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신문 자산가치 3400억… 공매, 어딘가 헐값에 넘기는 의도"

기재부서 지분매각 통보 받은 서울신문우리사주, 오늘부터 14일까지 공매 저지 찬반투표

“공개매각 자체는 3400억원이 넘는 자산가치를 가진 서울신문을 어딘가에 헐값으로 넘기겠다는 의도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지난해 6월 급작스럽게 호반건설을 3대 주주로 맞았던 서울신문이 1년여만에 1대 주주인 기획재정부로부터 지분 매각 통보를 받았다. 지난달 26일 기재부는 서울신문 측에 서울신문 지분 30%를 매각하겠다는 입장을 전했다. 기재부는 서울신문 우리사주조합이 지분을 인수하는 안을 제안해 이달 말까지 의견을 달라고 했고, 그 이후에도 처리가 되지 않으면 공개매각 절차에 들어간다고 밝혔다. 기재부의 통보에 서울신문 내부는 “회사가 건설 자본에 넘어갈 수 있다”는 위기감이 팽배하다. 우리사주조합은 8~14일 ‘정부의 일방적인 서울신문 지분 공개매각 방침 저지 찬반 투표’를 실시하며 정부의 매각 의사 철회를 위한 본격적인 대응에 나선다.



기재부가 밝힌 지분 매각의 이유로는 코로나19에 따른 국가채무비율 상승과 정부 재정의 압박 등이 있다. 기재부 국고국 출자관리과 관계자는 “정부가 언론사 지분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부적절하다는 취지”라며 “정부의 지분을 매각하라는 청와대 재정전략회의가 있었다. 우리가 매각할 수 있는 게 뭔가 검토해보니 서울신문이 나온거다. 다만 2018년 7월 기재부와 우리사주조합이 약속한 게 있어 서울신문에 우선 협의 요청을 한 것”이라고 밝혔다.


기재부가 언급한 서울신문과의 약속은 지난 2018년 7월 맺어진 ‘서울신문 독립언론 추진을 위한 협약’을 의미한다. 고광헌 사장과 우리사주조합, 기재부가 동의한 협약에는 △사주조합을 서울신문사 1대 주주로 만들기 위해 노력 △‘서울신문독립추진위원회’ 설치·운영 △위원회는 서울신문 독립에 필요한 소유구조 개편, 사장추천위원회 구성·운영 방식 등 최적의 대안 마련 등이 담겼다.


정부 소유 지분 문제는 과거 정부서부터 있었던 해묵은 과제였다. 정부가 1대 주주인 소유구조로 인해 서울신문은 사장 선임 시기마다 정부가 내려보낸 ‘낙하산 사장’ 논란으로 내홍을 겪었다. 그간 서울신문 구성원은 독립 언론을 위한 길을 모색하고 있었다. 2001년 김대중 정부 때 이뤄진 소유구조 개편으로 서울신문 사원들은 상여금 삭감, 기본급 인상분, 퇴직금 일부 등을 출자 전환해 당시 정부 지분은 50%에서 30.5%로 변경되고, 우리사주조합이 39.0% 지분을 가진 서울신문 1대 주주가 됐다. 하지만 이후 사원 퇴사 등으로 우리사주조합 지분 비율이 낮아짐에 따라 2015년부터 2대 주주였던 기획재정부가 1대 주주로 올라섰다.


이번에 이뤄진 기재부의 서울신문 지분 매각 움직임은 과정부터 무리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인수 대금만 수백억원에 달하는 주식 매입 여부를 한달 안에 결정하라는 요구는 공개매각으로 가기 위한 형식적 절차에 불과하다는 문제 제기가 잇따른다. 우리사주조합은 지난 1일 발표한 투표 공고문에서 “권력으로부터는 물론 자본으로부터도 독립하고, 나아가 회사 내부의 공공성, 민주성, 자율성이 보장되는 것이 진정한 독립”이라며 “문재인 대통령을 포함한 홍남기 경제부총리 등이 여러 차례 공개적으로 약속한 언론의 독립성과도 완전히 상반되는 행위”라고 비판했다.


또 다른 기재부 관계자는 ‘한달’이라는 기한에 대해 “한달이 짧다고 보지 않는다. 현재 기재부가 우리사주조합에 의견을 요청해 사주조합이 고민하고 있는 상태다. 우리사주조합이 어떤 식으로든 답을 줄거라고 보고 내놓는 여러 가지 대안을 기대한다”며 “우리사주조합의 의견에 대해 검토하는 절차도 이뤄질 것”이라고 밝혔다.



기재부가 밝힌 매각 명분에 대해 우리사주조합은 정면으로 반박하고 있다. 박록삼 우리사주조합장은 “언론사 지분은 미디어 정책의 일환으로 취급돼야 하는 것이 맞다. 기재부의 명분은 국가채무비율을 낮춘다는 데 있지만, 서울신문의 지분을 공개 매각한다고 해서 국고는 결코 넉넉해질 수 없다. 정부가 우리사주조합에 지분을 넘길 의사가 명확하다면 재정 확충 차원이 아닌 미디어 정책 차원에서 서울신문 독립 언론의 길과 방법을 더 진지하면서도 적극적으로 상의했어야 했다”고 말했다.


