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준비나 고민 없이 코로나19 대응… 언론, 스스로 존재 이유 증명해야"

[한국언론진흥재단 2020 저널리즘 주간]
박영흠 교수 12개 언론사 코로나19 보도 분석
스트레이트 88.3%, 분석·해설 5.6%, 탐사기획 0.5%

최근 언론이 직면한 가장 큰 위기가 신뢰의 추락이라는 데는 이견이 없을 것이다. 비단 한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가 언론의 신뢰 회복을 위한 규범을 고민하고 있는 가운데,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이 언론 신뢰 회복의 기회이면서 오히려 위기일 수 있다는 분석이 제기됐다. 22일 한국언론진흥재단 주최로 열린 ‘2020 저널리즘 주간’의 첫 번째 세션에선 박영흠 협성대 미디어영상광고학과 초빙교수가 ‘코로나19 이후 언론의 새로운 규범과 역할’을 주제로 강연하며 언론의 신뢰 회복을 위한 고민의 결과를 공유했다.



박영흠 교수는 “전통 언론을 불신했던 시민들이 코로나 확산 국면에서 원하든 원하지 않든 전통 언론에 주목할 수밖에 없었다”며 “여러 나라에서 전반적으로 뉴스 이용률이 늘어났다. 잘만 대처하면 신뢰 회복의 계기가 될 수 있는 상황”이라고 밝혔다. 다만 그는 “지금까지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새로운 현상인 데다 정보 불확실성이 그 어느 때보다 높아 언론이 코로나19를 어떻게 보도할지 모르고 있다”며 “코로나19 국면이 저널리즘 원칙에 내재된, 서로 모순되는 가치가 표면화하고 충돌하는 상황을 만들기에 한편으론 언론 신뢰에 위기가 될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박 교수는 코로나19 상황이 내포한 모순을 세 가지로 분류했다. △신속한 정보를 제공할 필요도 있지만 동시에 정확한 정보를 보도해야 한다는 점 △심각성을 경고해야 하지만 과도한 불안을 조장해도 안 된다는 점 △재난 상황이기에 정부에 협조해야 하지만 한편으론 방역 정책을 검증하고 보건 당국을 감시해야 하는 임무를 맡는다는 점 등이다. 그는 “전통 언론이 일종의 시험대에 오른 셈”이라며 “코로나19와 같은 신종 감염병이 계속 우리 일상에 침투한다면 이 시험을 얼마나 잘 치르느냐에 따라 언론 신뢰 여부가 결정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박 교수는 한국 언론의 코로나19 보도를 양적·질적으로 분석한 결과, 언론이 별다른 준비나 고민 없이 코로나19 국면에 대응했고 여러 문제점을 드러냈다고 밝혔다. 그는 “12개 주요 언론사 보도 내용을 분석했더니 언론이 파편화된 사실을 단순 중계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며 “감염 경로나 확산 사실을 알리는 등의 스트레이트 기사가 전체 코로나19 보도의 88.3%에 달했고, 분석·해설 기사는 5.6%, 탐사기획은 전체의 0.5%에 불과했다. 정보 자체가 절대적으로 부족하고 취재가 제한될 수밖에 없는 여건을 고려하면 불가피한 측면도 있었지만 그럼에도 시민들의 생존과 안전을 위해, 참조해야 할 지식을 만들어내야 하는 언론의 책임을 떠올려보면 수동적 보도는 아쉬움이 남는다”고 말했다.


코로나19 보도를 프레임 분석한 결과에서도 박 교수는 안타까움을 드러냈다. 그는 “코로나19로 인한 변화를 단순 전달한 프레임이 46.2%, 질병 확산 및 현황 프레임이 25.9%로 전체 기사의 2/3를 단순 전달 기사가 차지했다”며 “시민 공중의 지식을 함양할 수 있는 전문 과학 정보와 보건 예방 정보는 각각 1.9%로 매우 적었다”고 했다.


박 교수는 코로나19 취재 기자들, 취재에 응했던 공보 담당자들, 언론과 인터뷰한 경험이 있는 의사들을 만나 얘기를 들으면서 이 같은 결과에 크게 두 가지 원인이 있다고 분석했다. 바로 언론의 정파성과 부정 편향이다. 그는 “그동안 언론이 특정 정파와 공생관계를 맺고 자사에 유리한 사실을 취사선택한다는 비판을 받아왔는데 코로나19 국면에서도 이러한 경향이 여지없이 드러났다”며 “전문가들 인터뷰 과정에서 의사들이 ‘왜 의학의 영역을 정치의 문제로 치환하느냐’고 수차례 물었다. 기자들 역시 가장 큰 문제로 정파성을 지적했다”고 말했다.


이어 “뉴스를 선별할 때 부정적인 문제에 뉴스 가치를 더 크게 두는 관습적인 성향도 문제다. 특히 정부가 잘못하고 있다는 비판은 언론이 가장 선호하는 기사 장르 가운데 하나인데, 권력 감시와 견제라는 저널리즘 본령을 지키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라며 “그러나 돌아보면 권력에 대한 비판은 더 많은 주목을 이끌어내려는 언론의 욕망이 아닌가 의문이 든다. 물론 민주주의에서 권력 비판은 기본적 임무겠지만 예외적 재난 상황에선 더욱 신중한 검토 속에 비판이 이뤄져야 할 것”이라고 했다.


