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재 내몰리는 노동자들… KBS '일하다 죽지 않게' 연속 기획

[KBS "숫자 너머에 사람 있다" 강조]
일하다 숨진 노동자 현황 집계
올 7월부터 매주 목요일마다 보도

1988년 7월2일. 온도계 제조 공장에서 일하던 15세 소년 노동자 문송면이 수은 중독으로 숨졌다. 문 군의 죽음은 쉬쉬하던 직업병 문제를 쟁점화하는 계기가 됐다. 그의 서른두 번째 기일인 지난 7월, KBS는 연속 기획 보도를 시작했다. ‘일하다 죽지 않게’. 일터에서 사고로 숨진 노동자 현황을 매주 보여줌으로써 “안전한 일터를 만드는 데 도움이 되고자 한다”고 했다. 그리고 1주일이 지난 7월9일부터 매주 목요일, 노동건강연대와 함께 일하다 숨진 노동자 현황을 집계해 보도하고 있다. 그게 벌써 16주째다. 사망한 노동자가 없어서 한주쯤 보도를 걸렀으면 좋으련만, 안타깝게도 그런 일은 없었다. 매주 두 자릿수의 노동자가 일하다 숨졌고 가장 최근 집계인 지난 8~14일에는 21명, 하루 평균 3명의 노동자가 사망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고용노동부가 집계하는 산업재해 사망자 수와는 다르다. 일하다 숨진 노동자가 모두 산재를 인정받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KBS가 “숫자 너머에 사람이 있다”고 강조하는 이유다.



이 기획은 산재 문제를 아젠다 키핑 하자는 통합뉴스룸 국장의 제안에서 시작됐다. 마침 KBS가 연초에 내세운 방송지표에도 ‘안전한 대한민국’이 포함된 터였다. 이런 이유에서인지 올해 들어 KBS의 산재 관련 보도량은 다른 지상파 뉴스보다 압도적으로 많다. ‘일하다 죽지 않게’ 기획 역시 숨진 노동자 현황을 단순 집계해 보도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최근 9년간 중대재해 8000여건 전수 분석 리포트로 시작해 항공 승무원 방사선 피폭 실태를 재조명하고, 삼성전자 같은 대기업부터 대리기사, 배달노동자 등 다양한 현장에서 노동자들이 위험에 내몰리는 현실을 다각도로 심층 보도하고 있다. 사회부 이슈팀과 산업과학부 노동팀 기자들이 주로 리포트를 하지만, 정치부 기사가 관련 기획으로 보도될 때도 있다. 정윤섭 산업과학부장은 “부서별 칸막이가 없어진 셈”이라며 “전체 보도국 차원에서 일터의 안전, 노동 현실 등 노동 분야 뉴스에 대해 좀 더 무게를 갖고 주력해서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정윤섭 부장은 매주 사망 노동자 집계를 보여주는 앵커 브리핑을 직접 기획하고 있다. 처음엔 사망자 수를 숫자로 보도하는 것에 부담도 느꼈지만, 노동계에선 “필요한 기획”이라며 반겼다. 3개월 넘게 했으니 아이템이 고갈될 법도 한데, 아이템은 계속해서 나왔다. 관련 제보도 덩달아 늘었다. 이재석 이슈팀장은 “그만큼 산재 문제가 해소되지 않고 계속되고 있다는 걸 방증하는 셈”이라며 “우리가 특수고용노동자 등 다양한 직종을 다뤘는데 미처 다루지 못한 영역도 여전히 많다. 산재라는 게 끝이 없는 문제니, 일단은 모든 영역을 꼼꼼하게 터치하는 걸 목표로 삼고 있다”고 밝혔다.


앞서 경향신문 등이 산재 관련해 인상적인 보도로 호평을 받았다면, KBS 뉴스의 무기는 ‘꾸준함’에 있다. 허효진 노동팀 기자는 꾸준한 보도의 이유를 “인식의 변화”라고 설명한다. 허 기자는 “특히 산재의 경우 노동자들이 낡은 환경이나 설비 등으로 인해 목숨을 많이 잃는다. 노동자가 아무리 노력해도 현실을 바꾸는 데는 한계가 있다. 사업주도 제대로 하지 않으면 처벌받을 수밖에 없다는 인식을 가져야 하지 않을까”라고 말했다.


김고은 기자 nowar@journalist.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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