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아리 아닌 '목소리'... 뉴스룸 바꾸는 2030

[Cover Story] 젊은 기자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언론사들

지난 2018년 국제올림픽위원회(IOC)가 평창동계올림픽의 여자 아이스하키 종목에서 남북단일팀을 허용한다는 내용을 공식 발표했다. 남북단일팀으로 인한 한반도 평화 분위기 조성이라는 정부의 기대감과 달리 전혀 다른 반발이 2030세대 사이에서 나왔다. 공정한 결과에 따라 국가대표에 선발돼야 할 선수들이 남북단일팀으로 인해 희생당한다는 비판의 목소리였다. 2030세대는 ‘평화’라는 대의보다 ‘반칙과 특권’, ‘공정성’에 민감하게 반응했다.


청년세대가 제기한 ‘공정성’은 그동안 한국 사회에서 제대로 논의된 적이 없던 새로운 차원의 사회 갈등이었다. 이들 세대는 페미니즘, 워라밸 등 기성세대들이 인식하지 못한 새로운 사회 가치를 꺼내 들었고 기존의 관습에 반기를 들었다. 이후 문재인 대통령이 “새로운 세대를 알아야 한다”며 청와대 직원들에게 추천한 책 ‘90년생이 온다’가 베스트셀러에 오르는 등 전 사회가 청년세대의 목소리에 주목하기 시작했다.



변화하는 시대적 흐름은 언론사에도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치고 있다. 젊은 세대의 목소리와 새로운 시각들이 뉴스 의제로 떠오르고, 달라진 소비 환경은 과거의 뉴스 제작 관행을 뛰어넘을 것을 요구하고 있다. 하지만 뉴스룸은 다원화된 사회를 뉴스에 반영하지 못하고, 기존 문법대로 뉴스를 만들면서 독자의 외면을 초래하고 있다. 이런 현실은 뉴스룸의 의사결정 과정에 근본적인 변화를 요구하고 있고, 언론사 곳곳에서 젊은 기자들과의 소통기구가 생겨난 배경이 됐다.


한겨레는 10년 차 이하 기자들로 구성한 레드위원회를 만들었고 서울신문은 편집국장과 젊은 기자들이 직접 소통할 수 있는 주니어보드를 시행하고 있다. YTN은 10년 차 이하 기자들이 참여하는 주니어보드를 구성해 보도국 현안 등에 대한 의견을 들을 계획이다.


주니어 기자들과의 소통기구가 생겨난 배경은 언론사마다 조금씩 차이가 있지만, 젊은 기자들의 목소리를 뉴스룸 운영에 반영해야 한다는 요구에서 출발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보수적인 위계질서의 언론사에서 기존의 의사전달 방식으론 젊은 기자들이 자유롭게 의견을 내기 힘들고, 선배들도 젊은 기자들 정서를 읽지 못한다는 걸 절감했다.



미디어 환경 변화 대응을 위해서도 주니어 기자들의 의견은 중요하다. 전국언론노조 SBS본부 주도로 전 직군 평사원 16명이 참여한 미래위원회가 지난해 11월 제안한 10가지 혁신안 중 5~10년 차 중심의 주니어 CP 제도가 있다. “현재 대중이 무엇을 원하는지 가장 잘 알고 있는 세대에게 프로그램 기획 단계부터 독립성을 부여하고 지상파의 낡은 틀을 깨고 OTT와 유튜브를 넘나들 수 있는 새로운 제작 문법을 실현할 터전을 만들자는 취지”라는 것이다. 이같은 논의는 신문사, 방송사 기자들에게도 적용할 수 있다. 뉴스룸 상층부가 따라가기 힘든 언론 환경 변화에 즉각 대응할 수 있는 젊은 기자들의 필요성이 대두된 것이다.


‘뉴스룸 운영에 상대적으로 경험이 적은 주니어 기자들의 의견을 받아들여도 되나’, ‘세대 간 갈등이 증폭될 수 있다’ 등 주니어 기자 소통기구를 바라보는 우려의 시선 또한 존재한다. 이에 대해 최하얀 한겨레 레드위원회 상임 위원은 이렇게 말한다. “주니어 기자들과 국장단 간의 가교역할을 하는 소통기구의 필요성 자체에 대해서는 한겨레 내에서 대체로 공감대가 있다. 다만 ‘원론적으로 편집국이 정상적인 상태라면 없어도 되는 조직이다. 편집국 정상화가 먼저 아니냐’고 얘기하는 분들도 있다. 틀린 말은 아니다. 한편으로는 소통기구의 필요성이 생기고 유지해야 한다는 요구가 있다는 점에 뼈아파야 하는 사람들이 분명 있다. 사회 문제는 현상으로서 문제를 구체적으로 언어화할 때 드러난다. 문제 제기한 후배의 의견이 부족한 점이 있다면 함께 토론하면서 언어화하는 작업이 반드시 필요하다.”


