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협회보가 지령 2000호 발행을 맞아 문재인 대통령과 서면 인터뷰를 했다. 기자협회보가 현직 대통령과 인터뷰한 것은 1999년 5월 지령 1000호를 기념해 김대중 대통령과 가진 서면 인터뷰 이후 두 번째다. 문재인 대통령은 “기자협회보는 매우 중요한 언론의 역할을 수행해 왔다”며 “언론을 언론답게 만드는 힘은 기자들에게서 나온다. 성찰과 비판을 통해 언론이 올바른 방향으로 발전해 나가는 데 기자협회보가 계속 노력해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기자협회는 7월 중순 청와대에 기자협회보 지령 2000호 기념 문재인 대통령 인터뷰를 요청했다. 약 한 달 반 후인 9월 초에 서면 인터뷰가 가능하다는 연락을 받았다. 이후 내부 논의를 거듭하며 질문거리를 만들고 청와대 실무진과 인터뷰 질문을 검토, 조율하는 과정을 거쳤다. 일주일 새 전화와 문자, 이메일이 수차례 오갔다. 안타깝게도 정부의 서울신문 지분 매각, YTN 지분 매각설 관련 질문 등이 포함되지 못했다. 아래는 일문일답.
-김대중 대통령에 이어 현직 대통령으로는 두 번째로 기자협회보와 인터뷰를 하게 되셨습니다. 대통령께서는 2011년 11월 법무법인 부산 사무실에서 가진 기자협회보와 인터뷰에서 “정치 권력과 자본의 억압을 뚫고 진실을 전하고 언론자유를 지키는 것이 기자들의 본분”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때 말씀하신 기자의 본분은 지금도 유효하다고 보시는지요. 그리고 지금 기자들이 기자로서의 본분을 얼마나 다하고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기자협회보 지령 2000호를 축하드리며, 귀한 지면에 인터뷰를 하게 되어 영광입니다. 기자협회보는 단순한 소식지를 넘어 그 자체로 매우 중요한 언론의 역할을 수행해 왔습니다. 기자협회보 지령 1000호 기념으로 김대중 대통령께서 인터뷰를 하신 이후 제가 2000호 기념 인터뷰를 갖게 되어 더욱 뜻깊습니다.
기자는 진실을 찾는 사람들입니다. 진실이 필요한 곳, 진실이 있어야 할 모든 현장에 기자들이 있었습니다. 언론의 사명을 잃지 않은 기자정신이 있었기에 한국의 언론은 오랜 권위주의 시대를 거치면서도 어느 나라 못지않게 언론의 자유를 신장시켜올 수 있었습니다. 그 덕분에 한국의 민주주의도 크게 발전할 수 있었습니다. 언론이 걸어온 가시밭길을 되돌아볼수록 늘 자랑스럽게 여깁니다. 이제 신장된 자유만큼 그에 따르는 책임까지 함께 성찰해준다면, 더 크고 넓을 뿐 아니라 더 신뢰받는 ‘언론자유의 시대’를 열 수 있을 것이라 믿습니다.”
-고 이용마 기자를 두 차례(2016년 12월, 2019년 2월) 병문안할 정도로 각별하셨습니다. 지난해 8월 이 기자가 세상을 떠나자 “이용마 기자의 이름은 ‘언론자유’를 위한 투쟁의 역사에 길이 남을 것”이라고 추모하셨죠. 이 기자와의 인연이나 대통령님의 삶에 영향을 끼친 언론인이 있다면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이용마 기자가 우리 곁을 떠난 지 벌써 1년이 지났습니다. 2012년 이 기자를 처음 만나 해직 언론인 전원 복직을 약속했지만, 대선에 실패하여 약속을 지키지 못했습니다. 2017년 제가 대통령에 당선된 후 비로소 해직 언론인들이 복직되고, 이 기자도 복직되었지만, 끝내 현장으로 돌아오지 못했습니다.
그가 걸었던 고난의 길과 언제나 의연하고 당당했던 모습을 애틋하게 기억합니다. 올해 초, 방송기자연합회에서 이 기자의 이름을 딴 언론상을 제정했다고 들었습니다. 젊은 기자 시절 우리 사회 곳곳에 뿌리박힌 기득권의 부정과 부패에 치열하게 맞서 싸웠고, 국민에게 공영방송을 돌려주기 위해 가장 험난한 길을 앞서 걸어온 그의 기자정신이 후배들에게도 전해지리라 믿습니다.
