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 UV 230만, 10년 만에 10배… 정치·정책뉴스 후원독자 6000명

[잃어버린 독자를 찾아서/해외편] ⑥·(끝) 사설 안 쓰는 미국 비영리 온라인 매체 텍사스트리뷴

2009년 7명으로 시작한 텍사스트리뷴은 10년 만에 70명이 일하는 언론사로 컸다. 텍사스주 오스틴의 편집국 사무실에는 30여명의 기자들이 일하고 있다.

텍사스트리뷴(The Texas Tribune)은 텍사스주의 정치와 정책 이슈를 전문으로 다루는 온라인 매체다. 인건비를 제외한 수익 대부분을 뉴스 제작에 투자하는 비영리(nonprofit) 언론, 사설을 쓰지 않고 선거에서 특정 후보를 지지하지 않는 비정파(nonparitsan) 언론을 지향한다.


2009년 11월 벤처캐피탈리스트 존 손턴이 투자한 100만 달러(한화 약 11억9000만원)를 종잣돈으로 월간 텍사스(Texas Monthly)의 편집인이자 TV 토론 프로그램 진행자 에반 스미스, 텍사스 위클리(Texas Weekly)의 소유자이자 편집인 로스 램지 등 중견 언론인들이 공동으로 창간했다. 당시 금융 위기 여파로 재정난을 겪은 댈러스모닝뉴스, 휴스턴크로니클 등 텍사스 주류 언론이 기자들을 대폭 감원한 탓에 텍사스 주정부와 주의회, 입법에 대한 뉴스가 눈에 띄게 줄었다. 이런 현실을 우려한 손턴 등 세 사람은 공공 정책과 정치, 텍사스주 전체를 아우르는 이슈를 전문적으로 다루는 언론사를 차려야겠다고 의기투합했다.


7명으로 시작한 텍사스트리뷴은 10년 만에 70명이 일하는 언론사가 됐다. 기자 30여 명을 포함해 엔지니어, 디자이너, 개발자, 멀티미디어 담당자, 비즈니스 스폰서, 판매·회계 담당자, 이벤트 담당자 등이 있다. 월평균 순 방문자 수(Unique Visitors)는 올해 7월 현재 230만 명으로 2010년(21만 명)에 비해 10배 이상 늘었다. 콘텐츠가 무료인 텍사스트리뷴의 주요 수익원은 독자 후원, 재단 기부, 기업 스폰서십 등이다. 창간 3년째부터 흑자로 전환, 현재까지 모두 9100만달러(약 1083억원)의 수익을 올렸다.


텍사스트리뷴의 로드니 깁스 CPO(왼쪽)와 에밀리 램쇼 편집국장이 지난 7월 미국 텍사스주 오스틴 사무실에서 기자와 만나 이야기를 하고 있다.
◇ 정치·정책뉴스에 ‘올인’
텍사스트리뷴은 문화, 스포츠, 연예, 여행 등의 기사는 일절 다루지 않는다. 연방정부 정책도 텍사스에 직접 영향을 미치지 않는 한 보도하지 않는다. 오로지 텍사스주의 정치와 정책 이슈만 ‘올인’한다. ‘주정부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주예산이 어떻게 사용되는지’ ‘주의회 상·하원 의원들은 의정 활동을 제대로 하고 있는지’ 등등. 정치와 정책뉴스만 갖고 10년 만에 괄목할 만한 성과를 낼 수 있을까? 그것도 온라인 매체로?


“텍사스주 입법과 정책은 우리의 편집 목표이자 동시에 비즈니스 모델입니다. 언론사들은 이런 종류의 기사가 돈이 되는 시장은 없다고, 전혀 재정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하지만 우리가 지금까지 걸어온 길은 텍사스주 정치와 정책 콘텐츠에 대한 고정 독자가 있고, 이윤을 낼 만한, 충분히 지속가능한 비즈니스 모델이라는 걸 입증했습니다.” 지난 7월16일 미국 텍사스주 오스틴에서 만난 로드니 깁스 텍사스트리뷴 CPO(Chief Product Officer)는 무엇이 트리뷴을 특별하고 영향력 있게 만드냐는 질문에 이렇게 말했다.


텍사스트리뷴은 창간 초기 텍사스 정치와 정책 콘텐츠가 필요한 사람들에게 초점을 맞췄다. 정치 관련 뉴스를 알아야 하는 주정부 관계자와 주의회 의원, 주청사 주변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고정 독자가 됐다. 소수에 불과하지만 주정부에서 의사 결정을 하는 매우 영향력 있는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텍사스트리뷴의 저널리즘 가치를 전파하고, 콘텐츠를 공유하고 후원도 하는 든든한 조력자가 됐다.