“워낙 연차 차이가 많아 막상 주니어보드 회의에서 젊은 기자들이 눈치를 보고 의견 내기 어려워할 줄 알았는데 웬걸, 기탄없는 발언들이 쏟아져 나왔다. 기자들의 생각을 짐작만 하는 것과 육성으로 이들의 애환을 직접 듣는 것은 차이가 있었다.”



지난달 31일 서울신문 주니어보드 첫 회의를 진행한 안미현 편집국장은 이렇게 소감을 전했다. 이날 회의에 참여한 기자들은 해당 기수 동료들의 요구사항을 취합해 지면, 업무 부담, 부당한 일에 대해 국장과 논의했다. 안미현 국장은 지난해 11월 편집국장 출마 당시 ‘주니어보드 도입’ 공약을 내걸었다. 중견이나 고참 기자에 비해 젊은 기자들의 의견이나 고충을 직접 들을 기회가 상대적으로 적은 만큼 별도 창구가 필요하다는 생각에서였다.


서울신문 주니어보드는 막내 기자부터 위로 여섯 기수 각 1명과 온라인부문 3개 부서 인원으로 구성돼 서울신문 지면 제작과 편집국 운영에 대해 편집국장과 직접 논의하는 회의체다. 회의는 두 달에 한 번 진행한다. 안 국장은 “편집국장 후보로 지명된 당시 노보에 실린 젊은 기자들의 의견을 기수별로 올려놓은 <차기 편집국장에게 바란다>를 꼼꼼히 읽었다. 나름대로 연령에 상관없이 소통하고 있다고 자부해 왔는데 글들을 읽어보니 생각하지 못한 문제점을 지적하는 부분들을 보게 됐다”며 “이들과 어쩔 수 없는 간극이 있다고 생각해 소통이 필요하다고 봤다”고 말했다.


주니어 기자 소통기구는 뉴스룸 안의 기성세대와 청년세대 간의 인식 차이를 깨달은 계기로 만들어진 측면이 크다.


한겨레 레드위원회는 ‘조국 전 법무부 장관 보도’를 놓고 국장단과 젊은 기자들 시각차로 인한 갈등에서 비롯됐다. 지난해 9월 당시 한겨레 6~7년차 이하 주니어 기자 31명은 자사의 ‘조국 관련 보도’를 ‘보도 참사’로 평가하며 박용현 편집국장과 국장단의 사퇴를 촉구하는 기명 성명을 발표했다. 성명에 나온 요구 조건 3가지 중 하나는 “현장기자 의견을 직접적·상시적으로 수렴할 수 있는 제도를 마련하라”였다. 이후 국장단은 편집국 쇄신안을 발표하며 기존에 있던 10년차 이하 기자로 구성된 레드팀을 편집국장 직속 ‘레드위원회’로 격상했다. 직제화된 레드위원회에는 상근 위원이 편집회의 등에 참여해 수시로 주니어 기자들 의견을 국장단에 전달하고 있다.


YTN의 두 번 연속 보도국장 임명동의안 부결 사태는 경영진이 현장에 있는 일선 기자들의 목소리를 전혀 파악하지 못했다는 방증이었다.


“주니어 기자들이 위쪽에 말을 해도 듣지 않은 느낌이다. 쉽게 이야기할 수 있는 분위기가 아니다.” 연이은 보도국장 임명동의안 부결 이후 정찬형 YTN 사장이 지난달 9일 개최한 ‘사원과의 대화’에서 나왔던 말이다. 부결 원인을 놓고 여러 분석이 있었지만, 그 기저에는 YTN에 자리 잡은 ‘소통 부재 분위기’가 깔려있었다. 두 번의 보도국장 부결 사태가 일어나기까지 YTN에서는 소통의 노력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사장이 사원과의 대화를 비롯해 두 차례의 보도국 기수별 간담회를 진행한 끝에 세 번째 보도국장 임명동의안은 통과될 수 있었다.


주니어보드 시행을 공약으로 내건 정재훈 YTN 보도국장은 “10년여에 걸친 기나긴 파업 투쟁 과정 이후 출범한 보도국에 젊은 기자들이 거는 기대가 많았지만, 실망감이 커진 것으로 알고 있다. 소통을 강화해 이들의 의견을 전달받아 활력있는 분위기로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했다”며 “YTN 기자협회와 협의해 구체적으로 운영 형태를 잡아갈 예정”이라고 말했다. YTN 한 기자는 “일과 능력 중심의 인사 평가 시스템이 YTN 보도국에 정착한다는 전제라면 주니어보드 제도 도입에 대해 긍정적으로 본다”며 “후배 기자들이 선배들 눈치 보지 않고 소신있게 말할 수 있는 소통 통로가 체계적으로 만들어져야 한다”고 말했다.