저는 참 언론인으로 존경하는 리영희 선생에게 많은 영향을 받았습니다. 선생의 ‘전환시대의 논리’와 ‘우상과 이성’ 같은 책과 글을 통해 세상을 보는 눈을 가지게 되었고, 지식인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배웠습니다. 선생은 정치 권력에 맞서며 진실만을 쫓아 세상에 알리려고 노력한 언론인의 표상입니다. 선생의 글에서 오로지 진실을 추구하며,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근거를 제시하는 지식인의 추상같은 자세를 만날 수 있었습니다. ‘오로지 진실’은 이 시대에도 변함없는 언론의 사명일 것입니다.”
-전 세계가 K-방역의 성과를 높이 평가할 정도로 코로나19 대응을 잘해왔는데, 광화문 집회발 코로나 재확산으로 국민들이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습니다. 산발적 집단감염이 끊이지 않고 추석 연휴도 앞두고 있어 안심할 수 없는데요. 대통령께서는 이런 상황을 어떻게 보고 계십니까.
“K-방역이 세계적으로 높은 평가를 받게 된 데에는 ‘이웃’의 안전을 먼저 지킨 국민들의 힘이 큽니다. 최근 코로나19 재확산의 위기도 함께 불편함을 참고, 서로를 격려하며 이겨내고 있습니다. 두 번에 걸쳐 대유행의 위기를 막아주신 국민들께 감사드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의료진과 방역 당국도 국민을 믿고 혼신의 노력을 다하고 있습니다. 역시 고비는 추석 때의 대이동입니다. 지금은 수도권이 확산의 진원이기 때문에 연휴 기간의 이동이 다시 확산을 초래할 위험성이 매우 높습니다. 그저 송구스러운 마음이지만, 한 번 더 국민들께 협조를 당부드리면서, 정부는 코로나가 완전히 종식될 때까지 비상한 경각심을 갖고 방역도 경제도 반드시 지켜내겠습니다.”
-코로나19를 계기로 미디어 이용량이 증가하고 뉴스 이용 시간과 이용 매체 수가 늘어났다는 조사 결과가 있습니다. 언론이 코로나19 관련 정보를 접하는 주요 창구라는 방증인데요. 코로나19를 다루는 보도 행태에 대해선 비판의 목소리도 있지만 의미 있는 보도, 심층적인 정보를 담고 대안을 제시하는 기사도 적지 않았습니다. 한국 언론의 코로나 보도에 대해 어떻게 평가하고 계시나요.
“올해 처음 코로나19가 확산되었을 당시에는 가짜뉴스가 그야말로 범람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가짜뉴스는 당국의 방역 조치를 훼손하고 혼란과 공포를 야기합니다. 일부 언론이 코로나19와 관련해 부정확하거나 확인되지 않은 정보를 보도하거나, 과장되거나 자극적인 표현들을 사용하는 것 또한 문제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한국기자협회, 방송기자연합회, 한국과학기자협회가 함께 ‘감염병 보도준칙’을 제정한 것이 뜻깊습니다.
특히 5월 특정 신문의 코로나19 문제 보도에 대해 한국기자협회가 보도준칙준수를 호소하고 해당 신문사 노조 또한 문제를 지적한 것은 매우 고무적인 일입니다. 방송도 심도 깊은 심층 취재와 팩트체크 보도를 많이 했습니다. 방역위기와 경제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각국 정부의 노력과 성과에 대한 해외 언론들의 객관적인 비교 분석 보도 또한 눈여겨볼 만한 대목이었습니다. 언론의 객관적인 보도를 통해 우리 국민들은 우리 자신의 역량을 재발견하게 되었고, 우리가 방역 선진국임을 자부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국민의 생명 보호와 안전을 위해 정확하고 신속한 정보가 어느 때보다 중요합니다. 언론은 ‘제2의 방역 당국’ 역할을 해주고 있습니다. 위기를 함께 극복하는 데 우리 언론인도 함께한다는 것이 국민께 큰 힘이 되고 있습니다. 코로나가 장기화되고 국민들이 지치면서 다시 거짓 정보들이 그 틈을 파고들고 있습니다. 진실과 거짓을 분별하는 언론의 지속적인 역할을 당부드립니다.”
-국경없는기자회가 올해 발표한 ‘세계언론자유지수’에서 한국은 여전히 아시아 국가 가운데 가장 높은 순위를 기록했습니다. 한편 언론계에서는 징벌적 손해배상제 도입 법안, 문체부 장관의 언론시정 명령 법안, 형사사건 공개금지 훈령 등과 같은 법령의 등장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큽니다. 대통령께선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합니다.
