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추석은 처음’이었다가, ‘이런 설이 처음’이었는데, 코로나19 여파로 ‘이런 불경기가 처음’입니다. 자영업은 대란, 중소기업은 몰락, 경제는 파탄이라고 하네요.
그런데 골프장은 손님이 넘쳐납니다. 회원권 가격은 오히려 올랐습니다. 7000만원이 넘는 현대차의 GV80은 10일 만에 2만대가 팔렸습니다. 벤츠는 더 잘 팔립니다. 지난해 7만8000대, 7조원어치가 팔렸습니다.(덕분에 우리 국민은 이제 K5보다 벤츠 E시리즈를 더 많이 탄다) 참 이상합니다.
그런데 어렵고 망한다는 업종들 대부분이 재래업종들입니다. 치킨집에서 방직공장, 인쇄소 골목처럼, ‘시대에 밀리는’ 업종들입니다. 배달 플랫폼 시장이 5조원을 넘어서는데, 충무로 전단지 인쇄골목이 과연 경기가 좋을까? 우리 경제에 실을 짜는 방직공장이 호황일 수 있을까?(그럼 나이키의 나라 미국에 왜 나이키 운동화 공장은 하나도 없을까?)
우리 경제(GDP)는 이미 호주와 캐나다, 스페인을 넘어섰습니다. 코스피 상장사 중 20위권인 KT나 현대제철의 매출이 20조원을 훌쩍 넘습니다. 지역의 백화점 한 곳의 매출이 1년 1조원을 뛰어 넘습니다.(부산 롯데백화점/2019년) 명동 롯데백화점에 가면 1년 1억원 이상 쓰는 고객을 위한 레니드라운지가 따로 있습니다. 이들은 PSR이라는 방에서 따로 쇼핑을 합니다. 1억원짜리 시계가 드물지 않게 팔립니다.(우리가 이름을 아는 시계는 이미 명품이 아니다) 결국 경기가 어려운 게 아니고 격차가 벌어지는 겁니다.
시중 4개은행의 10억원 이상 정기예금 잔액이 293조나 됩니다.(한국은행/2019년) 1억원 이하 예금보다 두세 배 속도로 늘고 있습니다. 쓸 곳(투자할 곳)이 없다는 뜻이고, 쓸 거 다 써도 자꾸 남는다는 뜻입니다. 최소 1억원 이상 투자해야 하는 사모펀드 가입 잔액만 23조9000억원.(2019년 12월/금융투자협회) 그러니 우리 경제는 예전 수출 10억 달러(?) 시대의 경제가 아닙니다. 우리는 휴대폰만 1년 100억 달러 이상 수출합니다. 예를 들어 우리 국민 9만3000여명(배당 소득 상위 1%)이 지난해 배당소득으로만 13조 5000억원을 가져갑니다. 우리 경제의 아랫목은 이렇게 뜨겁다 못해 펄펄 끓습니다.
그런데 자꾸 윗목만 보며 우리 경제가 차갑게 식어간다고 합니다. 위기라고 합니다. 파탄날 거라고 합니다.
자꾸 망한다고 재래업종만 쳐다보니, 미래업종을 살릴 논의는 자꾸 뒤로 밀립니다. ‘큰일났다’는 목소리가 너무 커서, ‘한번 해보자’는 목소리가 설 땅이 없습니다. 택시업종 망한다고 걱정만 하다, 결국 ‘타다’같은 신사업은 죽이기로 결정합니다. 앞은 안보고 자꾸 뒤만 봅니다. 예컨대 매출이 급감하는 오토바이 산업을 지원하면 우리 경제가 좋아질까? 청년들은 죄다 세그웨이나 전동킥보드를 타는데….
코로나19는 언젠가 물러날 겁니다. 이제 우리 경제를 살릴 수 있는 이야기를 하면 좋겠습니다. 구체적 대안을 제시하고, 커지는 격차에 대한 논의도 좀 하면 좋겠습니다. 우리경제 망한다는 이야기는 그만하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하나만 더. 언론의 부자 걱정 좀 그만하면 좋겠습니다. 참고로 우리 국민의 개인 예금은 623조입니다.(2019년 7월/금감원) 그중 상위 1%는 얼마나 갖고 있을까. 283조입니다. 만약 우리 경제가 진짜 망한다면, 그것은 ‘격차’ 때문이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