선 이도윤 시인의 조시, 이수진 민중가수의 조가 등과 더불어 배우자 발언까지 이르며 막바지에 접어들었다. 유족들부터 헌화를 시작했고 참석자들은 길게 줄을 서 이 기자의 마지막 가는 길에 꽃을 전했다. 오후 10시30분께 장지로 향하는 운구차량을 배웅하려 참석자들이 늘어섰다. 마지막으로 자신의 마음을 전했다. 


김효엽 기자의 조사 중 아래와 같은 말이, 이용마가 우리에게 남긴 과제로 와닿는다. “형이 떠나면서 남은 우리는 모두 형에게 빚을 졌다고 여겼습니다. 생각해보니 우리는 빚을 진 게 아니라 형의 꿈을 조금씩 나눠 갖게 된 것입니다. 부자가 됐습니다. 목표를 잃지 않고 희망을 놓지 않으면 그래서 한걸음씩이라도 걸어가는 것을 멈추지 않는다면 조금 늦더라도 조금 돌아가더라도 세상은 바꿀 수 있다는 꿈을 형이 우리 모두에게 나눠주고 조금 더 먼저 떠났을 뿐입니다...슬퍼하고 포기하고 주저앉는 건 적어도 이용마에겐 어울리지 않습니다. 우리도 통크게 피하지 않고 또 웃으며 함께 손잡고 가겠습니다. 지켜봐주세요.”

고 이용마 MBC기자의 영결식 '세상은 바꿀 수 있습니다' 시민사회장이 23일 서울 상암 MBC 앞 광장에서 열렸다. 참석자들은 운구차량이 떠나는 모습을 끝까지 지켜봤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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