“우리나라가 2년 연속 언론자유 아시아 1위를 유지하고 있다는 것이 자랑스럽습니다. 언론자유야말로 민주주의의 척도이며, 우리 정부 또한 언론의 자율성과 독립성을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언론의 자유롭고 날카로운 비판 정신이 우리 사회를 더욱 건강하게 유지해 줄 것이라 생각합니다.
‘언론의 자유’는 어렵게 성취해 낸 결과입니다. 1964년 한국기자협회는 군사정권이 강행한 ‘언론윤리위원회법’ 철폐에 힘을 모았고, 이후 언론의 자유를 위한 투쟁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기자협회보는 언론자유를 위한 기자들의 함성을 국민들께 전했습니다. 우리의 민주주의도 진실을 알리기 위한 기자들의 노력으로 전진할 수 있었습니다.
정치권을 중심으로 발의된 법안들에 대해서는 국회에서 충분한 논의가 이루어질 것으로 생각합니다. 가장 바람직한 길은 언론 스스로 자유에 따르는 책임을 성찰하면서 자율적으로 기준을 정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언론의 노력이 뒷받침되고, 잘못된 보도에 대한 정당한 반론권이 보장된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을 것입니다. 형사사건 보도와 관련해서는 판결 확정 때까지는 무죄추정원칙 하에, 사건관계인의 인권 보장을 위한 최소한의 제도적 뒷받침이 필요합니다. 국민의 알 권리와 조화시키는 균형 있는 법과 제도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정부는 언론자유를 보장하고, 보다 신장시키기 위해 지속적으로 노력하겠습니다.”
-코로나 사태로 언론계도 전반적으로 경영 상황이 열악합니다. 특히 산업적 기반이 취약한 지역신문은 코로나 사태의 직격탄을 맞으면서 구성원들이 명퇴, 휴직, 감봉 등의 고통을 감내하고 있으며 아예 문을 닫을 수도 있다는 우려도 나옵니다. 어려움을 겪고 있는 지역신문에 대한 지원 방안을 갖고 계시는지요. 대통령께서는 지역신문 활성화와 육성을 공약하셨지만 지역신문발전기금의 주요 수입원인 정부 출연금이 초창기에 비해 줄어들고 있습니다. 공약하신 지역신문 활성화를 위해 지역신문발전기금 증액 방안을 세우고 계시는지요.
“코로나19 상황으로 언론계 역시 경제적 타격을 받고 있습니다. 저도 상대적으로 열악한 지역신문들의 어려움을 걱정하고 있습니다. 정부는 지역신문을 체계적으로 지원하기 위해 지난 4월 ‘지역신문발전 3개년 지원 계획’을 수립했습니다. 코로나19로 인한 지역신문의 어려운 경영환경을 감안하여 공익광고 추가 집행, 언론인 금고 융자지원 확대 등 100억 원 규모의 추가 지원 대책도 마련했습니다.
정부는 또한 2022년까지의 한시법인 지역신문발전지원특별법을 상시법화 하는 것을 국정과제로 추진하고 있습니다. 2021년 지역신문발전기금 출연금 규모를 2020년 대비 약 10% 증액 편성한 예산을 국회에 제출했습니다. 지역신문은 지역 여론의 장으로서 미디어 생태계 안에서도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할 뿐 아니라, 지역 문화 향상에 기여하고 지방 분권 시대를 여는 데도 중요한 토대가 됩니다. 지역신문에 대한 좀 더 많은 지원이 안정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임기 초반을 제외하면 기자들의 기대와 달리 대통령과의 직접적인 소통의 기회가 적다는 평가가 나옵니다. 주요 현안에 대한 대통령 직접 브리핑과 기자회견 개최 등 언론과의 접촉을 더 늘려갈 의향은 없으신지요.
“국민들과의 직접 소통에 방점을 두고 SNS 메시지, 국민과의 대화, 간담회, 현장방문 등 더 많은 국민들을 직접 만나고 국민들의 목소리를 직접 듣기 위한 다양한 기회를 마련해 왔습니다.
