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차별 채용' 대전MBC, 인권위 시정권고도 무시

1990년대 이후 채용한 정규직 아나운서 모두 남성
1997년부터 작년까지 채용한 계약·프리 아나운서는 모두 여성

국가인권위원회가 여성 아나운서들을 계약직이나 프리랜서로 뽑아온 대전MBC에 성차별 관행을 시정하라고 권고했다. 대전MBC는 사실상 수용 불가 입장을 밝혔고, 언론·시민단체들은 대전MBC에 권고 이행을 촉구했다.


인권위는 지난 17일 대전MBC가 성별을 이유로 고용 형태를 달리 한 것이 차별행위임을 인정하고 대전MBC에 △성차별적 채용 관행 해소를 위한 대책 마련 권고 △정규직 아나운서와 동일 업무를 수행한 여성 아나운서 2명 정규직 전환 △인권위 진정을 이유로 한 불이익에 대한 위로금 500만원 지급 등을 권고하는 결정문을 발표했다.


사진=대전MBC 아나운서 채용 성차별 문제해결을 위한 공동대책위 제공.

인권위 조사 결과에 따르면 대전MBC가 1990년대 이후 채용한 정규직 아나운서는 모두 남성이었던 반면 1997년부터 인권위 진정이 제기된 지난해 6월까지 채용한 20명의 계약직·프리랜서 아나운서는 모두 여성이었다. 인권위는 여성 아나운서들의 업무 내용은 형태만 프리랜서일 뿐 사실상 근로자로서 남성 정규직 아나운서와 동일한 업무를 수행했고, 여성 아나운서를 프리랜서로 전환해 채용할만한 합리적 사유가 없다고 봤다.


대전MBC는 인권위가 권고한 ‘여성 아나운서 2명 정규직 전환’과 ‘불이익을 당한 데 대한 위로금 500만원 지급’은 수용하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대전MBC 관계자는 지난 18일 기자협회보와의 통화에서 “성차별적 채용 관행이라는 인권위 판단이 나온 것에 대해 유감을 표한다”며 “앞으로 성별 채용 불균형이 발생하지 않도록 유념하겠지만, 권고사항 중 정규직 전환 부분은 수용하기 어렵다. 방송 진행을 정규직 업무와 본질적으로 동일하다고 판단한 인권위 결정문 부분 때문이다. 근로자 지위에 대한 다툼의 소지가 존재한다”고 밝혔다.


앞서 지난해 6월 유지은 대전MBC 아나운서를 포함한 여성 프리랜서 아나운서 2명은 대전MBC를 상대로 인권위에 채용 성차별 진정을 제기했다. 대전MBC 입장에 대해 유지은 아나운서는 “인권위 권고가 나왔으니 당사자인 저에게 대전MBC 측에서 어떤 답변이 올 거라고 생각했지만, 기사를 통해서만 대전MBC 입장을 알게 된 황당한 상황”이라며 “거의 법원 판결문 수준으로 나온 인권위 결정문과 권고를 사실상 무시한다고밖에 볼 수 없다. 인권위 결과를 어떻게 수용할 것인지, 수용하지 않는다면 어떠한 이유로 하지 않는지, 대책 마련을 어떻게 할 것인지, 대전MBC의 공식 발표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인권위 권고를 이행하라는 대전MBC를 향한 비판의 목소리도 이어지고 있다. 지난 18일 서울 상암동 MBC와 대전 유성구 대전MBC 사옥 앞에서 열린 ‘대전MBC 아나운서 채용 성차별 문제해결을 위한 공동대책위’ 기자회견에서 신상아 한국여성노동자회 사무국장은 “여성 아나운서를 ‘얼굴, 간판’으로 대상화하여 소비하고, 남성 아나운서의 보조역할로 생각하는 뿌리 깊은 성차별적 관행이 자리하고 있어 그동안 수많은 여성 노동자들은 합리적인 이유 없이, 이 낡은 관행 때문에 취업 관문에서부터 배제당해 왔다”며 “대전MBC와 MBC본사는 인권위의 결정을 겸허히 받아들이고, 유지은 아나운서의 정규직화를 시작으로 방송국 내 성별 분리채용을 근절하는 데 앞장서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전국언론노조 성평등위원회도 지난 22일 성명에서 “대전MBC는 1997년부터 인권위에 진정이 제기된 2019년까지 약 22년간 채용된 20명의 계약직·프리랜서 아나운서는 모두 여성이라는 인권위의 조사 결과를 기억해야 한다”며 “여성 계약직·프리랜서 아나운서들이 여성이라는 이유 하나로 고용 관계가 단절될 수 있는 불안정한 환경에 놓이고 불리한 대우를 받아온 사실에 대해 철저히 반성하고 인권위의 권고를 성실히 이행하라”고 지적했다.


박지은 기자 jeeniep@journalist.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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