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의 어법, 왜 바꿨나

[기고] 김상수 강원도민일보 논설실장

김상수 강원도민일보 논설실장 | 2020.08.13 18:17:17

김상수 강원도민일보 논설실장 지금은 많이 달라졌지만, 언론 특히 신문이 권위적이라는 지적을 받아온 것은 그동안 사용해 온 언어와도 무관치 않을 것이다. 특히 신문 사설은 딱딱하고 권위적이라는 이미지가 굳어 있는데, 구사되는 어투가 거칠고 경직된 탓이 적지 않다고 본다. 이런 천편일률적인 언어가 오랜 기간 무비판적으로 사용되면서 부정적 인식이 고착화된 것이다.


강원도민일보는 지난해 1월부터 사설의 문체를 평어체에서 경어체로 바꿨다. 아직 어느 곳에서도 시도하지 않은 결정이어서 위험부담이 적지 않았다. 모두가 가는 쉬운 길을 벗어나 새로운 길을 개척한다는 것은 간단한 일이 아니고 그 결정 또한 쉽지 않았다. 그러나 시시각각 달라지고 있는 언론 주변 환경을 감안하면 낡은 관행과 과거의 표준에 안주하는 것이 과연 옳은 것인가 의문을 떨쳐낼 수 없었다.


이런 위기의식과 언론 현실에 대한 성찰이 더이상 무난함에 머무를 수 없게 하였고, 아무도 가지 않은 길로 나서게 만들었다. 사설을 존댓말로 쓴다는 데 이론이 없지 않았다. 그 좋은 취지에도 불구하고 사설이 지닐 수밖에 없는 상징성과 지면의 중심을 잡아야 하는 역할의 무게를 과연 이 연성 화법이 감당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당연한 문제 제기가 있었던 것이다. 사설 경어체의 도입은 시대변화에 맞게 바꿔야 한다는 무언의 압력과 정통의 화법을 지켜야 한다는 오랜 관성이 충돌하는 가운데 이뤄진 것이다.


이런 길항(拮抗)은 비단 언론뿐만 아니라 사회 전반에 깔려있다. 특히 연초 시작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으로 전방위적 패러다임의 전환이 불가피한 상황에 놓여있음을 감안할 때 더욱 그렇다. 사설 경어체 전환 또한 그런 시대변화의 맥락 위에서 이뤄졌고, 이런 점에서 스스로의 의지 못지않게 이처럼 도도한 시대의 조류가 등을 떠민 결과이기도 할 것이다.


주변을 돌아보면 이런 변화의 압력을 우리만 받아온 것이 아니라는 징후가 여러 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제주에서 발행되는 한라일보도 얼마 뒤 사설을 경어체로 쓰기 시작했는데 앞으로 이런 흐름은 더 확산될 것으로 믿고 또 기대한다. 언론뿐만 아니라 법조계와 정치권에서도 이 같은 현상이 번져가고 있어, 그 추이를 흥미롭게 지켜보게 된다. 법조계와 정치권 또한 언론 못지않게 권위적이고 수용자 혹은 민심으로부터 동떨어져 있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법원 판결문은 전문용어 과다사용과 권위적 어투로 인해 어렵다는 지적과 불만을 들어왔다. 최근 놀라운 변화가 일고 있는데, 대전고등법원 이인석 판사가 지난해 1월부터 판결문을 경어체로 쓰기 시작한 것이다. 이 판사는 한 언론과의 인터뷰를 통해 판결문을 쉽게 쓰는 것은 국민 존중과 연결돼 있다고 밝혔다. 법원 판결문이나 신문 사설을 읽는 사람은 보통 국민이요 일반 독자다. 어투의 변화가 그저 형식의 문제가 아니라 수용자를 대하는 태도의 변화라는 것이다. 이런 기류는 정치권에서도 보인다. 더불어민주당은 지난달 국회 개원과 동시에 서면 논평을 평어체에서 경어체로 바꿨는데 국민을 섬기고 품격 있는 국회를 만들기 위해서라고 한다.


사설의 존댓말 쓰기가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다. 그 뜻은 그럴듯하나 궁극을 향한 칼끝을 무디게 한다거나 공대가 지나쳐 논지를 흐려놓을 위험이 없지 않다. 시비를 가려야 할 일과 선한 기풍을 진작하고 귀감으로 삼아야할 일의 경계를 모호하게 한다면 시작하지 않는 편이 좋았을 것이다. 존댓말 사설은 언론과 수용자 간의 ‘최소한의 예’를 갖추자는 것이다. 그 예의 그물망이 독단에 빠지고 일방적 감정에 편승하는 것을 걸러줄 것이다. 이 장치가 자기검증의 족쇄가 아니라 과한 것을 덜어내고 모자란 것을 보완하는 순기능을 하게 되기를 바란다.


사설에도 여러 변주가 필요한 것이 아닌가. 평어체가 하대는 아니지만 때로 행간에 그런 오만이 스몄던 것은 아닌가. 수용자를 향해 일방적으로 쏟아내는 필법을 ‘전가의 보도’처럼 휘둘러온 것은 아닌가. 이런 작은 의문에서 시작된 것이 존댓말 사설쓰기다. 말의 거품을 걷어낸 자리에 뜻을 살려내는 것이 관건이다. 이번 거사(?)가 성공하는 단 하나의 길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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