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제-취재-마감-발제-취재-마감… 30년 넘게 이러고 있다

[신년기획 l 다시 쓰는 저널리즘] (3) 하루살이 생활과 조직문화

김달아 기자 | 2020.01.15 14:22:07

발제-취재-마감, 발제-취재-마감…. 한국 취재기자들의 일상이다. 정해진 지면과 방송뉴스 시간을 채우기 위해 마감에 쫓기는 ‘하루살이’ 생활은 30년 전이나 지금이나 별반 다르지 않다.


이런 업무 패턴을 수십 년째 지탱한 건 기성언론사 특유의 수직적이고 위계적인 조직문화다. 언론사는 매일 쏟아지는 사건사고와 논쟁거리 속에서 무엇을, 또 어떻게 보도할지 불과 몇 시간 안에 판단해야 한다. 한 사안을 두고 깊게 토론할 시간이 없다. 결국 빠르고 간편한 하향식 의사결정 구조가 굳어졌다. 현장을 직접 취재한 기자보다 책상에 앉아있는 데스크의 의견을 판단 기준으로 삼는 것이다.


“취재지시받고 현장에 가보니, 단신으로 처리할 사안이었다. 그런데 데스크가 기사 방향까지 미리 잡아놔서 어쩔 수 없이 리포트로 제작해 보도했다.” (한 방송사 주니어 A 기자)


기자들은 이 같은 조직문화 안에서 윗선의 불합리한 지시에도 순응하며 살아왔다. 언론사에 입사하자마자 엄격한 기수제와 악명 높은 수습교육을 경험하면서, 연공서열에 기반한 위계적 질서에 편입된다. 권위적인 분위기는 대물림되면서 공고해졌다.


한 종합일간지 7년차 B 기자는 “수습 때 선배들에게 험한 말 들으며 시달렸는데 내가 일진이 되니 똑같이 하게 되더라”며 “기사를 쓸 때도 언제부턴가 ‘이건 종합 8매, 박스 4매’처럼 기계적으로 나온다. 늘 마감시간에 쫓기다 보니 새로운 기사 형식이나 내용을 고민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조직에 적응해 관행을 따라온 기자들의 모습은 ‘조국 전 장관 사태’를 거치며 비판의 대상이 됐다. 이제 시민들은 기자들의 기사 생산 과정에서부터 의문을 제기한다. 더 이상 언론을 여론의 공론장이라거나 사회의 공기로 여기지 않는다. 변화에 둔감했던 한국 저널리즘은 불신을 넘어 개혁을 요구받는 상황에 처해 있다.


전남대 신문방송학과 이오현 교수와 석사과정 이석호씨가 펴낸 논문 <한국 신문의 뉴스 생산문화에 대한 비판적 연구>(한국언론정보학보, 2019년10월)는 편집국의 수직적 위계 구조가 오늘날 저널리즘 위기를 불렀다고 지적한다. 연구팀은 중앙일간지를 퇴사한 전직 기자 9명을 조직문화와 기사생산 문제 중심으로 심층 인터뷰한 뒤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린다.


“기자들은 체계적인 교육을 통해서가 아니라 위계적 및 순응적 문화 속에서 시행착오를 반복하면서 체험적으로 업무를 익혀왔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신문사의 교육체계 부재는 다시 위계적 및 순응적 문화를 강화하고 조직운영을 위계성에 의존하도록 만드는 듯했다.”


“중앙일간지에서 작동하는 폐쇄적 및 비성찰적 조직문화는 기사생산에 있어서 기존의 문화나 관행들이 문제의식 없이 여전히 강력하게 개입할 수 있는 배경의 역할을 함으로써 저널리즘의 원칙과 질을 심각하게 훼손하였다.”


논문이 언급한 위계적, 순응적, 폐쇄적, 비성찰적 조직문화는 내부 비판도 소극적으로 만들었다. 사내 비판 목소리를 낸 이들이 징계조치 당하는 일뿐 아니라, 구성원들 스스로 말 하지 않는 문화를 체화하는 경우도 많다. 지난해 인력 유출이 잇따른 한 경제지에선 사측에 적극적 대응을 촉구하자는 제안이 나왔는데 ‘일 크게 만들지 말자’는 의견이 많아 성명 작성이 무마된 일도 있었다.


기자들이 생존 문제에 타협하는 현실도 조용한 뉴스룸 문화를 부추긴다. ‘기자가 영업사원 됐다’는 말이 더는 새삼스럽지 않고, 광고·협찬과 기사를 맞바꾸는 일도 빈번하다.


한 종합일간지 5년차 C 기자는 “모 기업에서 사주 관련 문제가 터졌는데 부장이 협찬금 많이 주는 곳이니까 기사 안 쓰면 좋겠다고 한 적이 있다”며 “부장이 그렇게까지 이야기하니 거절하기 어려웠다. 남들 다 쓰는 기산데 나 하나 더한다고 달라지는 것도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 그 기사를 안 썼다”고 말했다.


지난달 SPC그룹의 협찬금 지급을 약속받고 해당 기업 관련 기사를 삭제한 경향신문 사례를 두고 의견이 엇갈린 것도 위와 같은 인식이 깔려있기 때문이다. 기사 삭제를 대가로 받기로 한 금액이 5억원이라는 거액으로 알려지자 안팎에서 ‘그 정도 액수면 삭제할 수 있는 것 아니냐’는 말들이 나왔다. ‘생존 위기’를 고민하는 언론계의 현실을 보여주는 한 단면이다.