박 교수는 한국 언론이 신뢰 회복을 위해 어떻게 변화해야 할지 방안도 제시했다. 신속한 정보 전달보단 정확한 정보 전달, 단순한 사실보단 심층 해석 정보에 언론이 주력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신속한 정보는 전통 언론이 아니더라도 다른 채널을 통해서 충분히 만족스럽게 얻을 수 있다. 시민들이 전통 언론에 기대는 것은 정보의 불확실성과 범람하는 허위 정보 속에서 위기의 순간, 참조할 수 있는 정확한 정보와 지식이 아닐까 싶다”며 “비유하자면 시민들은 퀴즈쇼에 나오는 전화 찬스를 쓰고 싶어 하는지도 모른다. 절체절명의 순간 설익은 파편화된 정보가 아니라 심층 분석을 거친 종합적 정보를 원할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언론이 이를 실천하지 못하는 이유는 인력과 역량이 부족하기 때문이라며 지금이라도 보건 의료 영역에 전문성을 갖춘 기자를 양성하고, 해당 분야에 더 많은 인력과 자원을 할당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박 교수는 부정의 뉴스 가치도 버리라고 했다. 감염병 확산 국면에선 정파성과 부정 편향을 극복하고 공동체 안정에 기여할 수 있는지를 뉴스 가치의 우선순위로 삼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시민들의 고통과 상황의 심각성을 전달하고 방역 대책을 검증하는 임무는 계속해야겠지만 단순히 비판과 논란, 의혹을 제기하는 수준에서 머물지 말고 공동체가 어떻게 위기를 극복할 수 있을지 함께 해법을 찾아나가는 데 힘써야 한다”고 했다.


또 “전통 언론이 앞장서 허위조작정보를 유통시키는 주범은 아니지만 ‘우린 잘못이 없다’고만 생각하면 곤란하다”며 “허위조작정보가 확산될 때 처방적 성격을 갖는 교정정보를 투입함으로써 공론장을 바로잡는, 적극적인 역할을 수행해줘야 한다. 언론이 스스로의 존재 이유를 증명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날 세션에 토론자로 참여했던 황정미 세계일보 편집인은 “코로나19 사태에 언론이 공동체나 공공의 이익을 위해 애쓴 부분도 있고 보도를 통해 시민들의 자발적 참여를 이끌기도 했다”며 “다만 저희 회사도 그렇고 언론이 좀 더 사회적 약자, 취약계층에 관심을 가지지 못했던 지점은 아쉬웠다. 한편으로 황우석, 메르스, 코로나 사태를 거치며 과학·의학 전문기자를 더 육성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 "한국 언론엔 지향점이 없어 보인다"


세션에선 코로나19 이후 언론 산업이 어떻게 변화했는지 분석하고, 한국 언론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하는 내용도 발표됐다. 손재권 더밀크 대표는 “코로나19 이후 한국과 글로벌 미디어들의 갭이 더 커지고 있다”며 “디지털의 경우 미국, 유럽뿐만 아니라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 등의 미디어들이 광고와 종이신문 기반에서 디지털 구독으로 상당히 넘어가고 있는 상황이다. 반면 한국에선 네이버와 같은 빅 플랫폼 업체에 의존하고 있는 게 현실이고 이로 인해 신규 밀레니얼 독자들과 언론이 관계를 맺고 있지 못하다”고 말했다.


이어 “비즈니스 모델 갭도 커지고 있다”며 “글로벌 미디어들은 광고와 행사 매출이 줄면서 구독으로 넘어가고 있는데 한국에선 여전히 광고에 의존하고 있다. 광고 역시 대기업과 정부 등 권력 위주라 저널리즘의 악화로 이어지는 현상이 보인다”고 했다.


그러면서 “결과적으로 한국 언론엔 지향점, 비전이 없어 보인다”며 “글로벌에선 방향성을 잡고 데이터를 기반으로 구독자 수를 강화하고 저널리즘과 데이터, 독자와의 관계, 신뢰 등에 투자하고 있는데 한국 언론이 얼마나 저널리즘에, 데이터에, 독자와의 관계에 투자하고 있는지 보면 반성해야 할 것”이라고 했다.


얼 윌킨슨 국제뉴스미디어협회(INMA) 대표도 데이터와 독자, 광고 등의 중요성을 언급하며 “코로나19로 산업의 변화가 빠르게 일어났지만 혁신적인 변화라기보다는 기존의 아이디어를 갖고 변화했던 것이다. 디지털 전환, 구독 전환 모두 기존의 생각이었다”며 “앞으로는 신뢰성을 어떻게 증대시킬 것인가 고민을 해야 한다. 디지털 전환은 데이터 기업이 독자의 재정 지원을 받아 이들과의 긴밀한 관계 구축을 통해 발전하는 것이기에, 언론사들이 데이터, 저널리즘, 신뢰, 독자와의 직접적인 관계에 투자하시길 권고한다”고 말했다.


빅터 피카드 펜실베이니아대 아넨버그 커뮤니케이션 스쿨 교수 역시 “코로나19 이후 언론의 상업화, 정파성이 더욱 극심해지고 있다”며 “언론이 생존을 위해 네이티브 광고를 하거나 구독자들의 행동을 추적하는 식으로 맞춤형 광고를 하고 있지만 도덕적·윤리적 문제가 생길 수 있다. 결국 구독 중심의 수익 구조 변화, 시민 저널리즘, 공공 저널리즘을 위한 정부 지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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