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독립 침해는 유죄" 대법원 판결의 의미

'세월호 보도개입' 이정현 벌금형 확정…"언론통제 정치권력 단죄한 첫 사례"

지난 2016년 전국언론노동조합 등 언론시민단체를 통해 공개된 '이정현-김시곤 육성 녹취' 영상 중 일부 갈무리. (오마이뉴스) KBS의 세월호 보도에 개입한 혐의로 기소된 이정현 무소속 의원이 유죄 확정판결을 받았다. 대법원은 지난 16일 이정현 의원의 상고를 기각하고 벌금 1000만원을 선고한 원심판결을 확정했다. ‘방송편성에 간섭함으로써 방송편성의 자유와 독립을 침해했다’는 이유로 기소된 최초의 사건이자, 최초의 유죄 확정판결이다.

이정현 의원은 청와대 홍보수석으로 있던 지난 2014년 4월 KBS가 세월호 참사 관련 해경 비판 보도를 하자 김시곤 당시 KBS 보도국장에게 2차례에 걸쳐 전화를 걸어 해경 비판 보도를 중단하거나 대체할 것을 요구해 방송편성에 간섭한 혐의로 지난 2018년 재판에 넘겨졌다. 방송법 제4조2항은 “누구든지 방송편성에 관하여 이 법 또는 다른 법률에 의하지 아니하고는 어떠한 규제나 간섭도 할 수 없다”고 규정하고 있으며, 이를 위반할 경우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동법 제105조)는 처벌 규정도 두고 있다.

이 의원 측은 재판에서 “정상적인 공보활동의 일환으로 언론에 의견을 제시하거나 오보에 대한 정정보도를 요청한 것이어서 위법성이 없는 정당행위에 해당한다”며, 방송법 제정 이래 한 번도 적용된 적 없는 처벌조항의 적용이 “정치적 반대파 죽이기에 이용될 수 있다”고 주장했으나, 재판부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고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관행이라는 이름으로 별 경각심 없이 행사되어 왔던 정치권력의 언론 간섭이 더 이상은 허용되어서는 안 된다는 선언”이라고 밝혔다.

이 의원은 즉시 항소했으나, 2심 재판부 역시 방송편성에 관한 간섭행위임을 인정하며 유죄 판결을 했다. 다만 이 의원의 행위가 실제 방송편성에 영향을 미쳤다고 볼 수 없고 다른 정치적 목적이 있었던 것으로도 보이지 않는다며 징역형의 집행유예에서 벌금형으로 감경했다. 그리고 대법원은 원심 판결에 잘못이 없다며 유죄 판결을 확정했다.

방송 편성의 자유와 독립을 보장한 방송법을 적용해 유죄를 확정한 첫 사례에 대해 전국언론노조는 “사필귀정”이라고 했다. 언론노조는 17일 논평을 내고 “방송독립 침해 행위에 대한 대법원의 첫 유죄 판결을 환영한다”며 이같이 밝혔다. 그러면서 “언론의 자유라는 헌법적 가치와 법률 위에 군림하며 파렴치한 방법으로 방송을 장악하고 보도를 농단한 권력자들을 엄벌하지 않고서는 언론 적폐를 청산할 수 없다”며 “다시는 무도한 권력의 언론 장악이 되풀이되지 않게 이번 기회에 쐐기를 박아야 한다”고 밝혔다.

언론노조는 같은 혐의로 고발된 길환영 전 KBS 사장에 대해선 검찰이 무혐의 처분한 것을 가리켜 현행 방송법의 보완이 필요하다고도 주장했다. 언론노조는 “해당 조항의 입법 취지에 따라 방송 독립 침해 행위에 대해서는 내·외부 가릴 것 없이 처벌하도록 구체적으로 명시할 필요가 있다. 방송사의 중책을 맡고 있으면서 권력과 결탁 또는 야합해 공적 책무를 저버린 자들에 대해서는 보다 엄중히 법적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경향신문도 이날 사설을 통해 “방송법 제정 57년 만에 언론을 통제한 정치권력을 단죄한 첫 대법원 판결로 의미가 크다”고 평가하며 “다시는 권력이 언론을 통제할 수 없도록 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고 밝혔다. 경향은 “언론의 자유는 그 누구도 침해할 수 없다는 원칙을 재확인한 것”이라며 “그런 점에서 대법원 판결은 국가와 언론에 질문을 던진 셈이다. ‘국가와 권력기관은 진심으로 언론의 자유와 독립성을 존중하고 있는가. 또 언론은 국가권력에 대한 감시와 비판이라는 본연의 책무를 다하고 있는가’라고 말이다”라고 했다.

한편 벌금형이 확정되면서 의원직을 유지하게 된 이정현 의원은 대법원 선고 직후 입장문을 내고 “사법부의 최종 판결에 조건 없이 승복한다”고 밝혔다. “여전히 큰 아픔을 겪고 있는 세월호 유가족들에게 위로가 되어 주기는커녕 또 다른 상처가 되었을 것을 생각하면 송구하고 마음 무겁다. 사과드린다”고도 했다.

그러면서도 “방송편성 독립 침해혐의로 32년 만에 처음 처벌받는 사건이라는 사실은 그만큼 관련 법 조항에 모호성이 있다는 점과 그래서 다툼 여지가 있었다는 점과 보완점도 적지 않다. 국회에서 관련 법 점검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며 “저의 경우가 참고가 되어 언론의 자유와 독립이 더 견고하게 보장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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