멋쩍어진 KBS 사장의 '수신료 현실화' 요구

양승동 사장, 국감장서 강조했지만
여당서도 '자기희생' 전제조건 달아


“현재 KBS는 한계 상황에 와 있다. 국민이 기대하는 공영방송사로 계속 발전할 수 있을지, 반대의 길을 갈지 기로에 서 있다. 수신료 현실화 문제에 깊은 관심을 가져달라.”


양승동<사진> KBS 사장이 지난 15일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국정감사에 출석해 수신료 인상을 호소했다. 지난해 759억원의 사업적자에 이어 올해도 그에 못지않은 적자가 예상된다며 한 말이다. 양 사장은 “40년째 수신료가 동결된 현실 속에서 KBS가 광고와 협찬의 극심한 경쟁에 내몰리고 있다. 하지만 KBS가 광고 및 협찬 유치에 과도하게 나서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KBS만의 길을 가야 한다”면서 “국민에게 위로와 공감을 주는 제2, 제3의 나훈아 쇼를 제작하고, 대하사극을 부활시키고, 신뢰의 중심으로 거듭나겠다”고 밝혔다. 이를 위해선 현재 40%대인 수신료가 전체 재원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70%까지 올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EBS 사장도 재정난을 토로했다. 김명중 사장은 “전체 재원 중 수신료 수입은 6.9%이고 공적 재원을 다 합해도 30% 수준에 불과하다. 무늬만 공영방송이지 재원 구조는 상업방송이나 다름없다”며 “공적책무 수행을 위해 공적 재원이 더 많이 투입되도록 도와달라”고 했다.


그러나 반응은 냉담했다. 야당 의원들은 정치적 편향성 등을 이유로 수신료 현실화 요구 자체가 ‘어불성설’이라며 반대했다. 여당 의원들은 수신료 인상의 필요성에는 공감하면서도 임금 삭감 등 뼈를 깎는 자구책이 먼저라고 강조했다. 수신료 인상에 가장 적극적인 우상호 더불어민주당 의원도 KBS 직원 중 연봉 1억원 이상이 48.8%라는 점을 지적하며 “민간 기업 같으면 회사가 어려운데 고연봉자가 버틸 수 있겠나. 소수 임원의 연봉 삭감만으론 안 된다. 노조와 협의해야 한다. 자기희생이 전제되지 않고는 수신료 인상을 얘기하기 힘들다”고 말했다.


야당에선 KBS의 이른바 ‘검언유착’ 오보 사태에 대해 맹공을 퍼부었다. KBS 보도정보시스템에 기록된 당시 취재 메모와 기사 작성 시점, 수정 내역 등을 근거로 ‘청부보도’ 의혹에 다시금 불을 지피며 양승동 사장이 책임지고 물러나야 한다고 주장했다. 황보승희 국민의힘 의원은 “일련의 자료 등을 볼 때 누군가가 오래전부터 아이템 기획부터 기사 방향까지 잡아주다가 이번에 꼬리를 잡힌 거라는 의심을 거둘 수 없다”면서 “기자 5명을 징계하는 수준에서 끝날 게 아니라 취재원을 밝혀야 한다”고 했다. 허은아 의원은 한동훈 검사장이 KBS 기자 8명을 상대로 제기한 억대 손해배상소송에 KBS가 법적 지원을 하고 있다는 점을 문제 삼았다. 허 의원은 “업무상 과실을 인정하면서 잘못을 저지른 기자들에게 손해배상을 청구해도 모자랄 판에 국민이 낸 수신료로 변호사 비용을 대는 게 말이 되냐”며 철회를 요구했다. 이에 양 사장은 “결과적으로 업무상 과실이 있었지만, 그 행위 자체는 정상적인 업무 수행이었고 이런 지원 제도가 없다면 취재나 제작 과정에서 위축될 수 있다”며 “기자들이 취재하고 보도하면서 실수할 수도 있는데, 그런 실수를 최소화하기 위해 시스템을 보강하겠다”고 밝혔다.


한편 이날 황보승희 의원이 ‘검언유착’ 오보의 경위를 따져 묻는 과정에서 KBS 보도정보시스템 화면과 기자들의 실명 등을 공개한 데 대해 양 사장은 “보도정보시스템은 취재 관련 내밀한 정보가 담겨 있기 때문에 보도본부 기자와 일부 인력을 제외하곤 엄격하게 접근이 금지된다. KBS가 공식 제공하지 않은 캡처 화면이 등장해 매우 곤혹스럽고 유감을 표명한다”고 밝혔다. 전국언론노조 KBS본부도 다음날 성명을 내고 “국회의 고유 업무 권한을 뛰어넘어 KBS의 관련 업무 종사자들을 압박하는 매우 부적절한 행태”라고 규탄하며 “사측은 ‘보도정보시스템 유출’ 등 유사 사례의 재발을 막기 위한 실효성 있는 대책을 마련하라”고 주장했다.


김고은 기자 nowar@journalist.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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