하루 평균 7개 안팎의 새로운 뉴스가 텍사스트리뷴 웹사이트에 올라가지만 대부분 속보성 기사보다는 진지한 기사, 즉 심층 보도다. 텍사스와 멕시코 국경에서 수천 명의 이민자 자녀가 그들의 부모나 보호자와 떨어져 지내고, 트럼프 행정부가 이민자들을 매수해 미국을 떠나도록 만드는 현실을 고발한 기획 시리즈 ‘Families Divided’는 올해 에드워드 R. 머로 상 전미 보도상 5개 부문 중 4개 부문을 수상했다.


텍사스트리뷴은 트럼프 행정부의 이민자 정책을 탐사 고발한 기획 보도로 올해 에드워드 머로 상 전미 보도상 4개 부문을 수상했다.
◇ 60개 언론사와 파트너십
텍사스트리뷴은 독자가 찾아오기를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직접 독자를 찾아 나선다. 텍사스 내 지역신문·방송국에 텍사스트리뷴 기사를 무료로 제공한다. 다른 언론사 독자들은 트리뷴의 기사에 노출되고, 시나브로 트리뷴의 영향력은 커진다. 독자 규모를 늘리는 데 파트너십도 빠질 수 없다. 텍사스트리뷴은 시사주간지 타임, 프로퍼블리카, 허핑턴포스트, NBC, MSNBC, NPR 등 60개 언론사와 파트너십을 맺고 공동 보도를 하고 있다. 2017년 코스모폴리탄과 협업한 미국 내 불법 성매매 보도는 20~30대 여성 독자들이 텍사스트리뷴을 지지하는 바탕이 됐다.


텍사스트리뷴의 콘텐츠는 모바일, 데스크톱, 뉴스앱, 소셜미디어, 팟캐스트, 유튜브 등 여러 디지털 채널에서 소비된다. 2009년 설립 당시만 해도 디지털 환경은 단순했다. 아이폰이 출시된 지 2년에 불과했고, 페이스북은 대학생 커뮤니티에서 일반 이용자들을 끌어들이기 위해 막 기지개를 켜던 때다. 텍사스트리뷴도 웹사이트 하나밖에 없었다. 10년 새 디지털 미디어 환경은 한층 복잡해졌고, 텍사스트리뷴은 그런 환경에 대응하며 성장했다. 테크놀로지에 많은 투자를 했고, 지금은 모바일 우선 디자인 개발에 집중하고 있다. 모바일에서 기사는 빠르게 로딩되고, 뉴스 검색도 구글만큼 정확해 독자들의 만족도가 높다.


텍사스트리뷴은 지난해 10월 뉴스룸 혁신보고서를 냈다. ‘텍사스트리뷴의 미래를 위한 전략 비전 보고서(A strategic vision for the Texas Tribune’s future)’다. 본능과 직감으로 지금까지의 성장을 이뤘지만 ‘우리의 독자가 누구인지, 독자가 우리의 콘텐츠와 어떻게 상호작용하는지’에 대한 정교한 전략이 없었다. 이사회와 임직원 모두의 브레인스토밍을 거쳐 15명씩 참여하는 ‘독자의 미래’ ‘수익’ ‘테크놀로지’ 등 3개 소위원회를 가동해 9개월 연구했다.


보고서는 오는 2025년까지 독자를 2배로 늘리고, 후원 독자를 1만 명으로 확대하고, 새로운 비디오와 오디오 콘텐츠를 제작하고, 매출도 매년 10%씩 성장시키겠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에밀리 램쇼 텍사스트리뷴 편집국장은 “창간 10년을 앞둔 상황에서 미래에 대한 비전을 공유할 필요가 있었다”면서 “우리는 그 전략보고서에 여전히 의지하고 있다. 나는 보고서가 우리의 의사 결정에 얼마나 영향을 미치는지 놀라고 있다”고 말했다.


텍사스트리뷴 편집국 사무실에는 일종의 뉴스 강령으로 보이는 기자들의 다짐 등이 붙어 있다.
◇ ‘신뢰’와 ‘텍사스’ 꼽아
텍사스트리뷴은 보고서에 기반해 여러 전략을 추진 중인데, 특히 후원 독자 확대에 적극적이다. 올해 가을에 신규 후원 독자 400명을 모집하겠다고 발표하면서 또 다른 10년간의 공공 서비스 저널리즘을 시작한다고 밝혔다. 돈 내지 않아도 기사를 무료로 볼 수 있는데, 후원 독자로 등록한다는 것은 텍사스트리뷴에 대한 신뢰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사려 깊고 사실에 기반한 뉴스를 보는 게 오늘날의 환경에서 중요하기 때문에…” “신뢰할 수 있는 양질의 저널리즘을 제공하기에…” “텍사스 사람들에 필요한 저널리즘을 수행하기 때문에….” 텍사스트리뷴을 후원하는 독자들은 ‘신뢰’와 ‘텍사스’를 강조한다.