반면 경향신문 기자들은 성명을 통해 이를 외부로 공표하고 독자들에게 사과했다. 사건에 관여한 것으로 드러난 사장과 편집국장, 광고국장이 동시에 사의를 밝히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했다. 그럼에도 경향 기자들 사이에선 ‘잘못한 일을 공개하고 사과를 구하는 것이 마땅하다’는 인식이 퍼져있다. 경향엔 내부 문제를 적극적으로 꺼내 들고 ‘방을 붙이는’ 문화가 자리 잡고 있어서다. 방을 붙이는 기자들도, 이걸 바라보는 이들도 사내 비판 목소리를 냈다는 이유만으로 불이익을 당하거나 주지 않는다는 공감대가 있다.


경향과 비슷한 문화가 있는 언론사는 한겨레, KBS 등이다. 지난해 10월 한겨레에선 조국 전 장관 사태 보도 과정에서 국장단과 인식 차를 느낀 주니어 기자들이 성명을 냈고, 이달 들어선 편집팀 기자들이 편집국장의 리더십을 비판하는 성명을 내기도 했다. 일방적인 비난이 아니라, 더 나은 저널리즘을 함께 고민할 기회를 만들자는 것이다.


이뿐 아니라 최근 언론사 곳곳에서 위계적 조직문화와 부정적 관행을 개선하고, 위아래 원활한 소통을 위한 크고 작은 움직임이 이어지고 있다. MBN은 폐쇄적으로 운영되던 편집회의를 올해부터 평기자에게 개방했다. 이전과 달리 회의록도 보도국 내부에 공유된다. KBS의 ‘출입처 폐지’ 선언도 눈길 끄는 변화 중 하나다.


엄경철 KBS 통합뉴스룸 국장은 월간지 신문과방송 1월호에 실린 기고문 <언론 효능감 최악…지금의 출입처 구조로는 생존불능>에서 “구조와 관행은 앞서거니 뒤서거니 서로를 뒷받침한다. 구조는 관행을 낳고 관행은 구조를 더욱 공고하게 만든다”며 “출입처 제도를 포함한 한국 언론의 오랜 관행 혁파는 선택이 아니고 생존의 문제”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조선일보 노조는 지난달 26일과 이달 9일 발행한 노보를 통해 ‘업그레이드 조직문화’를 강조했다. 조선 노조는 “편집국 내 비합리적 조직문화를 지적하는 조합원 불만이 잇따르고 있다”면서 연차별 조합원 20명을 인터뷰 해 조직 문화에 대한 의견을 들었다고 전했다. 조선 노조는 “디지털 격변 시대에 밀레니얼 기자들이 차츰 우리 조직의 주축이 되는 상황에서 “사내 문화가 진화해야 조직이 산다”는 목소리가 높다(…)우리의 불통 문화는 사실 조직 구조의 문제라는 분석도 나온다”라며 구성원들의 인식 변화를 촉구하고 있다.


서울신문은 주니어 기자들과 편집국장이 직접 소통하는 기구인 ‘주니어 보드’를 구성하고 오는 30일 첫 회의를 연다. 이달 수습을 떼는 막내들부터 위로 여섯 기수(각 1명)와 온라인부문 3개부서 인원이 참여한다. 안미현 서울신문 편집국장은 “주니어 보드는 말 그대로 편집국 소통 확대를 위해 만든 것이다. 국장이 차장·부장들과 이야기할 기회는 많은데 주니어들의 목소리를 직접 들을 일은 적지 않느냐”며 “이들의 의견을 허심탄회하게 듣고 지면제작과 조직운영에 반영하겠다는 취지”라고 말했다.


연공서열이 아니라 능력에 따른 주니어 팀장제, 시니어 기자들의 현장복귀 안착 등도 언론사 위계 구조를 깨기 위한 하나의 방안으로 언급된다. 이들이 늘어날수록 연차와 상관없이 자유롭게 대화·토론하는 환경이 마련될 것이란 기대다.


디지털콘텐츠국장을 역임하고 지난해 취재현장으로 복귀한 최연진 한국일보 기자는 조직 문화 개선과 콘텐츠 질 향상을 위해 자신과 같은 사례가 늘어나야 한다고 했다. 그는 국장 재임 시절 사내 ‘전문기자 양성’ 공개모집에 자발적으로 응모해 IT전문기자로 활약하고 있다.


최 기자는 “연차가 올라가면 일선에서 물러나는데 오히려 그때가 취재현장에 더 큰 도움을 줄 수 있는 시기라고 생각한다. 경험 많고 인적 네트워크가 두터운 고참들이 콘텐츠를 윤택하게 하는 구조를 만들 수 있다”며 “젊은 기자들과 현장에서 함께 호흡하는 과정이 조직 문화 개선에도 기여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다만 최 기자는 “연차 높은 기자들이 일선으로 돌아갈 때 나는 어떤 분야 기사를 쓰고 싶은지 목표를 확고하게 잡아야 한다. 마치 자리가 없어 밀려나는 것처럼 현장에 가게 되면 손발을 맞춰야 할 젊은 기자들과 동화되지 못 한다”며 “회사와 기자 개인의 의지 모두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달아 기자 bliss@journalist.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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