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일보를 신문과 디지털로 갈랐다

[Inside] 중앙일보 조직개편 단행
신문 전담하는 중앙일보A와
디지털 맡는 중앙일보M으로
파트별 업무·조직 완전 분리

대표이사·편집인 동일하지만
각각 별도 수장 하에서 운영

홍정도 대표 "주사위는 던져졌다"
기자들, 근로조건 변경 등 우려

중앙일보에서 법인분할을 전제한 조직개편이 이뤄졌다. ‘신문’과 ‘디지털’의 업무·조직을 완전히 분리해 별도 회사로 만들겠다는 방침이다. 향후 중앙 디지털 매체가 안착하며 기존 신문 기반 수익모델의 대안을 찾을 수 있을지, 신문 매체는 어떻게 되는 것인지 주목된다. 이 과정에서 기자들의 역할변화, 특히 신문제작 기자들의 노동조건 변경 등은 관건이 되는 지점이다.


홍정도 중앙일보·JTBC 대표이사 사장은 지난 5일 ‘2020 내일 컨퍼런스’에서 중앙일보 법인을 ‘중앙일보A’와 ‘중앙일보M’으로 분할하겠다는 청사진을 밝혔다. 신문을 전담하는 중앙일보A와 디지털을 담당하는 중앙일보M은 대표이사와 편집인은 같지만 각각 별도의 수장을 두고 완전히 독립적으로 운영되도록 하는 방향이다. 홍 사장은 ‘카이사르가 루비콘강을 건너며 주사위는 던져졌다고 했듯, 우리도 (법인)분할을 할 것’, ‘중앙일보M 기자의 페이퍼 제작 할애 인력을 0으로 수렴시킨다’ 등 발언을 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날 전격적으로 단행된 인사와 조직개편 역시 이를 염두에 둔 채 이뤄졌다. 기존 ‘신문제작본부’를 ‘제작총괄’로 변경하고 산하에 논설실과 편집국을 둬 신문제작을 전담한다. 디지털을 담당하는 ‘뉴스총괄’은 아래에 ‘뉴스룸’, ‘뉴스제작국’, ‘마케팅솔루션본부’, ‘뉴스플랫폼담당’ 등을 둬 “취재와 새로운 뉴스 스토리텔링 개발을 통한 신규 Biz를 전담”한다. 기존 편집국 역할 상당 부분을 뉴스룸이 대체할 소지가 크다. 지난 5일부터 임원과 국장, 에디터급 인사가 차례로 단행됐고, 이하급 발령이 예정된 상태다.


이번 법인분할 계획은 국내에서 가장 급진적으로 디지털화를 추진해 온 중앙일보가 ‘디지털’ 영역에서 본격 자생 가능성을 천명했다는 의미가 있다. 양 매체 각각의 “책임경영 체제를 구축”하겠다는 설명은 결국 디지털에서도 수익모델을 만들겠다는 말과 다르지 않아서다. 중앙일보는 네이버 구독자수와 점유율 1위 등 성과를 거뒀지만 국내 매체 대부분 수익이 신문·방송에서 나오는 현실은 공유하고 있었다.


이를 실현하기 위해 신문의 수익과 브랜드 등 유산은 일단 유지될 것으로 보인다. 컨퍼런스를 지켜본 중앙 A 기자는 “대표는 내년 한 해 중앙일보A 구성원에게 KPI지수 최대 난도를 줘 목표 달성 시 최고 가산점과 혜택을 주고 수당도 더 주겠다고 약속했다. ‘광고수익은 지면에서 나오니까’라는 워딩도 있었는데 당장 신문을 버릴 수 없다고 판단한 듯하다”면서도 “주니어 기자 일부는 ‘지난해에 비해 대표가 신문에 애정을 보이더라’는 말도 하던데 사실 대표가 힘을 쏟고 싶은 게 어디인진 분명했다. 디지털이 잘하면 잘할수록 신문 쪽 유효기간은 짧아질 가능성이 높다”고 했다.