텍사스트리뷴 후원자는 설립 첫해 2081명에서 작년 말 현재 6053명으로 늘었다. 후원금은 1년 약정의 경우 35달러, 36~99달러, 100~499달러, 500~999달러 등 4가지가 있고, 연간 1000달러에서 많게는 5000달러까지 3년간 지속적으로 후원하는 독자도 있다. 후원금을 내면 기자와 Q&A, 텍사스트리뷴페스티벌 세션 무료 참여, 분기별 회원 전용 보고서 배포, 스튜디오 919 임대료 할인 혜택 등을 제공한다. 램쇼 편집국장은 “재단 후원, 기업체 광고, 이벤트 스폰서십 등 여러 수익원이 있지만 개인 후원은 지속가능한 언론사를 담보한다”면서 “단순히 돈만 내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저널리즘을 지원하고, 우리의 기사를 공유하고, 우리의 이벤트에 오는 사람들”이라고 말했다.


2013년 6월 텍사스트리뷴이 웬디 데이비스 텍사스주 하원의원의 낙태제한법 반대 11시간 필리버스터를 생중계하자 후원자는 폭증했다. 멕시코 국경문제가 이슈가 될 때, 작년 중간선거에서 공화당 거물 테드 크루즈 상원의원에 도전장을 던진 베토 오루크가 뜰 때도 후원자는 급증했다. 그러나 거기까지였다. 이슈가 사라지자 거품이 꺼지고, 후원자는 뚝 떨어졌다. 이슈를 계기로 급증한 후원자는 반드시 떨어진다는 사실을 깨달은 텍사스트리뷴은 이메일 뉴스레터에 주력했다. 깁스 CPO는 “뉴스레터는 독자를 만나고 독자와 소통할 수 있는 가장 친근하고 일관된 방식”이라며 “멤버십 전환의 최고의 방법”이라고 말했다.


‘더 브리프(The Brief)’는 텍사스트리뷴의 대표적인 뉴스레터다. 아침에 발송하고 하루에 한 번 업데이트된다. 교육, 이민, 건강, 경제, 환경 등을 다룬 뉴스레터의 경우 해당 이슈에 관심이 있는 독자가 등록하면 관련 기사를 이메일로 보내준다. 텍사스 주의회 내부자들을 겨냥한 ‘더 블래스트(The Blast)’는 유료다. 뉴스레터에 담을 기사를 골라 스토리라인을 짜고 편집하는 전담 기자가 있다. 램쇼 편집국장은 “뉴스레터는 후원 독자 확장에 직접적인 파이프라인 역할을 한다”며 “통상 오픈율이 20%가 넘으면 좋은 수치라고 하는데 우리 뉴스레터는 약 40% 가량 열어본다”고 했다.

◇ 모든 것은 변한다
언론사 주최 이벤트가 차고 넘치는 요즘이지만 텍사스트리뷴페스티벌(TribFest)은 특별하다. 올해 9년째 열리는 연례행사로 정치인, 기업가, 지역사회 활동가, 학생, 기자를 포함해 수천 명이 참여한다. 9월 말이면 페스티벌 장소인 오스틴 시내의 콩그래스 애비뉴 주변은 유명 정치인과 Q&A, 라이브 팟캐스트, 특강 등 여러 행사로 북적인다. 존 케리 전 국무장관,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 에이미 클로버샤 상원의원에 이어 올해는 대선 후보들이 대거 참석하는 등 미국의 대표적인 정치이벤트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간판 정치인들이 오스틴을 찾으면서 페스티벌 기간 내내 언론사들의 취재 경쟁도 치열하다.


텍사스트리뷴은 이 페스티벌에서 티켓 판매와 기업 스폰서십을 통해 매년 약 180만 달러(21억4000만 원)를 벌어들이고 있다. 막대한 수익을 올리면서도 독자와 관계를 더욱 돈독히 하고 이벤트를 통해 기삿거리를 제공하는 기회가 된다. 특히 텍사스트리뷴의 저널리즘 가치를 이끄는 원동력이라는 점에서 각별한 의미가 있다.


정치와 정책 콘텐츠라는 틈새시장을 공략한 텍사스트리뷴의 전략은 통했다. 창간 10년 만에 콘텐츠, 이벤트, 후원을 막론하고 미국에서 내로라하는 매체가 됐다. 그러나 고민이 없는 것은 아니다. 잘해왔고 지금도 잘하고 있지만 5년, 10년 후 미래가 어떨지 모른다. “지금 그대로를 유지하면 좋겠지만 우리는 그럴 수 없다는 걸 압니다. 모든 것은 변하겠죠. 많은 시간과 생각을 들여 미래의 돈이 어디에서 올 것인지에 대해 고민하는 이유입니다.” 깁스 CPO는 인터뷰 마지막에 속내를 보였다.


김성후 기자 kshoo@journalist.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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