이어 “공개매각은 반드시 특혜 시비로 이어진다”며 “기재부가 서울신문 지분을 얼마에 팔려는지 모르지만, 알짜배기 땅을 포함한 프레스센터 건물 등을 합쳐 3400억원의 자산 가치가 있는 서울신문을 불과 몇 백억원 남짓의 매각 대금으로 특정 기업에 매각한다면 이는 명백한 특혜”라고 했다.


공개매각으로 회사가 민간 기업에 넘어갈 수도 있다는 소식에 서울신문 기자들은 회사 미래에 대한 걱정과 함께 정부의 미디어 정책 실종에 대한 우려도 나타냈다. 서울신문 A 기자는 “기재부, 우리사주조합의 지분구조로 서울신문이 나름대로는 균형과 견제가 이뤄져왔다고 본다. 서울신문이 공영성을 가질 수 있는 발판이기도 해 기자들은 공익적인 기사를 써오려고 노력하고 있다”며 “정부가 단순히 언론사 지분을 가지고 있느냐 마느냐 차원의 문제를 넘어서서 언론사가 사기업으로 넘어간다면 그 문제는 어떻게 하겠다는 건지 고민과 공론화 과정도 없이 매각하겠다는 의사만 있다. 그래도 정부가 수십년 동안 최대주주였는데 어떠한 대안도 주지 않았다”고 말했다.


문소영 서울신문 논설실장은 “정부가 사회적 공기인 언론을 매각하는 것이 과연 긍정적인지에 대한 질문이 선행돼야 한다. 누가 살 거냐, 어떻게 매입할거냐 등은 부차적인 문제”라며 “어떤 정치세력이 서울신문 매각에 따른 이익을 보는지 알 수는 없지만, 정부 지분 매각은 현재의 언론 지형 등을 고려할 때 매각에 따른 득실을 따져보면 당장은 눈에 안 보여도 점차 공론장을 악화시키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달 기한을 주며 지분을 처분하겠다는 기재부의 행보를 보면 특정 기업에 서울신문을 넘기려는 의도라는 의심을 거두기 힘들어 보인다. 지난해 6월 호반건설이 포스코가 보유했던 서울신문 지분 19.4%를 전량 매입해 3대 주주가 됐다는 소식에 서울신문 내부는 충격에 휩싸인 바 있다. 당시에도 내부에선 ‘호반이 기재부가 가진 서울신문 지분까지 가져가는 것 아니냐’는 위기감이 고조됐다. 서울신문 구성원은 지난해 7월 만민공동회를 개최해 호반의 주식 매입을 언론 사유화를 위한 적대적 M&A로 규정짓고 ‘우리사주조합 1대 주주 지위복원’ 등을 대응 방안으로 결의한 바 있다. 지난 2월에는 우리사주조합의 동의 없이는 호반건설은 추가로 지분을 매입하지 않는다는 내용 등이 담긴 ‘호반건설과 서울신문의 발전 및 주주 간 상생을 위한 양해각서’가 체결되기도 했다.


기자들은 결국 호반건설에 서울신문을 넘기는 수순대로 가고 있다고 봤다. 서울신문 B 기자는 “호반건설이 포스코가 보유했던 서울신문 지분을 매입해 3대 주주가 된 당시 사원들 사이에선 ‘호반건설이 최대주주가 되면 앞으로 기자들은 부동산 기사만 써야 하는 것 아니냐’, ‘이러다 기자들도 영업하러 다녀야 할 수도 있겠다’는 우려가 있었던 것도 사실”이라며 “기재부가 서울신문 지분을 공개매각하고, 그 지분을 사기업이 매입한다면 공익을 대변하지 못하고 오너의 이익에만 충실한 기사를 쓸 수도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A 기자는 “특별히 의심할 수밖에 없는 건 정부가 수십년 동안 이어져 온 지분구조를 한달만에 결정하라는 것과 호반이라는 전례가 있기 때문”이라며 “하나의 건설사에 이익을 주기 위한 움직임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호반건설 관계자는 기재부의 지분 매각 의사 공식화와 관련해 “3대 주주로서 지켜보는 수준이다. 이번 소식도 간접적으로 들은 정도라 호반건설이 입장을 표명하기도 어렵다”며 “서울신문과 호반이 상생협약을 했기 때문에 서울신문 측에서 호반에 관련 의사를 물으면 그때 답변을 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밝혔다.


서울신문 사주조합원들은 ‘정부의 일방적인 서울신문 지분 공개매각 방침 저지 찬반 투표’를 앞두고 있다. 한편으로 정부의 지분 매각 방침이 우리사주조합이 1대 주주가 될 기회로 작용할 수 있다. 우리사주조합은 정부의 공개매각 시도 저지에 힘을 실으면서 매각 강행에 대한 대비책도 세우고 있다고 밝혔다. 박 조합장은 “서울신문 모든 구성원이 하나로 똘똘 뭉친다면 정부가 현재 추진하는 명분도 없고, 실리도 없는 공개매각은 얼마든지 막을 수 있다”면서 “사주조합원의 부담을 최소화하면서도 정부 지분을 인수할 방법은 충분하다. 사주조합은 이미 여러 가지 매우 현실적인 방법을 논의하고,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박지은 기자 jeeniep@journalist.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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