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 기자 100명 ‘조국 보도’ 난상토론… “대화는 의미있었다”

박용현 국장 “인사검증 TF를 꾸리지 않는 등 오판 있었다”
국장·에디터급 간부 4~5명, 과실인정·보도과잉 의견 갈려
“서로 활발히 많은 대화 오가… 어떤 저널리즘 추구하는지 명확한 답 들었다면 좋았을 것”

최승영 기자 | 2019.09.11 16:01:25

한겨레 6~7년차 이하 기자 51명은 지난 6일 자사의 ‘조국 보도’를 보도참사로 평가하며 국장단의 사퇴를 촉구하는 성명을 냈다. 지난 9일 12~13년차 이하 기자 18명도 편집회의 개선과 정확한 해명 등을 요구하며 성명을 냈다.  사진은 지난 6일 한겨레 편집회의실 등에 붙은 성명서 모습. /한겨레 기자 제공

“애초 한 번의 자리로 해결책을 내는 건 불가능했다. 서로의 생각에 어느 정도 간극이 있는지 입장 차를 충분히 확인했다. 그 자체로 의미가 있었다고 평가한다. 추석 후 편집국장이 (여러 문제제기에) 해결책을 주기로 했다. 이제 시작이라 본다.”(한겨레신문 주니어 연차 A 기자)


지난 9일 오후 6시20분께 서울 공덕 한겨레 사옥 7층. 100여명 이상의 기자들이 편집국에서 열린 토론회에 참석했다. 앞서 12~13년차 이하 기자 70여명이 조국 법무부 장관 인사검증 과정에서 한겨레 보도의 미진함을 비판, 국장단의 사퇴를 촉구하는 기명 성명을 내며 마련된 자리. 편집국장과 노조위원장의 모두 발언으로 시작된 토론회는 예정시간을 약 두 시간 넘긴 밤 10시께까지 진행됐다.


이날 참석한 주니어 기자들의 평가는 “일단 대화 자체는 의미 있었다” 정도로 모인다. 우선 박용현 편집국장은 토론회 계기가 된 문제제기에 ‘인사검증 TF를 꾸리지 않은 것 등 몇 번 과정상에서 판단의 실책이나 오판이 있었다’고 전적으로 인정했다. 아울러 국장·에디터급 간부 4~5명이 자사 조국 보도와 관련해 ‘겸허히 과실을 인정한다’ ‘보도가 너무 과잉이었고 참여하지 않는 게 맞았다고 본다’ ‘진보언론 트라우마인 논두렁 보도가 떠올랐다’ 등 각자의 견해를 피력했다.


A 기자는 “국장단에서 무슨 얘기가 오간 건지 그간의 과정과 해명을 듣고 싶었던 마음이 컸다”며 “끊이지 않을 정도로 대화가 활발히 돼 고무적으로 본다. 당장은 그런 말을 이끌었고 들은 걸 높이 평가하고 싶다”고 말했다. 반면 B 기자는 “차이를 확인하고 소통의 물꼬를 트는 계기가 된다면 의미 있겠지만 한겨레는 그래서 어떤 저널리즘을 추구하는지 답을 못 들어 답답했다. 생각보다 답변이 두루뭉술했고 큰 그림이나 디테일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다”고 평했다.


토론회로 편집국 운영 등과 관련해 당장 결정된 것은 없다. 추석 연휴 이후 시점까지 편집국장이 대안을 마련하겠다는 정도가 약속됐다. 편집회의에 기존 국장단 이외 기자들을 참여시키는 방식, 인사검증원칙을 담은 가이드라인 마련 등이 제안될 것으로 전망된다. 박 편집국장은 전적으로 자신의 책임을 인정한 9일 사내 이메일에서 거취와 관련 “임명동의를 바탕으로 지금의 자리를 맡은 편집국장으로서 제기된 문제점들을 하나하나 따져보고 실질적으로 개선하는 데 지혜를 모아본 뒤 거취를 결정하는 게 좀 더 책임 있는 태도라 생각한다”고 밝힌 바 있다.


이번 사태는 한겨레만이 아니라 진보 성향으로 평가받는 매체에서 언제고 발생할 수 있는 일이 먼저 벌어진 데 가깝다. 진보정부를 진보매체가 비판할 경우 지지자와 겹치는 독자들이 대거 이탈하는 일은 하루 이틀 일이 아니다. 그렇다고 권력견제에 조심스러워질 경우 언론사로서 역할이 위축될 수밖에 없다. 지난 6일 6~7년차(23기 이하) 이하 기자 51명, 지난 9일 12~13년차 이하 기자 18명(18~22기)이 조 후보자를 비판하는 칼럼 삭제 후 “문재인 정권이 들어선 뒤 한겨레의 칼날은 한없이 무뎌졌다” “(근래 편집국 운용이) ‘특정 정치세력에 대한 지지를 목적으로 하지 않는다’는 창립정신에 어긋난다” “안개처럼 휘감아 온 ‘자기검열’의 분위기” 등 비판이 담긴 기명 성명은 이 같은 국면에서 나왔다.


실제 한겨레는 ‘조국 국면’에서 이중고를 겪어왔다. 안에선 부실보도란 지적과 함께 문재인 정부 들어 인사검증 TF조차 마련된 적이 없다는 비판이 나오는 반면 외부에선 나간 보도들만으로 절독·항의 전화가 쏟아졌다. 이달 첫 주 조 장관 임명 직전 한겨레 절독요청 300여건 중 100여건이 논조를 절독사유로 꼽은 것으로 전해진다. 정부 성향과 매체 논조에 따른 고민은 보수 매체라고 다르지 않다는 점에서 국내 상당수 언론사의 문제이기도 하다. ‘박근혜 탄핵 국면’에서 조선일보 등도 대폭의 부수 감소 등을 겪은 바 있다.


이번 사태는 향후 한겨레를 포함한 진보매체가 ‘진보’와 ‘저널리즘’이란 가치 실현이 충돌할 때 어떤 방식, 어떤 대안으로 풀어갈지 실험대로서 의미가 있다. 더불어 ‘586세대’로 대표되는 진보매체 뉴스룸 내부 권력이 굳건한 기존 독자층과 새로운 세대의 요구 사이에서 답을 요구받는 첫 번째 도전이자 변화의 계기이기도 하다.


C 기자는 “(토론회 자체가) 한겨레라서 가능한 풍경이란 걸 안다. 시니어들의 실책 인정을 높이 본다”면서도 “특정한 정치감각을 지닌 남성이 한국 언론을 지배해 온 리더십이라는 건 ‘조중동’과 다르지 않다. 함께 민주화를 이룬 세대에 우호적인, 586세대 리더십이 계속 유효한 것인지 예민한 문제로 등장한 거라 본다”고 했다.
D 기자는 “사내 블라인드(게시판)를 보면 입장이 첨예하게 갈린다. 우리 원칙을 굳건히 세우고 한겨레다운 보도를 고민한 결과인데 같이 일하던 선배들 등에 칼을 꽂은 거 같아 마음이 아프다”면서 “‘조중동’을 욕하면서 우리 스스로 본질적으로 개선된 형태인지 고민을 안 해본 거 같다. 우리 시스템이 낫다고 주장할 수 있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최승영 기자 sychoi@journalist.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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