반면 디지털 영역에선 새로운 형식 콘텐츠와 전략, 플랫폼 등 여러 시도가 감행된다. 홍 사장은 다수 플랫폼 각종 지표에서 현 ‘두세 배’의 압도적인 1위를 주문하며 ‘올해는 (특정집단을 타깃으로 한 콘텐츠와 서비스 위주의) 세그먼트를 하라고 했는데 내년 중앙일보M은 매스를 겨냥한 종합 스토리텔링을 하고, 기존 작법을 떠나 신문을 넘겨본 적이 없는 사람이 접근하게 해야 한다’고 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에 따라 ‘폴인’과 ‘듣똑라’를 제외한 여러 디지털 실험 역시 폐지되고, JTBC가 3분 내외 동영상 뉴스 등을 제공해 온 페이스북 채널 ‘헤이뉴스 Hey, News’가 강화돼 본격 플랫폼화된다. 기존 성과를 이어가기 위해 네이버 구독자수 1위 등에 기여한 속보 담당 EYE24팀 유지, JTBC의 네이버 점유율을 높이기 위한 속보팀 신설 역시 거론된 상태다.


예고된 변화에 기자들은 ‘제작총괄(신문제작)로 인사발령이 날까’ 전전긍긍하고 있다. 조직개편에 깃든 메시지에서 신문매체 미래를 어둡게 보는 게 근원이다. 아직 인사가 마무리되지 않았고 기업분할 방식과 시기, 새 디지털 매체 수익모델, 양 매체 간 협업방식 등이 결정되지 않아 당장 체감은 크지 않지만 불안감은 해소되지 못했다. 지난 9일 오전 오병상 편집인이 진행한 설명회엔 100여명의 기자가 참석했지만 중론은 “컨퍼런스 때보다 특별히 진전된 얘긴 없었다” “큰 방향만 정해졌고 나머지는 부딪쳐가며 답을 찾자는 것”으로 모였다.


중앙 B 기자는 “제작총괄로의 인사가 달가울 리 없다. 출입처가 아니라 내근을 하며 남이 취재한 걸 정리하라고 하면 어떤 기자가 좋아하겠나. 기존 라이팅 에디터도 유쾌한 인사일 수 없는데 지금은 제작총괄 역할 자체가 그런 식이 되고 있다”고 했다. 중앙 C 기자는 “현재로선 제작총괄 인사가 잘 된 건지 물을 먹은 건지 판단이 쉽지 않다. 내년까진 괜찮다는 판단도 가능하다”면서도 “이후에 ‘탈출할 수 있다면’이란 조건이 붙는다. 다들 디지털이 탄탄해지면 신문을 분사할 거라 보는 상황에 누가 몸담고 싶어 하겠나”라고 했다.


조직개편 후 겪을 실무적인 문제는 향후 본격 분할 작업 추진 시 더 심화될 수 있다. 취재과정의 디테일한 문제부터 신문과 디지털 매체 간 콘텐츠 제공 대가 지불방식 같은 회사 간 협업까지, 모두 답이 필요하다. 실제 분할 시 기존 노사가 맺은 단체협약이 어느 쪽에 승계될지도 관건이다. ‘존속회사’와 ‘신설회사’ 지위가 정해졌을 때 신설회사 소속 기자들은 단협을 승계 받지 못해 근로조건 악화에도 문제제기할 수 없는 처지에 놓일 수 있다. 앞서 ‘기자들의 처우와 대우는 변함이 없다. 중앙일보A와 M 모두 중앙이고 달라지는 건 프로세스 뿐’이란 홍 사장의 말이 있었지만 분할 직후 보호 장치가 사라진다는 점은 명확하다.


허진 중앙일보·JTBC 노조위원장은 “사측의 경쟁력 강화, 위기 극복 방법에 구성원들은 큰 틀에서 공감하지만 근무강도 강화, 근로자로서 처우 악화 등이 우려되는 만큼 주의 깊게 살피고 대응할 것”이라면서 “방향만 정해진 상황에서 일반 조합원은 물론 상대적으로 고연차이고 상실감이 클 명예조합원(비조합원)까지 회사의 설명에 납득했는지, 우려가 무엇인지 등 의견 취합부터 할 생각”이라고 밝혔다.

최승영 기자 sychoi@journalist.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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