주니어 소통기구가 지속 가능하고, 뉴스룸의 변화를 이끄는 당당한 한 축으로 자리잡기 위해선 넘어야 할 과제도 적잖다. 주니어보드 회의에 참석한 한 서울신문 기자는 “평소 젊은 기자들은 편집국장을 직접 대면하기 어렵고 부서장이 같이 참석하는 자리에서만 볼 수 있어 쉽게 가질 수 없는 기회라고 생각했다. 말 그대로 중간 관리자 눈치를 안 보고 의견을 개진할 수 있었다. 의견이 얼마나 반영될지 모르겠지만, 이런 회의가 안정적으로 자리 잡았으면 한다”고 말했다.


임지선 한겨레 참여소통데스크는 “서로에 대해 잘 몰라서 갈등이 커진 경우도 많다. 지면 결정에 대한 답답함, 의문이 들었을 때 회의 내용을 알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이해할 수 있다는 피드백이 나오기도 했다”며 “레드위원회를 통해 주니어 기자들은 적극적으로 의견을 내고 편집국 운영에 대해 깊은 고민을 하는 경험을 쌓고 있다”고 설명했다.


박지은 기자 jeeniep@journalist.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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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근 기자가 50여명 의견 구체적으로 분석·정리… 소통기구 지속되려면 참여자들도 책임감 가져야”

[한겨레 '레드위원회'는?]

한겨레 편집국 한가운데에는 편집국장과 에디터 세 명의 책상이 원형으로 자리잡고 있다. 지난해 11월, 그 사이에 책상 하나가 더 들어왔다. 레드위원회 상임위원의 자리다. 지난해 9월 박용현 편집국장의 쇄신안 발표 이후 레드 위원회에는 에디터 권한을 가진 기자가 상근하고 있다.


최하얀 기자는 1월부터 10년 차 이하 기자 57명으로 구성된 레드위원회의 두 번째 상임위원을 맡고 있다. 레드위원회 상임위원은 두 달에서 석 달 간격으로 바뀐다. 젊은 기자들이 소속 부서에서 오랫동안 빠져있기에 부담이 되기 때문이다. 최 상임위원은 “하루종일 카톡하는 게 일”이라고 했다. 예를 들어 레드위원들이 카톡으로 ‘어제자 1면에 왜 이 기사가 들어간거냐’, ‘보도에 나온 설문조사 질문 자체가 잘못된 게 아니냐’는 등의 의견을 주면 이를 정리해 국장단에게 전달하는 식이다. 50여명이 쏟아낸 의견을 “씨줄과 날줄로 엮어내는 것”만으로도 많은 에너지가 필요한 작업이다. 그는 편집회의와 사내 포상심의 회의, 국장과 정례모임 등도 참석한다. 주니어 기자들이 프로젝트나 기획을 추진하고 싶다면 레드위원회 권한으로 TF를 꾸릴 수도 있다. 레드위원회가 편집국 내부에 자연스레 자리잡는데 첫 상임 위원으로 일한 박다해 기자의 공이 컸다고 최 상임위원은 전했다.


최 상임위원은 “먼저 기자에게 말을 걸기도 한다. 2~3년 차에게 제가 어려운 선배일 수도 있다”며 “창구는 있는데 의견이 모이지 않을 때는 현재 문제가 없거나, 문제가 방임돼 있다는 의미다. 이 두가지 경우를 파악하기 위해 촉을 세워야 하다 보니 하루종일 카톡을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주니어 기자뿐만 아니라 선배 기자들도 어떤 사안에 대해 후배 기자들의 생각을 알고 싶어 연락이 자주 온다”며 “국장단의 주니어 기자들을 향한 메시지 전달도 계속 이뤄지고 있다”고 덧붙였다.


최 상임위원은 주니어 소통기구의 지속 가능성을 위해서는 참여하는 사람들의 책임감도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상하다’, ‘부적절하다’, ‘불편하다’ 등 단순 감상에 그친 의견은 전달하지 않는다는 원칙이 있다. 문제를 제기하는 기자에게도 구체적인 분석으로 정리해야만 의견을 전달할 수 있다고 말한다”며 “내부에서 토론을 얼마나 많이 하냐에 따라 의견을 전달하는 무게감이 다르다고 본다”고 했다.


박지은 기자 jeeniep@journalist.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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