누구보다 현장방문을 자주 하고, 경제계와 종교계 등 각계각층의 국민들과 직접 만나 소통해 왔습니다. 주요 현안에 대해서도 과거와 달리 SNS 등 전달 방법이 다양해지고 기회가 많아졌습니다. 무엇보다 대통령이 무슨 일을 하고 있고,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투명하게 공개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쌍방향의 소통이 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에 더 귀를 기울이겠습니다. 올해는 코로나 상황 때문에 국민 여러분과 함께할 수 있는 기회를 더 많이 만들지 못했습니다. 코로나 상황을 보아가며 좀 더 다양한 형식과 기회를 통해 국민과의 소통을 늘려갈 생각입니다. 언론과의 접촉면도 늘어날 수 있을 것입니다.”
-한국 언론은 심각한 신뢰의 위기를 겪고 있습니다. 그 원인 중 일면으론 사회 전반에 만연한 정파성이 거론되곤 합니다. 언론불신이 팽배한 현 사회 분위기를 어떻게 평가하고 계시나요. 이와 관련해 국민과 언론에 각각 당부하고 싶은 말씀이 있으시다면.
“국제적인 평가에 따르면 올해 2020년에도 한국인들의 뉴스 신뢰도는 21%로 조사대상 40개국 가운데 가장 낮았습니다. 언론이 왜 국민들로부터 신뢰를 받지 못하는지에 대한 언론 스스로의 성찰이 필요합니다.
우리 사회 전반에 만연한 정파성에도 큰 원인이 있습니다. 어떤 언론은 정당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정파적인 관점이 앞서면서 진실이 뒷전이 되기도 합니다. 특종 경쟁에 매몰되어 충분한 사실 확인을 거치지 않은 받아쓰기 보도 행태도 언론의 신뢰를 손상시키고 있습니다. 언론 스스로가 ‘오로지 진실’의 자세를 가질 때 언론은 신뢰를 되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과거 언론의 자유가 억압될 때 행간을 통해서라도 진실을 알리려고 했던 노력이 언론을 신뢰받게 했습니다. 비판의 자유가 만개한 시대에 거꾸로 신뢰가 떨어진다는 것은 참으로 아이러니한 일입니다.
진실을 알리고, 국민의 목소리를 대변할 때 언론과 언론인은 신뢰를 얻을 수 있습니다. 언론인 한 사람 한 사람이 양심의 자유를 누릴 때, 국민의 이익이 커지고 대한민국이 강해집니다. 언론이 스스로의 사명을 잊지 않고, 국민의 목소리를 대변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한다면 ‘신뢰의 위기’를 넘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공정하고 다양한 시각에 기초한 비판, 국민의 입장에서 제기하는 의제설정은 정부가 긴장을 늦추지 않고 국민만을 바라보게 하는 힘입니다. 언론이 더 공정하고, 자유롭고, 민주적이며 평화로운 대한민국을 향해 나아가는 국민께 가장 든든한 동반자가 되어줄 것이라 믿습니다.”
-취임 후 3년 4개월 동안 많은 일들이 있었는데, 대통령으로서 가장 힘들었던 순간과 가장 기뻤던 순간을 꼽는다면.
“가장 힘들었던 순간은 지금 이 순간입니다. 실제로 지금 코로나 상황 때문에 가장 힘들지만, 코로나가 아니더라도 대통령의 처지에서는 매 순간이 어렵다고 느끼고 있습니다.
가장 기뻤던 일은 취임 이후 2017년 하반기까지 높아졌던 전쟁의 위기를 해소하고 대화국면으로 전환시켜낸 것이었습니다. 지금 남북과 북미대화가 중단되어 매우 안타깝습니다. 평화는 단지 무력충돌이 없는 상황이 아니라 서로 존중하며 협력할 수 있을 때 비로소 이루어진다고 믿습니다.”
-기자협회보가 해야 할 역할이나 당부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기자협회보는 그간 우리 ‘저널리즘의 위기’에 대해 꾸준히 경종을 울려 왔습니다. 지난 7월 우리 언론의 부동산 보도 문제점을 지적한 기자협회보의 기사는 우리 언론 모두가 되새겨 볼 가치가 있다고 느꼈습니다.
언론홍수의 시대, 언론이 나아갈 바른길을 제시하는 막중한 책임이 기자협회보에 있습니다. 언론을 언론답게 만드는 힘은 기자들에게서 나옵니다. 성찰과 비판을 통해 언론이 올바른 방향으로 발전해 나가는 데 기자협회보가 계속 노력해주길 바랍니다.
언론의 경쟁력을 높이는데도 관심을 가져주시기 바랍니다. 제도언론의 경쟁력을 위협하는 수많은 다양한 매체들이 생겨났습니다. ‘진실의 깊이’만이 언론의 경쟁력을 지켜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김성후 기자 kshoo@journalist.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