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언유착" vs "권언유착"… 설 곳 없는 저널리즘

[형사소송 대상 된 언론의 취재보도]
검언유착 의혹으로 시작된 사건서
방통위원장 거론 '권언유착' 의혹 비화
명확한 실체없이 진영논리만 무성

‘검언유착’이냐 ‘권언유착’이냐. 꼬리를 무는 의혹들로 언론이 수렁에 빠졌다. 의혹 자체만으로도 검언유착, 권언유착이 사실로 단정되고, 실체가 불분명하거나 근거 없는 주장까지 해당 프레임으로 수렴되는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은 어느 쪽이든, 그 중심에 언론이 있다는 것이다. 언론은 지금 검찰 또는 정치권력을 고발하는 행위자가 아닌 그들과 유착·결탁한 당사자라는 의심을 사고 있다. 이 같은 의심·의혹은 저널리즘 영역 안에서 소명되거나 자정으로 이어지지 않고, 언론의 취재·보도 행위 자체를 형사 소송의 대상으로 이끌고 있다.


민주언론시민연합은 지난 6월15일 채널A 기자들을 강요죄로 추가 고발하는 고발장을 서울중앙지검에 제출했다. 왼쪽부터 오정훈 언론노조 위원장, 김서중 민언련 상임공동대표, 법률대리인 이대호 변호사. /언론노조

지난 3월31일 MBC ‘뉴스데스크’가 채널A 기자가 현직 검사장과의 친분을 내세워 여권 인사의 비리 제보를 압박했다고 보도하면서 이른바 검언유착 파문이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반응은 크게 두 갈래로 나뉘었다. MBC 보도를 인용하며 진상 규명 및 처벌을 요구하는 쪽과 MBC 보도에 여권 인사들이 연루됐을 가능성을 제기하며 ‘윤석열 흔들기’로 보는 시각이었다. 이는 바로 고발전으로 이어졌다. 민주언론시민연합은 MBC 최초 보도 일주일만인 지난 4월6일 이동재 채널A 기자와 추후 한동훈 검사장으로 밝혀진 ‘성명불상의 검사’를 협박죄로 검찰에 고발했다. 반면 4월20일 보수성향 시민단체인 자유민주국민연합은 MBC가 허위사실을 유포했다며 박성제 사장 등을 명예훼손과 업무방해 혐의로 고발했다. 민언련은 채널A가 지난 5월 발표한 자체 진상조사 결과를 토대로 기자 3명을 강요죄로 추가 고발하기도 했다.


관련 사건을 둘러싸고 법무부와 검찰이 갈등을 빚었고, 지난달 2일 추미애 장관이 수사지휘권을 발동하면서 정치적으로도 격랑이 일었다. 이 전 기자는 지난달 17일 강요미수 혐의로 구속됐다.


분위기가 달라진 건 이때부터다. KBS는 이 전 기자가 구속된 다음 날 검언유착의 정황이 담긴 증거라며 한 검사장과의 대화 녹취록을 보도했는데, 금방 사실이 아닌 것으로 드러났다. KBS는 바로 다음 날 뉴스에서 사과했지만, 파문은 가라앉지 않았다. 보수 정치권과 보수 매체 등에 의해 ‘청부 보도’ 주장이 확산하고 검찰 고위 관계자, 친여권 인사 개입 의혹 등이 제기되면서 이번엔 KBS가 검언유착, 나아가 권언유착의 당사자로 지목됐다. KBS노동조합과 공영노조는 외부 인사들과 함께 ‘공영방송 KBS 검언유착 의혹사건 진상조사위원회’를 꾸리고 양승동 사장과 보도본부장, 법조팀 기자 등 9명을 검찰에 고발했다. 비슷한 내용의 녹취록을 보도했던 MBC도 같은 혐의로 고발됐다. 한동훈 검사장은 지난 4일 KBS 기자와 간부 등 8명을 상대로 5억원대의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한 검사장은 또 “이 사건을 ‘검언유착’이라고 왜곡해 부르는 것을 자제해 달라”면서 ‘권언유착’에 대한 수사를 요청하기도 했다.


KBS 검언유착 의혹 사건 진상조사위원회 관계자들이 지난 5일 서울중앙지검에 허위·왜곡 보도와 공영방송 업무방해 등의 혐의로 KBS와 MBC에 대한 고발장 접수를 하고 있다. /뉴시스

검언유착 의혹으로 시작한 사건은 최근 한상혁 방송통신위원장 등이 거론되는 권언유착 의혹으로 비화했다. 숱한 의혹이 제기되고 수많은 보도가 쏟아졌지만, 실체가 명확히 드러난 것은 거의 없다. 그런데 진영 논리 등에 따라 어느 한쪽의 검언유착 의혹은 부정되고, 다른 한쪽의 검언유착 의혹은 기정사실로 받아들여지기도 한다. 이 전 기자 공소장 관련 보도만 해도 상반된 태도가 확인된다. 그러면서 언론의 취재와 보도를 평가하고 책임을 묻는 것은 사법적 영역으로 넘어갔다. 언론단체 한 관계자는 “언론 취재 과정에 대한 의혹을 형사 절차를 통해 해결하려는 시도가 난무하는 현 상황을 심각히 우려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런 우려의 목소리를 공개적으로 내는 언론단체를 찾기란 어렵다. 자칫 ‘내로남불’이란 비판에 직면할 수 있기 때문이다. 검언유착과 관련해 최초로 고발을 제기한 쪽이 언론시민단체인 민언련이라는 점도 이와 무관치 않다. 익명을 요구한 또 다른 언론단체 관계자는 “결국 남은 것은 검언유착이냐, 권언유착이냐 하는 행위 뿐”이라며 “애초에 가리키려던 게 달이었는지 태양이었는지는 알 수 없게 되고 손가락만 계속 얘기하는 상황”이라고 꼬집었다.


검언유착 의혹의 한 축인 검찰에 진상 규명을 맡기는 것이 합당한가 하는 문제 제기도 나온다. 전국언론노조 KBS본부는 11일 성명에서 “의혹은 검찰의 손이 아니라 KBS인의 손으로 풀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녹취록 오보’ 파동과 관련해 지난달 30일 열린 공정방송위원회에서 청부 등은 없었다는 데 노사가 공감하고도 소수노조 등이 경영진과 동료 기자들을 고발한 것을 비판한 것이다. KBS본부는 “검찰 또한 언론이 감시해야 할 대상인데, KBS의 운명을 검찰의 손에 맡기는 선례가 앞으로 어떤 파장을 낳을 것인지 신중해야 했다”고 지적했다. ‘정치적 오보’를 주장하며 고발하는 행위 자체에 ‘정치적 의미’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KBS본부 관계자는 “다만 남은 의혹이 있다면 해소하는 게 맞다”며 추가 공방위 개최 등을 추진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KBS는 조만간 인사위원회를 열어 보도 관련자 5명의 징계 수위를 논의한다.


김고은 기자 nowar@journalist.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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